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으로 학우들과 소풍을 갔던 우지강가

윤동주 시인이 교토의 도시샤대학(동지사대)에 다니면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학우들과 소풍을 갔던 곳, 우지강가를 걷는 행사가 5월18일 열렸다. 2017년 우지강과 시즈카와강이 만나는 지점에 ‘기억과 화해의 비’라는 윤동주 시비를 세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가 개최한 행사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2회째. 행사 시기를 5월로 한 것은 1943년 윤동주 시인 일행이 우지강가로 소풍을 했던 실제 시기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우지강변이 상류에 당시에 없던 우지댐도 생기고 1943년 때와는 많이 바뀌었지만, 윤동주 시인이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따라 코스를 잡았다.

지난해 첫 행사 때는 40여명이 참석했다는데, 올해는 유감스럽게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햇볕이 강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걷기에 적당한 날씨였는데, 아마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사전 일기예보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몇 달 전에 행사 주최 쪽에 참가를 약속한 터여서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로 갔다.

오전 10시에 게이한선 우지역 광장에서 출발해, 우지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갔다. 우지강변의 상점가를 거쳐 조금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에 나오는 뵤도인(평등원)이 있다. 지금은 성인의 경우 600엔의 입장료를 받는데 당시는 담이 없어 그냥 들어갔다고 한다.

뵤도인에서 20여분 더 걸어서 올라가면 당시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아마가세 현수교가 나온다. 이 사진에 나온 현수교의 줄이 윤 시인이 우지강으로 마지막 소풍을 온 장소를 특정하는 근거가 됐다고 한다.

여기서 또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우지강을 막아 만든 아마가세댐이 나오고 이 댐의 바로 밑에 있는 바위에서 윤 시인 일행이 야유회를 했고, 윤 시인이 여기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댐 때문에 접근할 수 없고, 일행은 댐 위에서 그곳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면서 꺾은 들꽃을 던져 헌화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마지막 장소는 시비가 있는 곳에서, 시비에 새겨져 있는 <새길>을 비롯해 몇 편의 시를 한글과 일본어로 번갈아 읽고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했다. 나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 아쉽게도 마지막 해산식까지는 참석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매년 시인의 추억을 더듬는 우지강 걷기 행사는 강물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

133 조수미와 함께 오사카에서 울려퍼지는 한일화합의 멜로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가 오사카에 떴다. 그리고 오사카의 NHK홀을 한일우호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오사카한국문화원은 6월 28~29일 열리는 G20 오사카정상회의를 앞두고, 5월17일 오사카 NHK홀에서 ‘조수미와 함께 오사카에서 울려퍼지는 한일화합의 멜로디’ 공연행사를 했다.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다.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얼어붙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서라도 양국의 화합을 꾀하자고 기획한 행사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1300석의 좌석이 이른 시간에 꽉 찼고, 끝난 시간이 밤 9시반이 되었는데도 감동한 청중들이 자리를 뜨길 망설일 정도였다. 특히, 조수미가 마지막에 앵콜곡으로 선사한 두 곡이 관중을 사로 잡았다. 첫번째는 오키나와의 민요인 ‘하나(꽃)’를 피아노 연주만으로 일본어 메모를 보면서 불렀다. 또 앵콜이 나오자, “한국과 일본의 우호를 바란다”는 영어 인사와 함께 라데츠키행진곡을 부르며 직접 청중에 박수를 유도해 홀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마치 아이돌 그룹의 공연장을 방불하게 했다.

한국의 전통악기인 해금과 일본의 전통악기인 사쿠하치의 협연도 감동적이었다. 주위의 일본인 참석자들도 정말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역시 한일 두 나라 사이엔 아무리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어도 문화적으로 통하는 끈끈한 것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저녁이었다. 물론 이런 한일 시민의 연대, 우호를 이끌어낸 가장 큰 주역은 카리스마 넘치는 조수미씨, 그리고 훌륭한 연주를 해준 경기필과 한일의 음악가들이었다.

132 금강학원과 OK배정장학재단의 업무협약

‘스승의 날’인 5월15일, 오사카의 민족학교 금강학원(이사장, 조영길)과 OK배정장학재단(이사장, 최윤)의 업무협약식이 금강학원 안에서 열렸다. 금강학원의 우수학생 및 우수 교사 유치, 한국어 능력 향상, 민족의식 함양 사업 등을 배정장학재단이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재일동포 사회가 노령화, 귀화자 증가 등으로 점차 약화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다. 총영사관에서도 나와 교육담당 영사가 참석해 격려를 했다.

OK배정장학재단 이사장인 최씨는 재일동포 3세로, OK저축은행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의 회장이다. 국내외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사업을 정력적으로 펼치고 있고, 2015년부터는 일본 안의 5개 민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6억원 정도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한 학교와 민족교육 강화를 위해 포괄적인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금강학원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의 협정도 재일동포 출신으로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최 회장의 의지로 이뤄졌다고 한다.

나는 축사를 통해 “이번 협약을 계기로 금강학원이 세계 최고로 한일을 잘아는 인재를 키워내는 요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강학원은 장학재단의 지원금으로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한다. 말이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이해하는 첫 창구라는 점에서 좋은 시도라고 본다.

이번 협약을 기점으로, 금강학원이 한국말과 일본말, 한국문화와 일본문화, 한국역사와 일본역사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잘아는 학생을 길러내는 요람으로 자리잡기 바란다. 재일동포의 미래도, 한일관계의 미래도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힘에 기대를 걸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31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계열의 오타니대학

간사이 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불교계 대학이 많은 것 같다. 이 지역에 오래된 절이 많은 것과 관계가 깊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토에만 불교대학, 류코쿠(龍谷)대학, 오타니(大谷)대학이 있다. 5월15일 오타니대학을 방문했다. 지난해 갔던 류코쿠대학이 니시혼간지 (西本願寺)계열의 대학인 데 비해, 오타니대학은 히가시혼간지 계열의 대학이다.

이 대학은 교토의 북쪽의 비교적 한적한 곳에 있다. 정문의 바로 앞쪽에 일본 천태종(天臺宗)의 본산이 엔랴쿠지(延曆寺)가 자리 잡고 있는 히에이산(比叡山)이 솟아 있다. 캠퍼스는 다른 대학에 비해 아담하지만, 정문에서 들어가자마자 1913년에 완공됐다는 진겐칸 건물(국가 등록 문화재)이 범상치 않은 학교 역사를 과시한다.

1665년 히가시혼간지의 학료로 출발한 이 학교는 이름을 오타니대학으로 해, 1922년 종교, 철학,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문과계 단과대학으로 출발했다. 2018년부터는 문학부뿐 아니라 사회학부와 교육학부 등 3부 체제를 갖추었다. 인원이 적지만 대학원 과정도 운영한다. 학생은 대략 3천명 정도라고 한다.

이 학교의 건학이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 건 구호가 「Be Real-寄りそう知性ー」이다. 여기서 리얼은 두 가지 의미라고 기고시 야스시 학장은 설명한다. 하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Real이고, 또 하나는 현실의 Real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밀착한 지성을 키워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는 한국과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 동국대, 동서대 등 4개대와 교류를 하고 있다. 학생교류는 한국에서 오는 경우보다 단기연수 등으로 한국에 가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특히 최근의 특이한 경향으로는 한국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도 한국어 수업에 많이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동석한 한 교수는 설명했다.

기고시 학장과는 앞으로 대학, 학문, 지식교류를 활발히하는 것이 한일관계를 좋게 하는 길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학장이 1층까지 따라와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 등을 소개해주었다. 다음 기회에 히가시혼간지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일본의 불교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기대가 크다.

130 상전벽해[桑田滄海]가 된 오사카 한국문화원

4월27일부터 5월6일까지 10 연휴가 끝났다. 일을 하면서 휴가가 아니고 열흘을 연속해 쉬는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덕분에 긴 휴가를 통해 심신을 충전하고 7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휴식은 필요하고 좋긴 하지만, 한번에 너무 오래 쉬는 것은 다시 일을 시작하는 데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9일 오후엔 오사카 한국문화원의 ‘신장개업’ 행사가 있었다. 오사카문화원은,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의 이듬해인 99년 3월 미

도스지의 오사카총영사관 안에 개설되었다. 이후 2007년에 지금의 장소인 나카자키초의 오사카민단 건물 안으로 이사를 갔다.

문화는 부드럽고 밝은 인상을 줘야 하는데, 민단 안의 문화원은 시설이 오래된 탓도 있어 어둡고 칙칙한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거금을 들여 분위기를 밝고, 한국적인 특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도록 대대적인 개조를 했다. 이전에 문화원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화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상전벽해가 된 문화원을 만날 수 있다.

일단 전체 분위기가 밝아졌다. 공동시청을 할 수 있는 대형 평면 모니터와 사이너지 광고판,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을 중계로 볼 수 있는 모니터가 눈에 띈다. 그리고 벽면에 한국의 예술, 문화를 상징하는 도자기, 공예품, 케이팝 스타의 이미지 등이 잘 전시되어 있다.

이날 신장개업 행사에는 동포뿐 아니라 예술, 문화, 언론계 등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들도 모두 완전히 바뀐 문화원 분위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인사말을 통해 “최근 한일 양국이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문화교류는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런 것을 보면서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새로 개장을 한 것을 계기로 오사카문화원이 간사이지역에서 일본 전국을 향해 한국문화와 한일우호를 더욱 강하게 발신하는 장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마침 한일 양국의 미술가들이 10년 넘게 이어온 ‘한일 우호 아트페어’ 개막식도 함께해 문화를 통한 한일우호 강화의 분위기를 돋구었다. 또 행사 뒤 교류회에서는 김밥, 나물, 잡채, 떡, 불고기 등의 풍성한 한국음식이 모두를 즐겁게했다.

그릇이 아무리 좋아도 내용이 엉터리면 없어보이듯이, 화려한 치장을 한 채 재출발하는 문화원도 그에 값하는 내용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고 본다. 좋은 그릇이 마련된 만큼 좋은 내용을 채우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고나 할까.

 

128 한국관광공사 오사카지사 주최 코리아 미식 만찬회

오사카의 벚꽃도 끝물로 접어들고 있다. 일요일인 4월14일엔 종일 비가 와서 마지막 벚꽃 구경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듯했다.

이날 저녁에 한국관광공사 오사카지사 주최로, 오사카 시내의 한 호텔에서 <갈라 디너쇼 ‘코리아 미식 만찬회’> 행사가 열렸다.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은 40~60대를 대상으로,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한식 반상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프랑스 미슐랭 식당 및 특급호텔에서 일한 적이 있는 이승준 쉐프가 와서 음식을 선보였다. 본격적인 식사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탈랜트 송옥숙, 천호진씨가 나와 한국음식을 주제로 토크쇼를 했다.

봄비 치고는 꽤 강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100여명의 일본 중년층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나도 비를 뚫고 참석해, 눈과 혀, 그리고 귀의 즐거움을 맛봤다.

본격적인 식사회가 시작되자, 이승준 쉐프가 직접 무대로 나와 ‘봄과 시작’을 주제로 만든 음식을 일일히 설명했다. 음식을 먹는 중간중간에 게스트인 송옥숙씨 즉석 인터뷰도 했다. 송씨는 초반엔 “보기도 먹기도 좋은데 양이 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내더니, 마지막엔 “배우는 경험으로 연기를 하는데 나중에 귀부인 역을 할 때 오늘 이 자리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연기를 하겠다”고 대만족을 표시했다.

송씨의 말에 이날 행사의 모든 것이 집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송씨는 일본에서 한류의 빗장을 연 <겨울연가>에서 주인공인 배용준씨(욘사마)의 어머니 역을 맡은 바 있어, 일본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참석한 일본 사람들도 “한국음식의 새로운 면을 알았다. 정말 맛 있고 좋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일관계가 나라 차원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밑에서는 한류가 더욱 다양하고 넓고 깊게 퍼지고 있음을 느꼈다.

126 시가현 고카시 시가라키쵸의 산속에 있는 미호뮤지엄

4월6일(목)엔 시가현 고카시 시가라키쵸의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호뮤지엄에 갔다. 시가라키는 간사이지역에서 유명한 도예 마을이다.

미호뮤지엄이 유명한 것은 두 가지이다. 먼저 이 뮤지엄을 설계한 사람이 세계적인 건축가인 중국계 미국인 아이엠 페이이다. 페이는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의 유리 피라미드,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 동관을 설계했는데, 이곳 뮤지엄에도 삼각구조의 유리지붕 등 그의 건축 특징이 잘 표현돼 있다. 특히 이 뮤지엄의 설계 테마는 중국의 도원향이라고 하는데, 뮤지엄까지 곡선의 터널을 통해 가도록 한 데서 도원향으로 가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양에서 동양까지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로마, 이집트, 중근동, 간다라, 중국 등의 미술품 2000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남관에 있다. 이집트, 서아시아, 그리스 로마, 남아시아, 중국 페르시아로 방을 나눠 전시하고 있다. 특히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제19왕조 때의 호루스동상이 유명하다는데, 내 눈엔 모든 게 진귀했다.

내가 갔을 때 특별전은 교토의 다이도쿠지(대덕사) 용광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전이었다. 평소에는 비공개하는 다도와 관련한 보물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인지, 다도 등에 관심이 많은 일본 관객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일본에 국보로 지정된 것이 세 개밖에 없다는 검은색의 요헨텐모쿠 찻잔(13세기, 송나라)이 출품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박물관은 총 30만평의 부지에 전시관의 바닥면적이 5800평 정도 되는 규모인데, 험한 산지에 이런 건물을 도원향을 테마로 지은 것 자체가 예술이다. 이 박물관은 종교단체 신자수명회를 만든 고야마 미호코(1910~2003)가 1997년 11월에 개관했다.

125 통국사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71주년 위령제

4월인데도 날씨가 춥다. 요즘 몇일 최고기온이 11도, 12도 정도다. 바람까지 불어 겨울이 다시 온 듯한 느낌이다. 오사카에서 벚꽃이 피었다고 기상청이 발표(3월27일)한 지가 알주일이 지났는데도 쌀쌀한 날씨 때문에 꽃 구경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피었던 꽃도 다시 외투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봄날씨를 ‘춘래불사춘(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花曇り(하나 구모리)’라는 말이다. 벛꽃이 필 무렵 추위가 올 때 쓰는 말이란다.

4월3일의 오사카 날씨가 바로 춘래불사춘이요, 하나 구모리였다. 이런 스산한 날씨 속에서 오사카의 덴노지구에 있는 절 통국사에서 제주 4.3사건 71주년 위령제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4.3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진 곳이다.

오사카총영사관에서도 나를 포함해 10여명의 직원이 이곳에서 처음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했다. 가보니, 희생자가족, 이곳 시민들로 구성된 위령제 실행위원회 관계자, 민단과 총련 관계자를 포함해 50여명 모였다. 통국사 스님들의 독경에 이어 선향과 참배를 하는 순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오사카가 제주 빼고는 4.3사건과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이기 때문인지 제주 KBS에서도 현지 취재를 왔다. 나는 위령제가 끝난 뒤 잠시 인터뷰 요청이 있어 응했다. 총영사관에서 처음 위령제에 참석한 의미와 공관의 4.3 피해자 지원 대책 등을 물었다. 나는 “오늘 총영사관뿐 아니라 피해자, 시민, 민단, 총련 관계자까지 다함께 모여 위령제를 해, 희생된 분과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나가면서 이곳의 시민, 유족들과 의견을 나누며 도움이 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위령제를 마치고 나오면서, 느리지만 그래도 역사는 한발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124 한국 총영사가 처음으로 찾아간 이쿠노(生野)구청

오사카시에는 구가 24개 있다. 그러나 오사카시의 구는 도쿄도나 한국과 법적 지위가 다르다. 구청(구약소)의 장을 선거로 뽑지 않고 시장이 임명한다. 구에는 구의회도 없다.

24개의 구 가운데 이쿠노구가 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재일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코리아타운(옛 조선시장)에는 평일에도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즐기려는 일본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나쁘지만 코리아타운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현재 이쿠노구의 전체 인구는 13만명 정도 된다. 그 가운데 한국국적, 조선적의 재일동포가 2만2천여명이다. 중국, 베트남 국적자를 포함하면 2만8천명 정도가 외국인이다. 예전에는 4분의 1 정도가 재일동포였는데, 최근은 귀화 등의 이유로 비율이 떨어졌다. 그래도 오사카의 다른 지역에 비해 동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3월27일 이쿠노구청을 방문해, 야마구치 데루미 구청장(구장)을 만났다. 우리나라 오사카 총영사가 이쿠노구청을 찾아간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야마구치 청장은 민간인 출신으로 공모를 통해 발탁되어 2017년 4월부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야마구치 청장에게 이쿠노구가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재일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니 서로 협력해 이곳을 한일협력, 다문화공생의 발신지로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또 이곳의 많은 재일동포 어린이들의 민족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했다. 또 동석한 오용호 민단 오사카본부 단장도 재일동포들의 복지, 교육, 상업활동을 비롯한 생활 지원에 힘써 줄 것을 요청했다.

야마구치 구청장은 이쿠노구가 한국을 포함해 외국인 거주 비율이 오사카시에서 가장 높은 지역임을 강조하며,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23 오사카에서 발상한 아사히신문의 창간 140주년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사히신문의 발상지는 오사카이다. 그래서 올해 1월, 창간 140주년 기념행사도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의 나카노시마에 있는 오사카본사에서 했다.

나카노시마에 있는 오사카본사 건물은 페스티발시티로 불리는 쌍둥이 건물의 한 채인 페스티발타워에 있다. 요츠바시스지를 사이에 두고 있는 페스티발타워 웨스트에는 콘래드호텔과 고세츠미술관을 비롯한 문화, 쇼핑, 음식점 등이 들어 있다. 두 건물은 지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지하로 통해 있는 하나의 건물 타운이다. 오사카의 랜드마크의 하나이기도 한데, 쌍둥이 건물의 소유주는 아사히신문사이다. 이 건물만 봐도 아사히신문의 재력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

아사히신문의 출입구는 13층이다. 그리고 9층이 임원실, 12층부터 10층 사이에 편집국 등이 배치되어 있다. 13층의 출입구 앞에는 아사히신문의 역사를 상징하는 두 개의 물건이 있다. 하나는 창간호를 찍던 수동식 인쇄기이고, 또 하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로 된 신문사 현판이다. 이 전시물을 보면, 아사히신문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3월26일 부임한 뒤 아사히신문사를 두번째 방문했다. 첫번째는 부임 뒤 한 달도 안된 때여서 어리둥절했는데, 1년쯤 지난 뒤 가니 이것저것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갑자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생각났다.

이번 방문은 첫 방문 이후 바로 사장이 바뀌었는데도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만나던 차에 비로소 시간을 잡으면서 이뤄졌다. 후지이 다쓰야 사장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같은 업종 출신이어서 그런지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일관계, 북미관계, 문화교류, 오사카 지방선거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