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작년 4월부터 1년이 넘었던 오사카 생활

작년 4월17일 부임했으니, 오사카 생활도 1년이 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오사카에 관한 인상을 묻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오사카 사람은 ‘정이 많다’고 한다. 반면 같은 간사이 지역이면서도 교토 사람들은 배타적이며 자존심이 강하고, 일찍 개항된 고베는 개방적이라고 한다.

이런 지역 특색은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대략 맞을 것이다. 그래도 “1년 정도 살아 보니, 오사카는 어때요?”하는 물음에 마주칠 때마다, 곤혹스럽다.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 대답해야 한다는 그런 식의 곤혹스러움이 아니라, 실제로 오사카의 특성을 말할 만큼 경험이 없는 데서 나오는 곤혹스러움이다.

오사카의 곳곳을 발로 훑고 다니었으면 모를까, 1년 동안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동선은 점과 점을 이동하는 움직임에 불과하다. 이런 부분적인 경험으로는 아직 자신 있게 한 도시, 지역의 성격을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교통 질서에 관해서라면, 일본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곳인 것 같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 청색신호가 들어오기 전에 건너기 시작하고, 붉은 신호가 들어와도 건넌다. 특히 자전거의 폭주는 곡예운전을 방불해, 눈을 뗄 수 없다. 차도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많다. 매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를 산보하면서 보는 광경이다.

또 뭐가 있을까. 다른 동네보다 말과 행동이 빠른 것도 확실한 것 같다. 도쿄에 대한 대항의식이 몸에 배어 있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쉽게 느낀다.

오사카 인상을 묻는 질문을 듣다 보니 나도 오사카의 특성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최근 오타니 고이치씨가 쓴 <大阪学> 시리즈 2권과, 이노우에 쇼이치씨의 <大阪的>라는 책을 구해 읽어 봤다. 이제까지 몰랐던 오사카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와 큰 공부가 됐다. 그래도 필자에 따라 보는 각도도 강조하는 것도 다르다. 또 시대 상황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는 것 같다.

1년이 지났으니, 앞으로는 그래도 오사카에 관해서 몇 마디 할 정도의 식견은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27 한국과 인연이 깊은 학교법인 치벤학원(智辯學園)

나라현과 와카야마현에 초중고교를 두고 있는 학교법인 치벤학원은 한국과 인연이 매우 깊다. 이 학원의 고교생들은 1975년부터 한일관계의 부침에 관계없이 한국에 수학여행을 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안전에 관한 학부모들의 우려도 있고 해서,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여행으로 바꿨다. 첫해는 20명대, 2018년은 40대, 올해(7월 예정)는 희망자가 70명대로 늘었다고, 이 학원의 후지타 기요시 이사장은 말했다. 연수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이 한국여행의 감동을 후배들에게 전해주어 희망자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벚꽃이 절정기를 맞고 있는 4월9일, 치벤학원의 이사장실이 있는 와카야마 치벤학원을 방문했다. 한국과 인연를 생각하면 진작 찾아 갔어야 했는데, 좀 늦었다. 그래도 부임 1년 안에 찾아가 다소 위안이 되었다. 와카야마 치벤학원은 카이난이라는 곳의 언덕에 학교가 있는데, 언덕길에 핀 벚꽃이 아름다웠다. 이곳 학원에는 초중고 포함해 14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치벤학원이 한국 수학여행을 하게 된 것은 이 학원의 설립자인 후지타 데루기요 전 이사장(후지타 기요시 현 이사장의 아버지)이 일본문화의 원류가 한국이라는 것,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사죄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데루기요 전 이사장은 40주년 수학여행 때는 중병임에도 불구하고 산소 호흡기를 단 채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따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그해 숨졌다고 한다.

기요시 이사장은 한일 사이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치는 정치, 교류는 교류”라면서, 학생들이 한국에 다녀오면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또 이전의 대규모 수학여행과 달리 소규모의 연수여행을 하면서 학생들이 더욱 밀도 있게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특히, 홈스테이 하루는 단순 여행 열흘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치벤학원은 고교야구의 강자로도 유명하다. 봄, 여름을 합쳐 고시엔대회에서 3회 우승을 했다. 야구 명문으로 알려져 전국에서 학생들이 쇄도하지만, 와카야마현이 와카야마를 위해 유치한 학교이기 때문에 한 학년 10명의 야구선수 중 타 지방의 학생은 2명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자신의 존재이유를 잘 아는 학교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사장실에는 치벤학원 야구 응원가에 반해 2018년부터 치벤학원과 인연을 맺게 된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선물한 배트와 장갑 등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124j 韓国の大阪総領事として初めて生野区を訪門

大阪市には行政区域として24の区がありますが、大阪市の区は東京都や韓国のそれとは法的地位が異なります。区役所の長(区長)は選挙で選ばれず、大阪市長が任命します。大阪市の区には議会もありません。

24区の一つ、生野区には植民地時代(1910-45)から在日コリアンが集住しています。そのコリアタウン(旧朝鮮市場)は、平日でも韓国の文化やフードを楽しむ日本の若者たちでにぎわっています。政治的に日韓関係が悪いときでも、コリアタウンにはそれをまったく感じさせない熱気があります。

生野区の人口は現在約13万人、韓国籍・朝鮮籍の在日コリアンは約2万2千人です。中国・ベトナム国籍者を含め、約2万8千人が外国人です。以前は住民の約4分の1が在日コリアンでした。最近は帰化などによって割合が低下していますが、大阪の他の地域に比べ、在日が圧倒的に多い地域です。

3月27日に生野区役所を訪ね、山口照美区長にお会いしました。韓国の大阪総領事が生野区を訪門し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そうです。民間出身の山口区長は公募で選ばれ、2017年4月から現職についています。

生野区は歴史的・伝統的に在日コリアンの集住地域なので、互いに協力し、ここを日韓協力と多文化共生の発信地にしていくよう、私は山口区長に提案しました。また、多くの在日コリアン子弟の民族教育に格別の関心を傾けるようお願いしました。同席したオヨンホ民団大阪本部団長も、在日に対する福祉・教育・商業活動ほかの生活支援に尽力してほしい旨要請しました。

山口区長は、生野区が大阪市で外国人の居住率が最も高い地域であることを強調し、積極的に協力する旨を明らかにしました。

117j 京都国際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

京都国際学園京都国際中学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が開かれました。京都国際学園は京都にあるただ一つの韓国系民族学校で、中学校と高等学校の課程があります。

この学校は、京都でも以前から在日コリアンが多く住む東九条に近いところ、観光地では紅葉の名所として知られる東福寺周辺の丘陵にあります。日本人が多く訪ねる伏見稲荷(ふしみいなり)神社も学校の近くにあります。

京都国際の特徴は、大阪の民族系学校である白頭学院建国金剛学園より日本国籍の生徒の割合が多いことです。京都国際高等学校の卒業生はことし41名で、名前だけでみると、日本名29人、韓国名12人です。名前から国籍や血すじを判断できないことが在日の特殊さですが、日本国籍の生徒が多いことは事実です。

京都国際は京都府で優勝をねらえるほど野球チームが強く、野球をしたい日本人生徒の入学が増えているそうです。K-POPなどの韓国文化に魅力を感じる日本人生徒の入学希望も多いといいます。この傾向がことしの新入生募集にも反映し、中高いずれも例年より入学者数が大幅に増えています。

日本人生徒の増加と、韓国語や韓国の歴史・文化などを教える民族学校の特性をいかに調和していくかが今後の課題でしょう。卒業式に出席して、教師や生徒、そして保護者や学園理事がとても明るいことを感じました。このような校風ならば、どんな課題もうまく乗り越えるだろうという気がします。

祝辞のなかで私は、韓国と日本を共に感じ学んだ経験と知識を活用し、日本と韓国にとどまることなく、広く世界に貢献する人材になるよう呼びかけました。

105 고이즈미 전 총리의 첫 저서 “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별명은 ‘헨진(変人)’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별난 사람’ 정도이겠다.

내가 도쿄 특파원을 지냈던 기간(2001-2004)은 그의 집권 기간(2001-2006)의 부분 집합이다. 특파원 하는 동안 그가 유일한 총리였으니, 그를 주어로 하는 기사도 많이 썼다. 두 차례의 평양 방문과 한일 공동 축구월드컵 개최, 그 특유의 ‘극장식 정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그가 총리를 그만 둔 뒤 10년이 넘었는데도 가끔 언론에 등장한다. 최근에도 그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개헌 추진에 대해 “할 일은 안하고 할 수 없는 것만 하려고 한다”고 사정없이 비판한 것이 보도된 바 있다. 여기서 할 일은 원전 제로이고, 할 수 없는 일은 개헌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31일에도 <아사히신문>에 등장했다. <원전 제로, 하려면 할 수 있다>는 그의 첫 저서와 관련한 인터뷰이다. 총리 재직 시절 원전 추진론자였던 그가 2011년 3.11 동북대지진 이후 원전 폐지론자가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던 차였다. 그는 2014년 도쿄도도지사 선거에서는 탈원전 정책에 연대해, 야당계 무소속 후보로 나온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총리 재직 당시)경제산업성이 말하는 ‘원전은 안전, 저비용, 깨끗하다’는 것을 믿었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원전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진지하게 듣지 않고 속았다는 반성도 포함해, ‘일본은 원전이 없어도 지낼 수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이 싸다는 것에 대해서는 “원전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고 세금도 사용하지 않으면, 원전이 더욱 비싸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전 없이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3.11 사고 이후 2년 동안 원전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지만 정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총리에게도 경제산업성에 속지 마라고 애기했는데 반론하지 않고 쓴웃음만 짓더라면서, 아베 총리가 원전 제로에 나서면 금방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그의 생각은 엄청 버뀌었지만, 헨진(変人) 기질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 진보성향의 월간지 <세카이> 2019년 1월호에,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기사가 실려 관심 있게 봤다. 이 기사의 필자는 일본이 배울 교훈으로, 공론화 결과를 그대로 정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 찬반 과열을 불러온 문제, 왜곡 과열보도에 대비한 미디어 대책의 필요성, 왜곡보도를 상정한 제도 설계의 필요성,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공론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일본도 원전정책, 헌법 개정 등 사회적 대립이 깊은 정책에 관해 숙의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095 오사카시 덴노지구 통국사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일요일인 11월 18일 오후, 오사카시 덴노지구에 있는 통국사에서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오사카 지역에 사는 제주 출신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재일본 제주 4・3 희생자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하였다.

일본 지역에 4・3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은, 이것이 최초라고 한다. 아마 일제 시대부터 오사카에 제주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특성이 작용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러일전쟁 때 획득한 군함을 개조해 만든 연락선 ‘기미가요마루’가 1922년부터 제주~오사카를 오갔고, 이때 일본이 급격히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던 사정과 겹치면서, 오사카에 유독 제주 출신이 많이 살게 됐다고 한다. 또 4・3 사건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밀항 등을 통해 건너와 이미 오사카에 자리 잡고 있던 친척이나 친지에게 몸을 맡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제주와 오사카, 오사카와 4・3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 이후 남북의 이념 대결 속에서 4・3은 “공산 폭동”으로 규정되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시절이,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본 안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사건으로부터 40년 되는 1988년에야 도쿄에서 첫 추도집회가 열렸고, 10년 뒤 오사카에서도 처음 위령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4・3사건 70년을 맞아 제주 출신 동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에 제주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우자는 뜻에서 추진되었다. 3.6미터 높이의 추모비 기단부에 당시 제주도의 178개 모든 마을(리)에서 가져온 돌을 배치해 놓아, 제주와 연결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재일본4・3사건희생자유족회의 오광영 회장은 “제주에서 돌을 수집해 가져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이 위령비가 아마 국외에서 세워진 최초이자 마지막 위령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개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외에도 제주와 서울, 도쿄에서도 4・3 관련 단체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나도 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해, 사회자로부터 내빈소개를 받고 청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비록 속도는 늦지만 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령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쿠노구의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4・3 관련 전시회에도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074 자연과학 분야에서 줄기차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

노벨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면서 1일 저녁 가장 먼저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 수상자에 일본학자가 포함되었다. 세포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길을 튼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인으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24번째(물리 9명, 화학 7명, 의학생리 5명, 문학 2명, 평화 1명)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일본 전체가 환영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노벨상의 권위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간사이지역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수상자가 교토대 교수이고, 혼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치료약(오푸지보)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있는 회사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오노약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혼조 교수의 면역을 이용한 암 치료 방법 개발은, 감염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발명과 필적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동안 암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의 세 가지로 치료를 해왔는데, 면역치료 방법이라는 새 치료법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암 정복의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것이다.

이런 훌륭한 성과도 성과이지만. 나의 관심은 줄기차게 노벨상, 그것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이다. 혼조 교수는 수상자로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이란 상을 주는 단체가 독자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고 오래 기다렸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다.” “(나의 모토는)호기심과 간단히 믿지 않는 것. 확신할 때까지 한다. 내가 머리로 생각해 납득할 때까지 한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싶다는 것,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의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혼조 교수의 이 말들에 답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이런 탐구심이 발휘되도록 오랜 기간 기다리면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기본적인 토대의 차이는 보지 않고 경제의 압축성장처럼 핵심 분야 몇 곳을 선정해 돈을 집중 투자하면 바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곳 대학에 찾아와 ‘일본은 한국보다 영어 실력도 약한데 어떻게 노벨상을 많이 타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이상실이다.

그런데 부임 이후 이곳 대학들을 방문해 학장들을 만나 보니 많은 분들이 ‘이제 몇 년 뒤부터는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푸념을 한다. 일본 대학에도 최근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배하면서 시간 들고 성과가 불확실한 기초분야를 경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떤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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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자연은 이렇게 무자비하면서도 태연하구나

1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제 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밖은 강한 비바람이 불고 실내의 테레비전은 종일 일본 전국을 연결하며 대형 태풍 짜미의 행로와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오사카는 태풍이 나고야 쪽으로 간 밤 11시 넘어서부터 바람이 강해졌다. 강풍이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긴장 속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 보니 ‘이게 왠걸’ 맑은 하늘에 찬란한 햇빛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어제와 전혀 다른 날씨를 보면서, 자연은 이렇게 무자비하면서도 태연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자연과는 맞서는 것이 아니라 맞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극심한 자연 재해에도 정부 책임을 추궁하기는커녕 스스로 피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아마 험한 자연이 불러오는 무자비한 공세 속에서 오랫동안 학습된 ‘순응 디엔에이(DNA)’가 그들의 세포에 장착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일본의 기상 용어로 ‘매우 강한’ 급의 태풍이 1달 사이에 두 번이나 연달아 온 것은 1992년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달 초 간사이공항 폐쇄를 불러온 제21호 태풍 제비와, 이번의 제24호 태풍 짜미를 이른다.

다행히 이번의 태풍은 오사카에는 제비 때에 비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갔다. 행로가 태평양 쪽으로 치우친데다가, 제비 때 놀란 간사이공항이 미리 태풍 예정일에 활주로를 폐쇄하는 등, 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효과가 컸다.

총영사관도 태풍이 오기 전부터 예방적으로 주의를 당부하는 정보를 수시로 내보냈다. 태풍이 온 당일엔 일요일이지만 대다수 직원이 출근해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며 대응했다. 다행히 여행자 및 교민의 피해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예방 조처 때문인지 당일 문의전화도 예상보다 적었다.

일본에서 몇 차례 재해를 국민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대하면서 느낀 점은, 첫째 예방 대응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상황을 예상보다 더욱 강하게, 더욱 민감하게 상정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외국에서 불의의 사태에 직면하는 개별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공관은 공관대로 이전 대응의 불비함와 미흡함을 반성하면서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재해가 빈발하는 지역에 찾아오는 분들도 방문지에 관한 사전 정보 숙지 등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24호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마자 25호가 바로 뒤따라온다는 뉴스가 나온다. 오기 전 소멸, 또는 다른 쪽으로 방향 전환을 빈다. 이기적인가.

069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재현 행렬에 참석

일본은 어제(15일)부터 3연휴입니다. 월요일이 ‘경로의 날’이라 휴일이기 때문입니다. 총영사관도 현지 휴일에 맞춰 쉬기 때문에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민 행사는 일하는 평일보다 쉬는 휴일에 많이 몰려 있어, 교민 업무가 주된 일 중의 하나인 총영사관 직원들은 휴일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 물어보니, 총영사관 사정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3연휴의 중간일인 16일, 민단교토본부 주최로 2018 코리아페스티발이 열려 참석했습니다. 페스티발의 중심 행사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인데, 저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참석했습니다.

재현 행렬은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 출발해 헤이안신궁을 거쳐 돌아오는 경로로, 1시간 정도 이뤄졌습니다. 다행히 비 예보가 어긋나 우중 행렬은 피했으나,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 참가자들이 좀 힘들었습니다.

교토민단이 주최하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는 올해로 4번째인데, 민단 쪽은 앞으로도 매년 개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행렬을 재현하는 동안 선두에서 풍물패의 공연하고 당시의 복장을 한 통신사 및 수행원, 시민들이 뒤따랐는데, 주위의 사람들도 신기한듯 멈춰선 채 사진을 찍으며 지켜봤습니다. 외국인 배제와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한 우익단체의 차량이 한때 행렬을 따라다니며 방해 행위를 했지만, 저는 이런 행위가 오히려 그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통신사 행사가 발전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현 행렬이 끝나고, 회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국서 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서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에 정사로 참가하게 돼 영광”이라면서 “오늘의 행사가 ‘제2의 조선통신사’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일 모두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더욱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던져준 의미 깊은 행사였습니다.

067 두 나라 관계를 ‘양에서 질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올해는 ‘한일 관광’의 역사, 한일 인적 교류사에서 획기적인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양국을 왕래한 사람의 숫자가 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는데, 올해는 1000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2017년에는 945만명이 왕래를 했다. 일본에 간 한국 사람이 714만명, 한국에 온 일본인은 231만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양쪽 모두 상대국 방문자가 늘고 있고, 일본의 증가율이 더 높다고 한다.

양국의 인적 교류가 느는 데는 가깝고 싸고 짧게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올해의 증가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아베 신조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의 상호 방문 등 정상급 교류 재개 효과가 크다고 생각된다.

두 나라 사이에 1년에 1000만명이나 오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마도 바다 건너 있는 나라 사이엔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일 인적 교류에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하나는 두 나라 사이에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 둘은 질보다 양의 교류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임 전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김에 한국관광공사 오사카지사, 오사카문화원과 함께, 올해 안에 ‘한일 인적 교류 1천만명 시대의 과제’로 심포지움을 열어 보기로 했다. 그것도 순전히 관광 전문가의 눈으로만 보는 심포지움을 개최해 과거의 교류를 회고해 보고, 어떻게 균형 있고 지속가능한 질 높은 교류가 이뤄질 수 있는지를 모색해 보자는 목적에서다.

그날이 바로 9월7일이었다. 오사카를 휩쓸고 간 태풍 피해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시점이어서 아쉽게도 사전에 참석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다수 불참했다. 그러나 일본 쪽 발표자 3명의 발표 내용은 애초 의도에 맞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한국이 일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려면, 서울 부산 제주의 3극 집중체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한국에 흥미가 많은 20-30대에 주목해야 하고, 체험형 상품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3대가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는 여행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나는 축사를 통해 “한일 인적 교류 1천만 시대를 맞아, 이번 심포지움이 두 나라 관계를 ‘양에서 질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나온 얘기 대로 실천하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