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고이즈미 전 총리의 첫 저서 “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별명은 ‘헨진(変人)’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별난 사람’ 정도이겠다.

내가 도쿄 특파원을 지냈던 기간(2001-2004)은 그의 집권 기간(2001-2006)의 부분 집합이다. 특파원 하는 동안 그가 유일한 총리였으니, 그를 주어로 하는 기사도 많이 썼다. 두 차례의 평양 방문과 한일 공동 축구월드컵 개최, 그 특유의 ‘극장식 정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그가 총리를 그만 둔 뒤 10년이 넘었는데도 가끔 언론에 등장한다. 최근에도 그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개헌 추진에 대해 “할 일은 안하고 할 수 없는 것만 하려고 한다”고 사정없이 비판한 것이 보도된 바 있다. 여기서 할 일은 원전 제로이고, 할 수 없는 일은 개헌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31일에도 <아사히신문>에 등장했다. <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는 그의 첫 저서와 관련한 인터뷰이다. 총리 재직 시절 원전 추진론자였던 그가 2011년 3.11 동북대지진 이후 원전 폐지론자가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던 차였다. 그는 2014년 도쿄도도지사 선거에서는 탈원전 정책에 연대해, 야당계 무소속 후보로 나온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총리 재직 당시)경제산업성이 말하는 ‘원전은 안전, 저비용, 깨끗하다’는 것을 믿었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원전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진지하게 듣지 않고 속았다는 반성도 포함해, ‘일본은 원전이 없어도 지낼 수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이 싸다는 것에 대해서는 “원전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고 세금도 사용하지 않으면, 원전이 더욱 비싸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전 없이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3.11 사고 이후 2년 동안 원전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지만 정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총리에게도 경제산업성에 속지 마라고 애기했는데 반론하지 않고 쓴웃음만 짓더라면서, 아베 총리가 원전 제로에 나서면 금방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그의 생각은 엄청 버뀌었지만, 헨진(変人) 기질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 진보성향의 월간지 <세카이> 2019년 1월호에,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기사가 실려 관심 있게 봤다. 이 기사의 필자는 일본이 배울 교훈으로, 공론화 결과를 그대로 정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 찬반 과열을 불러온 문제, 왜곡 과열보도에 대비한 미디어 대책의 필요성, 왜곡보도를 상정한 제도 설계의 필요성,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일본도 원전정책, 헌법 개정 등 사회적 대립이 깊은 정책에 관해 숙의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095 오사카시 덴노지구 통국사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일요일인 11월 18일 오후, 오사카시 덴노지구에 있는 통국사에서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오사카 지역에 사는 제주 출신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재일본 제주 4・3 희생자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하였다.

일본 지역에 4・3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은, 이것이 최초라고 한다. 아마 일제 시대부터 오사카에 제주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특성이 작용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러일전쟁 때 획득한 군함을 개조해 만든 연락선 ‘기미가요마루’가 1922년부터 제주~오사카를 오갔고, 이때 일본이 급격히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던 사정과 겹치면서, 오사카에 유독 제주 출신이 많이 살게 됐다고 한다. 또 4・3 사건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밀항 등을 통해 건너와 이미 오사카에 자리 잡고 있던 친척이나 친지에게 몸을 맡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제주와 오사카, 오사카와 4・3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 이후 남북의 이념 대결 속에서 4・3은 “공산 폭동”으로 규정되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시절이,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본 안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사건으로부터 40년 되는 1988년에야 도쿄에서 첫 추도집회가 열렸고, 10년 뒤 오사카에서도 처음 위령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4・3사건 70년을 맞아 제주 출신 동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에 제주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우자는 뜻에서 추진되었다. 3.6미터 높이의 추모비 기단부에 당시 제주도의 178개 모든 마을(리)에서 가져온 돌을 배치해 놓아, 제주와 연결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재일본4・3사건희생자유족회의 오광영 회장은 “제주에서 돌을 수집해 가져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이 위령비가 아마 국외에서 세워진 최초이자 마지막 위령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개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외에도 제주와 서울, 도쿄에서도 4・3 관련 단체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나도 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해, 사회자로부터 내빈소개를 받고 청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비록 속도는 늦지만 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령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쿠노구의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4・3 관련 전시회에도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074 자연과학 분야에서 줄기차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

노벨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면서 1일 저녁 가장 먼저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 수상자에 일본학자가 포함되었다. 세포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길을 튼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인으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24번째(물리 9명, 화학 7명, 의학생리 5명, 문학 2명, 평화 1명)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일본 전체가 환영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노벨상의 권위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간사이지역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수상자가 교토대 교수이고, 혼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치료약(오푸지보)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있는 회사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오노약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혼조 교수의 면역을 이용한 암 치료 방법 개발은, 감염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발명과 필적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동안 암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의 세 가지로 치료를 해왔는데, 면역치료 방법이라는 새 치료법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암 정복의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것이다.

이런 훌륭한 성과도 성과이지만. 나의 관심은 줄기차게 노벨상, 그것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이다. 혼조 교수는 수상자로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이란 상을 주는 단체가 독자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고 오래 기다렸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다.” “(나의 모토는)호기심과 간단히 믿지 않는 것. 확신할 때까지 한다. 내가 머리로 생각해 납득할 때까지 한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싶다는 것,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의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혼조 교수의 이 말들에 답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이런 탐구심이 발휘되도록 오랜 기간 기다리면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기본적인 토대의 차이는 보지 않고 경제의 압축성장처럼 핵심 분야 몇 곳을 선정해 돈을 집중 투자하면 바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곳 대학에 찾아와 ‘일본은 한국보다 영어 실력도 약한데 어떻게 노벨상을 많이 타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이상실이다.

그런데 부임 이후 이곳 대학들을 방문해 학장들을 만나 보니 많은 분들이 ‘이제 몇 년 뒤부터는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푸념을 한다. 일본 대학에도 최근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배하면서 시간 들고 성과가 불확실한 기초분야를 경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떤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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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자연은 이렇게 무자비하면서도 태연하구나

1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제 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밖은 강한 비바람이 불고 실내의 테레비전은 종일 일본 전국을 연결하며 대형 태풍 짜미의 행로와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오사카는 태풍이 나고야 쪽으로 간 밤 11시 넘어서부터 바람이 강해졌다. 강풍이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긴장 속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 보니 ‘이게 왠걸’ 맑은 하늘에 찬란한 햇빛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어제와 전혀 다른 날씨를 보면서, 자연은 이렇게 무자비하면서도 태연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자연과는 맞서는 것이 아니라 맞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극심한 자연 재해에도 정부 책임을 추궁하기는커녕 스스로 피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아마 험한 자연이 불러오는 무자비한 공세 속에서 오랫동안 학습된 ‘순응 디엔에이(DNA)’가 그들의 세포에 장착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일본의 기상 용어로 ‘매우 강한’ 급의 태풍이 1달 사이에 두 번이나 연달아 온 것은 1992년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달 초 간사이공항 폐쇄를 불러온 제21호 태풍 제비와, 이번의 제24호 태풍 짜미를 이른다.

다행히 이번의 태풍은 오사카에는 제비 때에 비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갔다. 행로가 태평양 쪽으로 치우친데다가, 제비 때 놀란 간사이공항이 미리 태풍 예정일에 활주로를 폐쇄하는 등, 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효과가 컸다.

총영사관도 태풍이 오기 전부터 예방적으로 주의를 당부하는 정보를 수시로 내보냈다. 태풍이 온 당일엔 일요일이지만 대다수 직원이 출근해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며 대응했다. 다행히 여행자 및 교민의 피해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예방 조처 때문인지 당일 문의전화도 예상보다 적었다.

일본에서 몇 차례 재해를 국민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대하면서 느낀 점은, 첫째 예방 대응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상황을 예상보다 더욱 강하게, 더욱 민감하게 상정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외국에서 불의의 사태에 직면하는 개별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공관은 공관대로 이전 대응의 불비함와 미흡함을 반성하면서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재해가 빈발하는 지역에 찾아오는 분들도 방문지에 관한 사전 정보 숙지 등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24호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마자 25호가 바로 뒤따라온다는 뉴스가 나온다. 오기 전 소멸, 또는 다른 쪽으로 방향 전환을 빈다. 이기적인가.

069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재현 행렬에 참석

일본은 어제(15일)부터 3연휴입니다. 월요일이 ‘경로의 날’이라 휴일이기 때문입니다. 총영사관도 현지 휴일에 맞춰 쉬기 때문에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민 행사는 일하는 평일보다 쉬는 휴일에 많이 몰려 있어, 교민 업무가 주된 일 중의 하나인 총영사관 직원들은 휴일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 물어보니, 총영사관 사정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3연휴의 중간일인 16일, 민단교토본부 주최로 2018 코리아페스티발이 열려 참석했습니다. 페스티발의 중심 행사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인데, 저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참석했습니다.

재현 행렬은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 출발해 헤이안신궁을 거쳐 돌아오는 경로로, 1시간 정도 이뤄졌습니다. 다행히 비 예보가 어긋나 우중 행렬은 피했으나,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 참가자들이 좀 힘들었습니다.

교토민단이 주최하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는 올해로 4번째인데, 민단 쪽은 앞으로도 매년 개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행렬을 재현하는 동안 선두에서 풍물패의 공연하고 당시의 복장을 한 통신사 및 수행원, 시민들이 뒤따랐는데, 주위의 사람들도 신기한듯 멈춰선 채 사진을 찍으며 지켜봤습니다. 외국인 배제와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한 우익단체의 차량이 한때 행렬을 따라다니며 방해 행위를 했지만, 저는 이런 행위가 오히려 그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통신사 행사가 발전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현 행렬이 끝나고, 회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국서 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서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에 정사로 참가하게 돼 영광”이라면서 “오늘의 행사가 ‘제2의 조선통신사’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일 모두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더욱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던져준 의미 깊은 행사였습니다.

067 두 나라 관계를 ‘양에서 질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올해는 ‘한일 관광’의 역사, 한일 인적 교류사에서 획기적인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양국을 왕래한 사람의 숫자가 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는데, 올해는 1000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2017년에는 945만명이 왕래를 했다. 일본에 간 한국 사람이 714만명, 한국에 온 일본인은 231만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양쪽 모두 상대국 방문자가 늘고 있고, 일본의 증가율이 더 높다고 한다.

양국의 인적 교류가 느는 데는 가깝고 싸고 짧게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올해의 증가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아베 신조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의 상호 방문 등 정상급 교류 재개 효과가 크다고 생각된다.

두 나라 사이에 1년에 1000만명이나 오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마도 바다 건너 있는 나라 사이엔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일 인적 교류에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하나는 두 나라 사이에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 둘은 질보다 양의 교류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임 전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김에 한국관광공사 오사카지사, 오사카문화원과 함께, 올해 안에 ‘한일 인적 교류 1천만명 시대의 과제’로 심포지움을 열어 보기로 했다. 그것도 순전히 관광 전문가의 눈으로만 보는 심포지움을 개최해 과거의 교류를 회고해 보고, 어떻게 균형 있고 지속가능한 질 높은 교류가 이뤄질 수 있는지를 모색해 보자는 목적에서다.

그날이 바로 9월7일이었다. 오사카를 휩쓸고 간 태풍 피해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시점이어서 아쉽게도 사전에 참석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다수 불참했다. 그러나 일본 쪽 발표자 3명의 발표 내용은 애초 의도에 맞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한국이 일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려면, 서울 부산 제주의 3극 집중체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한국에 흥미가 많은 20-30대에 주목해야 하고, 체험형 상품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3대가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는 여행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나는 축사를 통해 “한일 인적 교류 1천만 시대를 맞아, 이번 심포지움이 두 나라 관계를 ‘양에서 질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나온 얘기 대로 실천하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60 도쿄에서 열린 제26회 한일포럼에 참석

20일부터 22일까지 2박3일간 도쿄 출장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뉴오타니호텔에서 열린 제26회 한일포럼에 참석했었습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파트너십선언 20주년의 맞이하는 해이고,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변하는 와중에서 열린 포럼이어서인지, 갈등보다는 협력에 방점을 둔 충실한 회의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일협력에 관한 두 나라 학생들의 토의와 제언도 좋았고, 저출산 고령화와 미중 무역갈등 등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에 관한 토론과 모색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3회 한일포럼상 수상자로, 오사카총영사관과 관계가 깊은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힘쓴 한일 두 나라 단체(NPO법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 재단법인 부산문화재단)가 선정돼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매어 있는 관계로 발언보다는 듣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모든 세션에 개근하면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007 히가시오사카시와 오사카시 이쿠노구에서 열린 민족학급 어린이 운동회

19(토)와 20(일)일은 히가시오사카시와 오사카시 이쿠노구에서 열린 민족학급 어린이 운동회에 다녀왔습니다.

민족학급이란, 간단히 말해 일본의 초중학교 안에 설치된 재일동포 등을 위한 과외학급입니다. 이 학급에서는 강사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씩 이 학급에 나오는 학생에게 한글과 한국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등이 많은 오사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입니다. 또한 재일동포들이 투쟁을 통해 일본 교육당국으로부터 얻어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19일 히가시오사카의 운동회는 23회, 20일 동부어린이운동회는 33회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참석한 부모와 강사 등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려서 자신의 뿌리,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행사라고 합니다. 이들이 이곳에서 소수자로 생활하면서도 민족의 문화와 말, 뿌리를 잊지 않고 밝게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지금 재일동포 사회는 1,2세대에서 3세 이하로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고, 점차 그 숫자와 참여 열기가 줄어든 게 큰 문제인데 어린이들의 밝고 당당한 모습을 보니 세대교체도 그리 비관적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004j 近畿大学が創った新コンセプトの図書館

先週から大阪地域のマスコミを訪問していますが、今週から大学を訪問することにしました。日韓間の交流をさらに深く息の長いものにするには、高度な学問の交流が重要だと考えるからです。

ここ関西地域には、国立の京都大学や大阪大学、私立の立命館大学、同志社大学、近畿大学、関西大学、関西学院大学などの名門大学が多数あります。

今日は、大学訪問の第一歩として近畿大学の細井美彦学長を表敬訪問しました。細井学長は、韓国の大学における国際化への努力を高く評価され、たいへんありがたく思いました。

私は、カフェのような内装の同学図書館をさらにうらやましく思いました。韓国と同じように、日本の学生たちも最近あまり本を読まないそうですが、新しいコンセプトの図書館を創ってから、図書館に来る学生の数が大幅に増えたそう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