117j 京都国際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

京都国際学園京都国際中学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が開かれました。京都国際学園は京都にあるただ一つの韓国系民族学校で、中学校と高等学校の課程があります。

この学校は、京都でも以前から在日コリアンが多く住む東九条に近いところ、観光地では紅葉の名所として知られる東福寺周辺の丘陵にあります。日本人が多く訪ねる伏見稲荷(ふしみいなり)神社も学校の近くにあります。

京都国際の特徴は、大阪の民族系学校である白頭学院建国金剛学園より日本国籍の生徒の割合が多いことです。京都国際高等学校の卒業生はことし41名で、名前だけでみると、日本名29人、韓国名12人です。名前から国籍や血すじを判断できないことが在日の特殊さですが、日本国籍の生徒が多いことは事実です。

京都国際は京都府で優勝をねらえるほど野球チームが強く、野球をしたい日本人生徒の入学が増えているそうです。K-POPなどの韓国文化に魅力を感じる日本人生徒の入学希望も多いといいます。この傾向がことしの新入生募集にも反映し、中高いずれも例年より入学者数が大幅に増えています。

日本人生徒の増加と、韓国語や韓国の歴史・文化などを教える民族学校の特性をいかに調和していくかが今後の課題でしょう。卒業式に出席して、教師や生徒、そして保護者や学園理事がとても明るいことを感じました。このような校風ならば、どんな課題もうまく乗り越えるだろうという気がします。

祝辞のなかで私は、韓国と日本を共に感じ学んだ経験と知識を活用し、日本と韓国にとどまることなく、広く世界に貢献する人材になるよう呼びかけました。

117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이 2월16일 열렸다. 교토국제학원은 교토에 있는 유일한 한국계 민족학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두고 있다.

이 학교는 교토에서도 예전부터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히가시구조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관광지 기준으로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도후쿠지(동복사) 주변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후시미이나리신사도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학교의 특징은 오사카의 건국, 금강학교보다 일본 국적의 학생 비율이 많다는 점이다. 이 학교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올해 41명이다. 졸업생 이름만으로 보면, 29명이 일본 이름, 12명이 한국 이름이다. 이름만 보고 국적이나 혈통을 알 수 없는 것이 재일동포 사회의 특수함이기도 하지만 일본 국적의 학생이 많이 다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학교는 교토부에서 우승을 노릴 정도로 야구를 잘한다. 때문에 야구를 하려는 순수 일본 학생들의 입학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케이팝 등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일본 학생들의 입학 희망도 많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올해 신입생 모집에도 반영되어, 중고 모두 예년에 비해 입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일본인 학생이 늘고 있는 경향과, 한국말과 역사, 문화 등 한국 것을 가르치는 민족학교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해 나갈 것인가가 앞으로 이 학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 16일 졸업식에 참석해 느낀 것은, 선생, 학생, 학부모, 학교 이사들의 모습이 무척 밝다는 점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도전도 잘 헤쳐나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졸업식 축사에서 학교에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느끼고 배운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해, 한일 양국뿐 아니라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길 당부했다.

 

116j 詩人尹東柱が福岡刑務所で獄死した2月16日

詩人の尹東柱(ユンドンジュ 1917-45)は収監されていた日本の福岡刑務所で1945年2月16日に獄死しました。詩人の命日前後に毎年、京都で追悼行事が行われています。詩人が通った同志社大学キャンパスでは彼の命日前の土曜日に追悼行事を催し、彼の下宿先(現在は京都造形芸術大学キャンパス前)では命日に追悼会を催しています。

ことしは命日が土曜のため、同志社大学は16日に追悼会を催し、京都造形芸術大学は土曜が休みのため、前日の15日に催しました。

このような事情から、二日続けて京都で尹東柱追悼会が開かれ、私はいずれも参加しました。また、14日には三一運動百周年を記念し、大阪総領事館と韓国散文作家協会が共同で「尹東柱と茨木のり子の出会い」を讃える行事を大阪で開催しました。詩人の茨木のり子氏(1926-2006)は大阪生まれです。彼女が尹東柱について書いた文章が、今も日本の高校の現代文の教科書に載っています。

主催者として、私もこの行事に参加しました。三日連続で尹東柱にまつわる行事に参加したのです。これらの行事を通じて、ユン詩人についてよく知っているつもりでいながら知らなかった多くのことを集中講義で学びました。また、日韓双方を代表する尹東柱の研究者、専門家の講演と話を通じてユン詩人にまつわる、日本における多くの事実を新たに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

日本の高校現代文の検定教科書(筑摩書房)に尹東柱の序詩を含む茨木のり子氏(1926-2006)の文章が1990年から掲載された経緯(当時、筑摩書房の編集者だった野上龍彦氏の同志社大における講演)を知り、同志社大の創設者、新島襄の記念像さえ一体もない同志社大に2005年、尹東柱の詩碑が建てられた裏話、同志社大のチャペル前に建てられた詩碑が、韓半島のある西を向き、詩碑の北側にツツジ、南側にムクゲを植えたということも関係者から聞くことができました。

14日には、詩人尹東柱を日本の教科書に紹介した詩人としてのみ知っていた茨木氏が日本で最も反戦平和に徹した秀でた詩人だったことを知りました。また、70-80年代の厳しい時代に二人の兄上が韓国の刑務所に収監されていた徐京植(1951-)東京経済大学教授が茨木氏の詩と邂逅し、それを通じて詩人に会った話は、涙なしには聞けない歴史のひとこまでした。

三つの行事を通じて痛感したことは、早世した薄幸な詩人の人生と詩が今も生き続け、日韓の市民連帯の強い絆と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後世の人々が何をなすべきか、警鐘を鳴らし続けているという事実です。

私は三つの行事それぞれで挨拶をしました。三一運動百周年の年に開催される尹東柱の追悼行事は格別意義深いと述べました。そして、日韓関係が良くないときだからこそ、三一運動と尹東柱に共通する平和・非暴力・人道主義を活かし、日韓友好のために尽力するよう呼びかけました。

116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2월16일에 열리는 추모행사

1945년 2월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수감 중이던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 날이다. 교토에서는 윤 시인이 숨진 날을 전후해,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윤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대학 교정에서는 그가 숨진 날 이전의 토요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윤 시인의 하숙집 앞(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 캠퍼스 앞)의 추도회는 숨진 당일에 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올해는 마침 2월16일이 토요일이어서, 도시샤대 추모회가 16일 열렸다. 묘하게도 교토조형예술대가 주최하는 추모회는 16일이 토요일이어서 학교가 쉬는 바람에 하루 전인 15일에 열리게 됐다.

이런 사정으로 연 이틀 교토에서 윤동주 추모회가 열렸고, 나는 모두 참석했다. 또 14일에는 오사카총영사관과 한국산문작가협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와 이바라기 노리코의 만남’을 기리는 행사를 오사카에서 공동 개최했다. 이바라기 시인은 오사카에 출생한 여성 시인으로, 그가 윤동주 시인에 관해 쓴 글이 지금도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

나는 당연히 주최자로서 이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이것까지 포함해 연속으로 3일 동안 윤동주 행사에 갔다. 사흘 동안 행사에 참가하면서 윤 시인에 관해 듣고 배운 것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많을 만큼, 윤동주 집중 강의를 받은 셈이 되었다. 그것도 한일 양국에서 최고로 꼽힐 만한 윤동주 연구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얘기를 통해 윤 시인과 일본에 얽힌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고등학교용 검정 국어교과서(치쿠마쇼보)에 어떻게 윤동주의 서시 등의 시가 담긴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이 1990년부터 실리게 됐는지(당시 치쿠마쇼보 편집자였던 노가미 다츠히코의 16일 도시샤대 강연. 자세한 얘기는 길어서 생략),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시마 죠를 기념하는 상징물조차 없는 도시샤대에 2005년 윤동주 시비가 세워지게 된 뒷 얘기, 도시샤대의 채플 강당 앞에 세워진 시비가 한반도 쪽인 서쪽을 향해 있고, 시비의 북쪽엔 진달래, 남쪽엔 무궁화가 심어졌다는 사실을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14일의 행사에서는 그저 윤동주 시인을 일본 교과서에 소개한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바라기 시인이 일본 안에서 가장 반전, 평화에 철저했던 엄청난 시인이라는 걸 배웠다. 또 70년,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두 형을 한국의 감옥에 두고 있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가 이바라기 시인의 시와 만나고, 그를 계기를 시인과 직접 만났던 이야기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역사의 한토막이었다.

세 행사를 통해 절감한 것은, 요절한 한 불행한 시인의 삶과 시가 지금도 살아서 여전히 한일 시민 연대의 강한 끈으로 작용하고 있고,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 행사 때 각기 인사말을 부탁받고, 3.1운동 100주년에 맞는 해에 열리는 윤동주 추모행사가 더욱 의미가 깊다고 본다면서, 한일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은 때일수록 3.1운동과 윤동주 시에 공통하는 평화, 비폭력, 인도주의를 살려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115j 学校法人理事長が韓国人の大阪経済法科大学

大阪経済法科大学は韓国人が学校法人理事長を務める、日本でただ一つの私立大学だと思われます。 1971年に設立されたこの大学は当初、経済学部と法学部のみでしたので、大学名も経法大学です。

現在は経済学部・法学部のほか、国際学部・経営学部(今年新設)と大学院経済学研究科を置いています。学生数は3000人ほどの、日本では小規模な大学です。

2月12日、八尾市の生駒山麓に位置する大学を訪問し、田畑理一学長にお会いしました。田畑学長は、ロシア経済を専攻した経済学者です。前職の大阪市立大学で韓国の全南大学と大阪市立大学の交流を全面的なものにするのに尽力されたそうです。その縁で韓国に関する知識と愛情が深い方です。

この大学は、海外留学生が全体の17%、500人程度だそうです。留学生の出身国も中国・韓国・ベトナム・中央アジア諸国を含めて10ヵ国になるそうです。留学生の離脱がほとんどない秘訣を尋ねると、学校と縁がある人の紹介でやって来る学生が多く、学生を叱っても大丈夫な学生と大学との強力な人間関係を作るのに神経を使うとのことでした。

崇実大学、慶尚大学、梨花女子大学、韓国学中央研究院などとも活発な交流をしています。大学のスポーツ分野では、テコンドーが有名だそうです。キャンパスに広開土王碑のレプリカが建てられているのが注意を引きました。多くの学生と教授は日本人ですが、随所に韓国の香りが息づいているのを感じました。

115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은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사립대학이다. 1971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설립 당시 경제학부와 법학부로만 출발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경법대학이다.

지금은 경제학부, 법학부 외에 국제학부, 경영학부(올해 신설)와 대학원 과정의 경제학부를 두고 있다. 학생 수는 3000명 정도로, 일본에서는 소규모 대학이다.

2월12일 야오시의 이코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 학교를 방문해, 다바타 리이치 학장를 만났다. 다바타 학장은 러시아 경제를 전공한 경제학자이다.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오사카시립대학에서 전남대와 오사카시립대 사이의 교류를 전면화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관한 지식과 애정도 깊다.

이 학교는 해외 유학생이 전체의 17%, 500명 정도라고 한다. 유학생 출신 나라도 중국, 한국,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해 10여 개국이 된다고 한다. 유학생 이탈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비결을 묻자, 학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의 소개로 오는 학생이 많고, 학생을 꾸짖어도 될 만큼 학생과 학교 사이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신경쓴다고 말했다.

숭실대, 경상대, 이화여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도 활발한 교류도 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로는 태권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교정에는 광개토왕비 레플리카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분분의 학생과 교수가 일본인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한국의 냄새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114j 慶北慶山市と姉妹提携している京都府城陽市

2月9日(土)、京都府城陽市を初めて訪問しました。宇治市の南にある人口約8万人の小さな市で、日本の10円硬貨に刻まれた文化財の平等院鳳凰堂・ウトロ村・尹東柱の第三の詩碑があります。

この日、城陽市日韓親善京都さくらとムクゲの会(略して「桜とムクゲの会」)の設立35周年記念式典が開催されました。 35周年という節目の意味もありますが、城陽市が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はもちろん、全国的にも有名な民間交流のモデルということもあり、喜んで参加しました。

城陽市は現在、慶尚北道の慶山市と姉妹都市であり、大邱市サッカー協会、少年少女や女性、大学サッカーなどと交流しています。1982年に京都を訪れた韓国の少年サッカーチームと城陽市チームの親善試合がきっかけで、83年に日韓親善協会が設立され、少年サッカーを中心に交流を拡大してきました。2004年、独島をめぐる対立の余波を受けて一時中断されましたが、民間交流の重要性に共鳴する双方関係者の努力により、今では少年サッカーにとどまらず、さまざまな分野で広く深い交流が行われています。

城陽市のさくらとムクゲの会は、このような功労を認められ、2017年に日本の皇族出身で、日韓交流にご尽力された高円宮殿下を称えるために設立された高円宮記念日韓交流基金から賞を受けました。この受賞をきっかけに城陽市の少年サッカーチームは、この勲章とサクラとムクゲを胸章にしたユニフォームを着ています。この日の記念式にも少年サッカーチームのメンバーがそのユニフォームを着て壇上に上がり、「故郷の春」「希望の国へ」など韓国の歌を歌いました。高円宮記念日韓交流基金の須々木智行事務局長も参加し、祝辞を述べました。韓国からも、サッカー交流に当初から関わってきたキム・ソンヨル大邱広域市のサッカー協会長ら2人が参加しました。

日韓双方の来賓が異口同音に指摘したのは、最近の政治・歴史認識問題のため政府間関係がよくないこういう時こそ民間交流をさらに熱心に推進しようということでした。2005年から10年に会議の会長を務めた古瀬善啓名誉会長は、交流が中断していた当時の市長、今道仙次市長の提唱する “people to people” “心と心の交流”が重要であり、交流再開に大きな力になったと、当時のことを思い起こしていました。昨今の状況にふさわしい言葉であり考えだと思います。

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では城陽市のほか、岸和田市(大阪府)守山野洲市(滋賀県)が活発に民間交流を行っています。これら地域では、団体の代表者と市議会議員など地域の指導層が積極的に参加しています。そのもとで、スポーツ交流などの強力な接着剤があり、全力で交流を率いる献身的な活動家がいることが共通しています。

114 교토부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조요(城陽)시를 방문

2.9(토) 교토부의 조요시를 처음 방문했다.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에 새겨진 문화재 뵤도인(평등원)과 우토로마을, 윤동주의 세번째 시비가 있는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인구 8만명 정도의 작은 시다.

이날 이 시에서 ‘일한 친선 교토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줄여서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 설립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35주년이라는 부러지는 해의 의미도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가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도 민간교류를 가장 모범적으로 하는 곳이므로, 기꺼이 참석했다.

조요시는 현재 경북 경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고, 대구시축구협회와, 어린이, 여자대학 축구 교류 등을 하고 있다. 1982년 교토를 찾은 한국의 어린이 축구팀과 이곳의 팀이 친선경기를 한 것을 계기로, 83년부터 한일친선협회가 만들어지고, 어린이 축구를 중심으로 교류가 확대되어 왔다. 2004년 독도 갈등이 불거지면서 일시 교류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민간차원 교류의 중요성에 공감한 양쪽의 노력으로 지금은 어린이 축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교류가 넓고 깊어지고 있다.

조요시의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일본 황족 출신으로 한일 교류에 힘썼던 다카마도노미야를 기리기 위해 만든 다카마도노미야기념재단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 수상을 계기로 조요시의 어린이축구팀은 이 훈장과 사쿠라와 무궁화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도 어린이 축구팀이 이 유니폼을 입고 단상에 올라와 <고향의 봄> <희망의 나라로>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 기념재단의 스즈키 사무총장도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한국에서도 축구교류에 처음부터 관여해온 김성열 대구광역시축구협회장 등 2명이 참석했다.

나를 비롯한 한일 양쪽의 축사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근 정치와 역사인식 문제로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쁘지만, 이럴 때일수록 민간 교류를 더욱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특히 2005년부터 10년 동안 이 회의 회장을 맡았던 후루세 명예회장은, 교류가 중단되었던 당시 시장이었던 이마미치 시장의 ‘people to people’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교류 재개에 큰 힘이 되었다고 상기했다. 요즘 상황에 잘 들어맞는 말이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 지역에는 조요시 외에 기시와다시(오사카부), 모리야마・야스시(시가현)가 대표적으로 민간 교류가 잘 되는 곳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을 보면, 단체장과 시 의회 의원 등 지역의 여론 주도층이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그 밑에 스포츠 교류와 같은 끈끈한 접착제, 온 힘을 기울여 교류를 이끌고 가는 헌신적인 활동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113j 大阪日日新聞のインタビュー記事

大阪地域の日刊紙<大阪日日新聞>から、最近の日韓関係と民間交流、朝鮮半島情勢などについてインタビューの要請を受け、1月31日に応じました。その記事が2月7日に掲載されました。

最近の日韓関係について、私は、戦時強制動員労働者の判決など、政府間の対立が肥大化したことは事実だとしつつ、問題の根本的な原因は、過去の歴史をきちんと決着させないまま、1965年の日韓基本協定が締結されたことにあるとしました。ですから、感情を前面に出さずに双方とも冷静に解決策を模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述べました。

届いた新聞を広げてみると、記事は5段広告を除く全面サイズの掲載でした。また、サイズより内容が重要とはいえ、顔がでかでかと載っていて、照れくさい気がしました。記事の内容は、私が述べたことをよくまとめてあり、安心しました。

ただし、以前とは違い、政府間は冷めていても、民間交流は温かい「官冷民温」現象も見られることを指摘しました。両国の人的交流が昨年初めて1千万人を突破し、両国とも若年層を中心に韓流・日流ブームが起きていることに注目する必要があるとも述べました。

2025年に大阪で高齢化時代に焦点を当てて開催される国際博覧会は、日本に次いで高齢化社会に向かっている韓国にも多くの示唆を与えるものです。歴史的・文化的に昔から韓国と縁が深い関西地域が日韓友好のメッカとして定着するよう尽力すると付け加えました。

朝鮮半島で最近起こっている平和への動きと関連し、類似の価値と制度を共有する二つの国の協力と連携が必要だとも強調しました。また、記者出身として、両国のマスコミが「当局者の言葉を伝えること」中心の空中戦ではなく、現場の声を反映した報道を多く伝えてほしいという希望も伝えました。

113 오사카니치니치[大阪日日]신문 인터뷰 기사

오사카 지역의 일간지 <오사카니치니치신문>이 최근의 한일관계와 민간교류,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해, 1월31일 응했습니다. 그 기사가 2월 7일 나왔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니, 기사가 5단 광고를 뺀 전면 크기로 실렸습니다. 크기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얼굴이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나와 좀 쑥쓰러웠습니다. 기사 내용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정리해 놓아 안심했습니다.

나는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전시 강제동원 노동자 판결 등으로 정부 사이에 갈등이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갈등의 근본 원인은 과거 역사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은 채 1965년 협정이 체결된 데 있으므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서로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는 냉랭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따듯한 ‘관랭민온’ 현상도 감지된다면서, 양국 인적교류가 지난해 처음으로 1천만명을 돌파한 점, 양국에서 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 일류 붐이 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 오사카에서 고령화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열리는 국제박람회는 일본을 뒤따라 노령화 사회로 가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면서, 역사, 문화적으로 예전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간사이가 한일우호의 메카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평화 움직임과 관련해, 비슷한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두 나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자 출신으로서 양국 매스컴이 ‘당국자 말 전하기’ 중심의 공중전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보도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