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KPC에서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평화정책에 대해 강연

도쿄에 일본기자클럽(JNPC)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간사이프레스클럽(KPC)이 있다. 일본기자클럽은 전국 단위의 조직으로, 신문, 방송, 통신사 및 기자 등이 참여하는 회원제 비영리단체이다.

간사이프레스클럽은 성격이 비슷하지만, 지역적으로 간사이에 거점을 둔 언론사와 기업, 대학 등에 회원을 한정하고 있다. 간사이지역의 정보 발신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조직으로, 일본기자클럽과는 별개의 독립 단체이다. 두 단체 모두 뉴스가 될 만한 인물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나는 3월13일, 간사이프레스클럽의 초청으로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평화정책>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런 종류의 강연은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1달 이상 앞서 날을 잡는 것이 보통이다. 나도 약 한 달 이상을 앞두고 요청을 받았다. 그때는 2월 말의 하노이 북미회담도 결정돼 있었고. 진전된 합의도 나올 것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여서 즐거운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강연회를 앞두고 사태가 갑자기 반전됐다. 하노이 회담에서 기대했던 합의가 나오지 않고 회담이 끝났다. 강연 내용을 애초 생각했던 것에서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마음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그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상황과,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한반도정책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하노이 회담 이후의 전망과 일본의 역할 등을 설명하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했다.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일본이 특히 한반도 평화 흐름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알리는 게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최근 한일관계가 역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여서, 일본의 시민사회, 여론주도층과 활발한 소통을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강연에서는 일본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정부의 생각, 대통령의 철학, 정책의 배경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했다. 예를 들면, 일본에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의 공포’가 있다면, 한국에는 그와 비견되는 것으로 ‘전쟁의 공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또 한반도의 평화 구축과정에 공통의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50분 정도의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는, 역시나 한일관계에 질문이 집중되었다. 나는 “지금 한일관계는 날씨에 비유하면 눈이 내리고 있는 상태인데 앞으로 눈이 그치고 빗자루를 들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근본적 시각 차이가 있는 역사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고, 잘할 수 있는 경제, 문화, 인적교류를 더욱 강화하면서 개선을 도모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프레스클럽의 강연이었기 때문인지, 지역의 여러 신문, 방송에서 강연 내용을 기사로 다루어 주었다.

보도 참고.
https://www3.nhk.or.jp/kansai-news/20190313/0013444.html

121 종합적인 교사양성기관인 국립대학법인 오사카교육대학

오사카에는 종합적인 교사양성기관인 국립대학법인 오사카교육대학이 있다. 한국에서는 교육대가 주로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지만, 일본에선 유치원에서부터 고교 교사까지를 망라해 양성한다.

오사카교육대학은 학부에 교원양성과정과 별도로 교육심리학, 건강안전과학 등을 전공하는 일반과정도 두고 있다. 부속학교만도 유치원, 초, 중, 고를 포함해 11개나 된다. 전국적으로도 명문으로 꼽히는 텐노지고등학교도 이 대학의 부속학교이다.

캠퍼스는 오사카시에서 나라 쪽으로 떨어진 가시와라시의 산자락에 주 캠퍼스가 있고, 오사카 시내의 텐노지에도 또 하나의 캠퍼스가 있다.

12일 방문한 캠퍼스는 가시와라캠퍼스인데, 마침 후기 입시 날이어서 출입하는 데 절차가 좀 복잡했다. 차로 캠퍼스에 가면서 오르막이라 학생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고개를 돌려보니 이런 사정을 감안한 듯, 정문에서 산 위의 캠퍼스까지 에스컬레이터 시설이 길게 돼 있었다.

이 학교는 학생, 교수 등을 포함해 5천명 규모의 큰 교육대학인데, 졸업생들이 60%정도만 교직에 진출한다고 한다. 졸업생들의 취직 자리가 교직 외에도 많고, 교직이 장시간에 업무 강도가 높기 때문 다른 직업을 찾는 학생이 많다. 이런 경향은 교육대 중에서도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대학이 심하다고 한다.

구라바야시 스미오 학장은 서울교대, 이화여대, 전주교대, 충남대, 공주대, 청주교대, 대구교대, 대구한의대 등 한국대학과 학생 교환 등의 교류를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다문화, 공생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이웃나라인 한국과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가시와라 지역이 식민지 시대에 강제로 징용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 인권운동도 활발했던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또 고대시대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처음 도착해 야마토강을 따라 나라로 이동했던 지역임을 상기한 뒤, 이런 긴 교류의 역사를 보면 최근의 갈등은 한 순간이라면서 상호 이해와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어깨가 무겁다가도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학교는 두 가지의 특색이 있다. 하나는 전국공통이용시설로 학교위기멘탈서포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부속 이케다소학교에서 흉기를 든 침입자가 학생 8명을 살해하는 등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23명이 살상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센터를 세웠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학습 외에 학생들 사이의 이지메, 부등교 등의 문제를 다루는 연합교직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원은 간사이대학과 긴키대학이 함께 참가하고 있다.

120 삼일운동 백년이 되는 해

2019년은 삼일운동(3.1운동)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3.1 만세운동을 거쳐 4월11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로, 삼일운동 100년을 맞는 일본의 재일동포 사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믈론 삼일운동의 전조인 2.8 독립선언이 도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쿄 이외의 다른 지역은 깊은 연관은 없다. 하지만, 오사카총영사관 담당 지역에서도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행사와 움직임이 있었다.

2월14일에 오사카총영사관과 한국산문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윤동주와, 그와 그의 시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힘쓴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를 함께 추모하는 행사를 했다. 또 오사카문화원에서는 윤동주 시의 한글 서예전을 했다. 윤동주와 삼일운동이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폭력, 평화공존을 외친 삼일운동의 정신이 윤동주의 삶과 시 정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삼일절 날 당일에는 예년과 같이 기념식이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인 2부3현(오사카, 교토부, 시가, 나라, 와카야마현)에서 민단 주최로 열렸다. 총영사관에서는 다른 해와 달리, 영사 전원을 담당지역별로 나눠 골고루 파견했다. 그만큼 정부도 삼일운동100년을 의미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각 지역 민단도 기념식에 영화 상영(오사카 민단의 ‘밀정’)이나 강연회(교토. 나라, 시가, 와카야마)를 특별히 배치했다.

나는 오사카 민단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사카 기념식에서는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이제까지의 기념식과 달리 연단을 단상 위에 올리지 않고 참석자들과 같은 평면에 놓았다. 삼일운동을 떠나 탈권위주의, 국민과 함께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동포사회에도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또 기념식 시작에 앞서, 민단이 자체 제작한 삼일운동 100년의 한일관계사 비디오를 상영했다. 점차 당시의 역사를 잊어가는 재일동포 후세들을 교육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겐 제3의 전문가가 만들어준 멋있는 제작물보다, 민단 스스로 만든 소박한 제작물이 더욱 소중하게 보였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한일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우려하는 동포들의 목소리도 많이 들렸다. 때문에 어느때보다도 재일동포들은 대통령의 올해 기념사 내용, 특히 한일관계에 관한 대목을 민감하게 주시했다. 최근의 갈등 분위기가 기념사에도 이어질까 걱정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번 경축사에 일본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없고 미래지향의 협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표정과 말에서 안도와 환영의 모습을 느꼈다. 특히 연설문 중에서 “과거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의 역사는 바꿀 수 있다”는 대목이 동포들의 가슴을 울린 듯했다.

 

119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교토시에 있는 공익재단법인 교토시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하는 연례 포럼 <저고리와 기모노>가 있다. 일본에 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었던 재일동포 1세, 2세의 얘기를 듣자는 차원에서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20회를 맞은 2013년부터 재일 또는 한일관계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초청해 대담하는 형식으로 바꿔 시즌2를 실시하고 있다. 26회째인 올해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감안한 듯,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를 주제로 잡아 2월23일과 3월2일 연속 포럼을 연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23일 포럼의 대담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대담 제목은 <한국의 문 정부가 몰고온 것>, 대담 진행자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였다. 오구라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선사상전사> 등의 책을 쓴 지한파이다. 청중은 60명 정도인데, 절반 정도가 재일동포, 나머지 절반이 일본인인 듯했다.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판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로 악화되어 있는 때여서 매우 부담되는 포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직접 시민들과 만나 한국 쪽의 얘기를 전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요청에 응했다.

실제 날이 닥치니, 말 한마디가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한 상황인지라 긴장도 되고 괜히 응했나 하는 후회스런 마음도 생겼다. 포럼 장소인 교토국제교류회관은 난젠지 부근의 풍광이 좋은 곳에 있고, 봄 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씨였지만, 이런 것도 긴장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담은 처음엔 언론인 출신으로 외교관이 되게 된 배경 등 개인적이고 부드러운 주제로 시작되는 듯했지만, 바로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인가, 3.1절 100주년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등등 점차 난이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했다. 물론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판결,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 양국의 매스컴 문제, 재일동포 역할 등 뜨거운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대담도 대담이지만, 질의응답 시간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교토 사람답게 곤혹스런 질문이
더욱 많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지금의 한국정부를 반일친북이라고 보는 일본의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 강제동원 판결 갈등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성격 규정을 회피한 채 맺어진 1965년 한일협정의 모순이 드러난 것으로 해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또 한일이 지금은 어려운 관계에 있지만 공통된 요소와 가치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관계가 좋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재일동포들에겐 한일관계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게 해 미안하지만, 이제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일본사회의 어려움을 이겨왔듯이 같이 힘을 합쳐 이번 어려움도 이겨 나가자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3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포럼을 끝내고 나니, 그래도 피하기보다는 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8 해외공관에서 하는 ‘찾아가는 동사무소’

오사카총영사관이 2월22일, 재외 국민, 동포를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방식을 선보였다. 이미 벌어진 일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국민이나 동포들의 필요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업방식이다. 그것도 사무실 안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있는 현장에 찾아가서 하는 현장 중시의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국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시작하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많이 퍼진 ‘찾아가는 동사무소'(찾동) 방식의 대민 업무를 해외공관에서도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 아래, 오사카총영사관의 공관 재건축 담당과 가족관계 담당 영사가 이날 오후 오사카민단 회의실에서 100여명의 동포를 상대로 설명회를 했다. 아울러 오사카에 있는 건국, 금강 두 민족학교 관계자도 나와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관 재건축에 관한 설명이 들어간 것은 오사카 동포 사회와 공관 건물의 끈적끈적한 인연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재건축을 위해 해체 중인 옛 공관은 1974년 동포들이 모금을 해서 오사카의 가장 중심지인 미도스지 한복판에 지어준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공관 재건축 일정과 동향에 관해 동포들의 관심이 매우 크다. 공사 진행 상황에 관해서는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3주 정도 간격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동포를 대상으로 직접 설명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여 설명회의 맨 앞에 공관 재건축 설명을 배치했다.

또 재일동포들이 총영사관 민원업무 중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사안이, 재산의 상속, 병역, 국적 등의 재산 및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한 가족관계 및 국적업무이다. 최근 재일동포 사회가 1, 2세에서 3, 4세로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하고 있는 시기여서 이런 분야에 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관계 및 국적을 담당하는 영사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민족학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십년 동안 꿋꿋하게 버티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일본사회와 잘 어울려 살 뿐 아니라 한일 양국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곤란한 상황에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민족학교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은 바로 동포들부터 민족학교의 필요성과 중요성, 성과를 알고 지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민족학교 설명회도 같이하기로 했다.

참석한 동포들에게 이날 설명회에 관한 평가를 일일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집중도와 열기 있는 표정에서 ‘만족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설명회가 일회성의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총영사관’을 상징하는 상시 행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으리라고 본다.

 

117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이 2월16일 열렸다. 교토국제학원은 교토에 있는 유일한 한국계 민족학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두고 있다.

이 학교는 교토에서도 예전부터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히가시구조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관광지 기준으로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도후쿠지(동복사) 주변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후시미이나리신사도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학교의 특징은 오사카의 건국, 금강학교보다 일본 국적의 학생 비율이 많다는 점이다. 이 학교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올해 41명이다. 졸업생 이름만으로 보면, 29명이 일본 이름, 12명이 한국 이름이다. 이름만 보고 국적이나 혈통을 알 수 없는 것이 재일동포 사회의 특수함이기도 하지만 일본 국적의 학생이 많이 다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학교는 교토부에서 우승을 노릴 정도로 야구를 잘한다. 때문에 야구를 하려는 순수 일본 학생들의 입학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케이팝 등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일본 학생들의 입학 희망도 많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올해 신입생 모집에도 반영되어, 중고 모두 예년에 비해 입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일본인 학생이 늘고 있는 경향과, 한국말과 역사, 문화 등 한국 것을 가르치는 민족학교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해 나갈 것인가가 앞으로 이 학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 16일 졸업식에 참석해 느낀 것은, 선생, 학생, 학부모, 학교 이사들의 모습이 무척 밝다는 점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도전도 잘 헤쳐나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졸업식 축사에서 학교에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느끼고 배운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해, 한일 양국뿐 아니라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길 당부했다.

 

116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2월16일에 열리는 추모행사

1945년 2월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수감 중이던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 날이다. 교토에서는 윤 시인이 숨진 날을 전후해,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윤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대학 교정에서는 그가 숨진 날 이전의 토요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윤 시인의 하숙집 앞(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 캠퍼스 앞)의 추도회는 숨진 당일에 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올해는 마침 2월16일이 토요일이어서, 도시샤대 추모회가 16일 열렸다. 묘하게도 교토조형예술대가 주최하는 추모회는 16일이 토요일이어서 학교가 쉬는 바람에 하루 전인 15일에 열리게 됐다.

이런 사정으로 연 이틀 교토에서 윤동주 추모회가 열렸고, 나는 모두 참석했다. 또 14일에는 오사카총영사관과 한국산문작가협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와 이바라기 노리코의 만남’을 기리는 행사를 오사카에서 공동 개최했다. 이바라기 시인은 오사카에 출생한 여성 시인으로, 그가 윤동주 시인에 관해 쓴 글이 지금도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

나는 당연히 주최자로서 이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이것까지 포함해 연속으로 3일 동안 윤동주 행사에 갔다. 사흘 동안 행사에 참가하면서 윤 시인에 관해 듣고 배운 것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많을 만큼, 윤동주 집중 강의를 받은 셈이 되었다. 그것도 한일 양국에서 최고로 꼽힐 만한 윤동주 연구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얘기를 통해 윤 시인과 일본에 얽힌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고등학교용 검정 국어교과서(치쿠마쇼보)에 어떻게 윤동주의 서시 등의 시가 담긴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이 1990년부터 실리게 됐는지(당시 치쿠마쇼보 편집자였던 노가미 다츠히코의 16일 도시샤대 강연. 자세한 얘기는 길어서 생략),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시마 죠를 기념하는 상징물조차 없는 도시샤대에 2005년 윤동주 시비가 세워지게 된 뒷 얘기, 도시샤대의 채플 강당 앞에 세워진 시비가 한반도 쪽인 서쪽을 향해 있고, 시비의 북쪽엔 진달래, 남쪽엔 무궁화가 심어졌다는 사실을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14일의 행사에서는 그저 윤동주 시인을 일본 교과서에 소개한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바라기 시인이 일본 안에서 가장 반전, 평화에 철저했던 엄청난 시인이라는 걸 배웠다. 또 70년,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두 형을 한국의 감옥에 두고 있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가 이바라기 시인의 시와 만나고, 그를 계기를 시인과 직접 만났던 이야기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역사의 한토막이었다.

세 행사를 통해 절감한 것은, 요절한 한 불행한 시인의 삶과 시가 지금도 살아서 여전히 한일 시민 연대의 강한 끈으로 작용하고 있고,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 행사 때 각기 인사말을 부탁받고, 3.1운동 100주년에 맞는 해에 열리는 윤동주 추모행사가 더욱 의미가 깊다고 본다면서, 한일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은 때일수록 3.1운동과 윤동주 시에 공통하는 평화, 비폭력, 인도주의를 살려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115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은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사립대학이다. 1971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설립 당시 경제학부와 법학부로만 출발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경법대학이다.

지금은 경제학부, 법학부 외에 국제학부, 경영학부(올해 신설)와 대학원 과정의 경제학부를 두고 있다. 학생 수는 3000명 정도로, 일본에서는 소규모 대학이다.

2월12일 야오시의 이코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 학교를 방문해, 다바타 리이치 학장를 만났다. 다바타 학장은 러시아 경제를 전공한 경제학자이다.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오사카시립대학에서 전남대와 오사카시립대 사이의 교류를 전면화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관한 지식과 애정도 깊다.

이 학교는 해외 유학생이 전체의 17%, 500명 정도라고 한다. 유학생 출신 나라도 중국, 한국,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해 10여 개국이 된다고 한다. 유학생 이탈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비결을 묻자, 학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의 소개로 오는 학생이 많고, 학생을 꾸짖어도 될 만큼 학생과 학교 사이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신경쓴다고 말했다.

숭실대, 경상대, 이화여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도 활발한 교류도 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로는 태권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교정에는 광개토왕비 레플리카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분분의 학생과 교수가 일본인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한국의 냄새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114 교토부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조요(城陽)시를 방문

2.9(토) 교토부의 조요시를 처음 방문했다.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에 새겨진 문화재 뵤도인(평등원)과 우토로마을, 윤동주의 세번째 시비가 있는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인구 8만명 정도의 작은 시다.

이날 이 시에서 ‘일한 친선 교토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줄여서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 설립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35주년이라는 부러지는 해의 의미도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가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도 민간교류를 가장 모범적으로 하는 곳이므로, 기꺼이 참석했다.

조요시는 현재 경북 경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고, 대구시축구협회와, 어린이, 여자대학 축구 교류 등을 하고 있다. 1982년 교토를 찾은 한국의 어린이 축구팀과 이곳의 팀이 친선경기를 한 것을 계기로, 83년부터 한일친선협회가 만들어지고, 어린이 축구를 중심으로 교류가 확대되어 왔다. 2004년 독도 갈등이 불거지면서 일시 교류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민간차원 교류의 중요성에 공감한 양쪽의 노력으로 지금은 어린이 축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교류가 넓고 깊어지고 있다.

조요시의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일본 황족 출신으로 한일 교류에 힘썼던 다카마도노미야를 기리기 위해 만든 다카마도노미야기념재단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 수상을 계기로 조요시의 어린이축구팀은 이 훈장과 사쿠라와 무궁화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도 어린이 축구팀이 이 유니폼을 입고 단상에 올라와 <고향의 봄> <희망의 나라로>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 기념재단의 스즈키 사무총장도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한국에서도 축구교류에 처음부터 관여해온 김성열 대구광역시축구협회장 등 2명이 참석했다.

나를 비롯한 한일 양쪽의 축사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근 정치와 역사인식 문제로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쁘지만, 이럴 때일수록 민간 교류를 더욱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특히 2005년부터 10년 동안 이 회의 회장을 맡았던 후루세 명예회장은, 교류가 중단되었던 당시 시장이었던 이마미치 시장의 ‘people to people’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교류 재개에 큰 힘이 되었다고 상기했다. 요즘 상황에 잘 들어맞는 말이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 지역에는 조요시 외에 기시와다시(오사카부), 모리야마・야스시(시가현)가 대표적으로 민간 교류가 잘 되는 곳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을 보면, 단체장과 시 의회 의원 등 지역의 여론 주도층이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그 밑에 스포츠 교류와 같은 끈끈한 접착제, 온 힘을 기울여 교류를 이끌고 가는 헌신적인 활동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113 오사카니치니치[大阪日日]신문 인터뷰 기사

오사카 지역의 일간지 <오사카니치니치신문>이 최근의 한일관계와 민간교류,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해, 1월31일 응했습니다. 그 기사가 2월 7일 나왔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니, 기사가 5단 광고를 뺀 전면 크기로 실렸습니다. 크기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얼굴이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나와 좀 쑥쓰러웠습니다. 기사 내용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정리해 놓아 안심했습니다.

나는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전시 강제동원 노동자 판결 등으로 정부 사이에 갈등이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갈등의 근본 원인은 과거 역사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은 채 1965년 협정이 체결된 데 있으므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서로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는 냉랭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따듯한 ‘관랭민온’ 현상도 감지된다면서, 양국 인적교류가 지난해 처음으로 1천만명을 돌파한 점, 양국에서 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 일류 붐이 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 오사카에서 고령화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열리는 국제박람회는 일본을 뒤따라 노령화 사회로 가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면서, 역사, 문화적으로 예전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간사이가 한일우호의 메카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평화 움직임과 관련해, 비슷한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두 나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자 출신으로서 양국 매스컴이 ‘당국자 말 전하기’ 중심의 공중전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보도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