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나쁜 한일관계의 내용, 질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최근의 어려운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하다. 어떤 전문가는 사상 최악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문제에서 최상급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지적인 게으름의 반영, 또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쉽게 동원되는 것이 최상급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세광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던 1970년대 중반보다 지금의 한일관계가 더 나쁜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과연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한일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분명히 나쁘다. 그런데 나쁜 것의 내용, 질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어느 일본 학자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한일 사이에 있었던 역사인식의 갈등은 정치적 수준(나의 생각으로는 ‘수사적 수준’)에서 진행되었었는데,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 노동 판결을 계기로 법률적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나는 이 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한일 갈등이 이전처럼 정치적인 타협으로 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본다. 왜 한일 갈등이 법적 갈등까지 왔는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일 갈등은 예전과 양태가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웃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는 말처럼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면, 일반 국민의 관계도 나빠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최근은 정부 관계자와 매스컴이 갈등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민간 차원에선 별로 그런 모습을 느낄 수 없다.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감촉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이런 현상을 ‘관랭민열(官冷民熱)’로 정의한다. 관이나 매스컴은 치열하게 치고받는데, 일반시민은 담담하거나 오히려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실제 한일은 지난해 정부 사이의 갈등 속에서도, 1050만명 이상이 서로 양국을 오고가는 1천만명 교류시대를 열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 여기부터는 나의 가설이다. 첫째,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과의 인식 차이다. 둘째, 상대국을 직접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다. 셋째, 전문가 집단과 보통 시민 사이의 차이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위의 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1월28일 자로 발행된 일본 주간지 <아에라>에 이런 현상을 다룬 기사가 났다. 나의 가설을 모두 만족하는 기사는 아니지만, 한일 갈등의 새 모습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기사라고 본다. 문제를 잘 알아야 해답도 잘 구할 수 있다.

어디서든 문제는 항상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문제의 연속적인 풀이 과정이 우리의 삶이고 역사라면, 우리는 좀 더 냉정하고 겸허하게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고 본다.

108 한닐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은 흔들림 없이 해야 한다

일본 지역 총영사관의 1월 전반기는 각종 신년회에 참석하느라 눈코뜰새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사카총영사관은 맡고 있는 지역은 2부3현(오사카부, 교토부, 나라현, 와카야마현, 시가현)이므로, 민단 신년회만 해도 다섯 곳에서 열린다. 여기에 신년회와 비슷한 시기에 성년식(1월14일이 성년의날)도 열리는데, 신년회와 별도로 하는 곳이 많다.

행사가 비슷한 시기에 몰려 있기 때문에 총영사관 직원들이 각각 지역을 나눠 참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해는 4월 지방의원와 7월 참의원 선거가 있는 때문인지 정당 신년회도 활발하다. 나는 동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12일)와 교토(11일) 민단 신년회와, 초청장이 온 공명당 오사카본부(9일)와 입헌민주당 오사카부연합(13일) 신년회에 참석했다.

올해 민단 신년회의 특징은 두 차례 선거가 있기 때문인지 일본의 각 당 국회의원들과 지방의원들이 어느때보다 많이 참석한 점인 것 같다. 특히 오사카 민단 신년회에는 한국에서 주승용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9명의 여야 의원들도 참석해 격려를 했다. 또 강제노동 판결과 레이더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분위기가 싸늘할 것으로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한일 양쪽을 대표해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정부 사이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은 흔들림 없이 해야 한다는 데 흐름을 같이한 점이다.

이런 절제 분위기가 형성된 데는 아마 그동안의 학습을 통해 정부 사이의 갈등을 민간까지, 지방까지 확산해서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인사말을 통해 정부 사이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지난해 1천만명 이상이 상호 왕래를 하고 제3의 한류 붐도 일어나는 좋은 분위기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우호, 협력에 힘쓰자고 말했다.

두 당의 신년회는 선거를 앞둔 발대식 같은 분위기였다. 공명당과 입헌민주당 모두 야마구치 나쓰오, 에다노 유키오 당대표까지 참석한 가운데 두 선거에 나갈 후보자를 단상에 세운 채 일일이 소개했다. 이 지역에 강한 지지 기반이 있는 공명당은 2천명 정도가 참석해, 세를 과시했다. 입헌민주당도 1년전 사무실도 없는 상태에서 오사카부연합을 만들었다는데, 5백명 정도가 회의장을 메우는 성황을 이뤘다. 역시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정치와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정치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107 일본 월간지 世界 2월호에 실렸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인터뷰 기사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월간지 <세카이>와 한 인터뷰 기사가 최근 발매된 2월호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위안부 문제의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입니다.

잡지의 편집 특성 때문에 지난해 10월31일에 인터뷰한 것이 이제야 나왔습니다. 바로 전날이 대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 대법 판결이 나온 날이어서, 사실 인터뷰 시점으로는 미묘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정책이 제대로 일본 안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인터뷰 요청에 응했습니다.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티에프’ 위원장을 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도 작용했습니다. 일본의 시민을 대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현 정부의 생각을 직접 전하는 것이, 이 문제에 관한 일본 시민의 이해를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7페이지에 걸친 긴 인터뷰이기 때문에, 위안부와 관련한 논점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힌 내용이지만, 일본에서 이런 길이와 깊이의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지는 12.28 위안부 합의는 공개 부분만 보면 일정한 성과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소녀상 이전, 정대협 반발 억제, 국제사회에서 비판 자제, 해외 기림비 한국정부 지원 자제 등을 담고 있는 비공개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피해자 중심 접근에 어긋난 합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한일은 이 문제를 국제사회가 쌓아온 전시 여성인권 문제의 해법에 따라 할 일을 해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갈등은 문제의 성격상 한 번에 쉽게 해결되기 어렵고, 한일 사이에는 역사갈등 말고 북한핵을 비롯해 협력할 중요한 문제도 많으니, 갈등이 폭주하지 않게 관리하면서 협력의 분모를 키워나가는 방법으로 한일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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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19년 업무를 시작하는 날

오늘은 1월4일, 일본의 공공기관 등이 2019년 업무를 시작하는 날이다. 오사카총영사관도 오늘 오전 시무식을 하고, 올해의 첫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출근길과 상점가가 아직 한산하다. 올해는 4일이 금요일이어서, 회사나 상점가는 내친 김에 6일까지 쉬고 7일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총영사관은 문을 열자마자 민원인들이 몰려왔다. 지난해 12월31일부터 문을 닫고 있어, 그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일 것이다.

오전 9시반, 민원실 직원을 빼고 1층 꿈 갤러리에 모여 시무식을 했다. 예전엔 직원들 외에 동포 단체, 기업 대표까지 총영사관에 초청해 시무식을 했는데, 올해는 직원끼리만 했다. 실용과 내실을 중시하는 정부 방침, 공관의 임시 이전에 따른 공간의 협소함을 두루 감안한 결정이다.

시무식에 공관 직원이 아닌 분들을 대거 초청하는 것이 권위주의적인 관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던 차였다. 그래도 그동안 하던 걸 안 하니 서운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더욱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함으로써 이런 허전함을 메워주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시무식에서는 세 가지 점을 강조했다. 올해 오사카에서 6월 말에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차질 없이 지원할 것, 군림하지 않고 봉사하는 총영사관의 자세를 더욱 강화할 것, 한일의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더욱 발로 뛸 것이다. 시무식이 끝나고 점심 때는 근처 한국식당에 부탁해 가져온 떡국을 함께 먹으며 덕담을 나눴다.

오후에는 오사카부, 시, 오사카상공회의소, 간사이경제연합회, 오사카경제동우회가 공동으로 연 신년회에 참석했다. 올해 첫 공식 외부 일정이다.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부 지사를 비롯해 마이크를 잡은 모든 사람이 2025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주요 화제로 삼아 인사를 했다. 박람회 유치의 기쁨이 간사이 지역을 아직도 압도하고 있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간사이 지역의 쇠퇴하는 경제력을 박람회를 통해 되살려 보자는 절박함도 엿볼 수 있었다.

안팎에서 열린 두 시무식을 통해, 2019년 업무의 준비운동은 마친 셈이다. 이제 새로운 한 해와 때론 싸우며, 때론 보조를 맞추며 씨름할 일만 남았다. 그 씨름의 끝이 웃음이길 바란다.

104 오사카총영사관도 일본의 관례를 따라 12/29부터 1/3까지 쉽니다

12월28일은 한 해의 업무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를 넘길 때 새해 첫날만 휴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처럼 공식으로 쉬는 날, 즉 빨간 글씨는 1월1일 하루이지만, 새해를 전후해 일주일 정도(토일 포함) 쉬는 게 관례입니다. 일본지역 한국 공관도 이에 맞춰 업무를 조정합니다.

그래서 오사카총영사관도 12월28일 문을 닫고(종무식), 내년 1월4일부터 문을 다시 엽니다.(시무식) 오사카총영사관은 이날 오후에 1층 강당에서 음료와 과자, 과일 등을 놓고 조촐한 종무식을 했습니다. 일부 직원들의 외부 활동과 민원업무 때문에 한꺼번에 모든 직원이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이날 행사가 열린 장소에서는 11월17일부터 시작한 민족학교, 민족학급 학생들의 미술작품 전시가 이뤄지고 있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우리 총영사관은 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 장소를 ‘꿈 갤러리’라고 이름 붙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좋은 작명인 것 같습니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재일동포를 비롯한 국민들이 멀게만 느꼈던 총영사관을, 동포들과 소통하는 친숙한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기획의 산물입니다. 특히, 재일동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젊은 청소년 재일동포와 소통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꿈 갤러리라는 말은 매우 적절하다고 봅니다. 또 더욱 낮고 열리고 친절한 자세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관이 되자는 저의 공관 운영 방침을 잘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사카총영사관 직원들은 오늘 종무식에서 올해 간사이지역을 습격한 여러 재해 등을 협력을 통해 잘 극복했듯이, 내년에도 ‘군림하지 않고 봉사하는’ 총영사관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부디 내년에도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하며 오사카총영사관을 대표해 송년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들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좋은 새해 맞길 바랍니다.”

103 한일 사이에 있는 문화적 시차; 국립민족학박물관 방문

지난 주 서울에서 열린 공관장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니,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바쁘다. 한일 사이에는 물리적 시차가 없지만, 문화적 시차가 있다는 것도 확실하게 느낀다.

오사카 업무 복귀 첫날인 20일에는 오사카부 스이타시에 있는 국립민족학박물관을 방문했다. 쭉 해오던 일이지만 잠시의 공백 때문인지 왠지 낯설다.

국립민족학박물관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장소(지금은 자연문화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바로 당시 오사카 만박의 상징물 ‘태양의 탑’이 우뚝 서 있다. 1977년에 개관했는데, 민족박물관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라고 한다. 이 박물관은 안에 대학원 교육의 기능도 갖춰 문화인류학 등의 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것도 세계 유일이라고 한다.

나는 요시다 겐지 관장 등을 만나 박물관 설명을 듣고, 문화를 통한 교류 활성화와 우호 증진을 위해 협력하자고 말했다. 물론 모든 참석자들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교류의 기본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요시다 관장과 면담을 마치고 한국문화 전문가인 오타 신페이 박사의 안내로, 동아시아관의 한국문화와 일본문화 전시만 둘러보고 왔다. 이번엔 시간이 없어 단축 관람에 그쳤지만, 다음엔 꼭 전체를 둘러보고 싶다. 전시관은 오세아니아를 시작으로 동쪽으로 돌아 세계를 일주한 뒤 마지막에 일본에 도달하도록 돼 있는데, 전체를 보는데 대략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전시물의 구성도 좋지만, 일본 특유의 섬세함을 더한 가옥 등의 미니어추어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102 오프지보를 개발해, 팔고 있는 오노약품공업

4월 부임 이후 담당지역 안 주요 기업 탐방을 하고 있다. 6월 자동차 윤활유 첨가제 제조기업인 산요카세이공업(주)를 시작으로, 파나소닉, 일본전산, 교세라, 오므론, 무라타, 다이와하우스 등 다양한 회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7일 올해 마지막 일정으로 오노약품공업 본사를 찾았다.

오노약품공업은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면역체계를 이용한 암 치료제 ‘오프지보’를 개발해, 팔고 있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임시로 이전한 오사카총영사관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번에 방문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사가라 교 사장을 만나자마자 “이웃으로서 이렇게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회사가 나온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 회사는 오가카의 약재상거리인 도쇼마치에서 300년 전(1717년) 약제상으로 시작해, 1947년 제약회사로 변신했다. 현재는 3천5백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 일본에서 중간 규모의 제약회사이다. 일본에서 대규모 제약회사는 7천명 이상이 된다고 사가라 사장은 설명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도 50명 규모의 판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오노약품공업의 훌륭한 점은 중간 규모의 회사이면서도 대기업도 하기 힘든, 장기간에 걸친 투자를 통해 오프지보 같은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물론 간사이지역은 교토대, 오사카대 등 기초 의학 연구가 튼튼한 대학이 많이 몰려 있어 신약을 개발하기에 환경이 좋은 편이다. 그래도 중규모의 회사가 신약 개발에 손을 대는 것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가라 사장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사풍과 연구욕, 이를 둣받침해주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경영진의 결단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법인 말고 본사에도 한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인재가 있다면서, 한국 젊은이들은 가슴이 뜨겁고, 국제무대에 나가 일하려는 진취성이 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한국의 제약업에 대해서 전반적으로는 일본에 뒤지지만 일부 바이오 분야에서 혁신적인 신약이 나오는 등 크게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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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시즈오카현 초청으로 오사카영사단 시즈오카현을 방문

12월4일은 시즈오카현이 주최하는 오사카영사단 초청 시즈오카현 방문행사에 다녀왔다. 가와카즈 헤이타 지사가 시즈오카현을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4년째 벌이는 행사이다.

나도 중국, 파나마, 인도네시아, 몽골, 이탈리아, 인도 총영사(인도는 영사 대리 참석)와 함께 참석했다.

첫 일정은 에도와 교토를 잇는 도로인 도카이도의 53 역참의 풍경화로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 우타카와 히로시게 미술관을 방문했다. 우키요에는 목판화로 대량생산했던 에도시대의 풍속화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 목판을 새기는 사람, 색을 발라 찍어내는 사람 등으로 분업해 작업이 이뤄졌다.

다음 행선지는 2017년 말 개관한 후지산세계문화센터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반 시게루의 설계로 후지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날씨가 흐려 진짜 후지산은 보지 못했다. 대신 센터 안에 설치된 사진과 동영상 등을 통해 다양한 후지산을 봤다. 센터는 후지산을 거꾸로 세워놓은 형태인데, 센터 앞의 연못에는 원래의 형상이 되도록 한 것이 독특했다.

이곳에는 하루에 1500명 정도의 관람객이 들어오는데, 대략 교토국립박물관이나 나라국립박물관 수준의 입장객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시즈오카방재센터에 가서 쓰나미의 무서움과 대처방법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시뮬레이션 지진 체험을 했다. 이어 현청에서 가와카즈 지사를 만나 얘기를 듣고 저녁에 오사카로 돌아왔다.

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시즈오카현은 인구(370만명)와 국내총생산 규모가 뉴질랜드와 비슷하다. 가와카즈 지사는 도쿄와 오사카에 독립국처럼, ‘후지노구니 영사관’을 두고 있다면서,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더불어 잘사는 것을 현의 방침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즈오카현을 후지노구니라고 부르는 것은 법률적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독립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거의 엇비슷한 정책과 행사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의 지자체에게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100 시가현 민단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참석; 곤고린지와 햐쿠사이지를 탐방

12월 첫 주말인 1일과 2일은 시가현으로 1박2일 출장을 다녀왔다. 2일 열린 시가현 민단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김에 하루 먼저 현지에 가, 한반도와 깊은 인연이 있는 절 두 군데(곤고린지, 햐쿠사이지)를 탐방했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 지역인 2부3현(오사카부, 교토부, 나라현, 와카야마현, 시가현) 가운데, 올해 창단 70주년을 맞는 지방 민단이 나라, 와카야마, 시가현 민단 세 곳이다. 나라와 와카야마는 이미 11월에 기념식을 했고, 시가 민단이 마지막으로 12월2일 행사를 했다. 다른 두 지역은 지난해 70주년이었다.

시가 민단은 단원이 4천명 정도 되는, 비교적 작은 조직인데 알차게 행사를 준비했다. 특히, 이곳이 조선통신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점에 착안해 연 ‘조선통신사 심포지엄이 눈에 띄었다.

시가현은 12차례의 조선통신사 가운데 10 차례나 경유한 곳으로, 숙박지와 휴식처에 통신사 일행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을 표시하는 ‘조선인가도’의 표석도 있고, 옛길도 곳곳에 그대로 있다. 또 하나 이 지역과 조선통신사의 인연은 조선통신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인 아메노모리 호슈가 이곳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의 탄생지인 시가현 나가하마시 다카쓰키쵸에는, 그를 기념하는 아메노모리 호슈암이 있다. 그곳에 보관돼 있는 책과 기록 등이 지난해 말 조선통신사 기록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록될 때 대거 포함됐다.

민단 쪽은 행사장 입구에, 시가 지역에 있는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판넬로 만들어 전시했다. 동포들도 이런 사실을 처음 접하는 듯, 행사 틈틈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일본의 최단기 총리 기록을 가지고 있는 시가 출신 우노 소스케 집안이 가지고 있는 조선통신사 시문도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시가 민단 쪽은 조선통신사를 비롯해, 고대 시대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왕성했던 지역의 특성을 살려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활성화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 관계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미카즈키 다이조 시가현 지사를 비롯한 일본의 유력자들도 많이 참석해, 민단 70주년을 축하해줬다.

나는 하루 전날 백제 또는 그 이전부터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햐쿠사이지(백제사)와 곤고린지(금강륜사)를 방문해, 주지스님으로부터 한반도와 두 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일본에서는 백제라고 한자로 쓰고 ‘구다라’라고 읽는데, 이곳은 한자음 그대로 읽고 있는 데서도 백제와 인연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곤고린지는 백제계인 행기 스님이 창건했는데 이 절 자리가 그 이전부터 이곳에 영향력이 컸던 도래인 하타씨의 기도 장소였다고 전해진다고, 이 절의 주지 스님은 설명했다.

시가현은 교토나 나라만큼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대는 동해 쪽에서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이 여러 문화를 전파했고, 조선 시대엔 조선통신사의 주요 행로였을 정도로 한반도와 인연이 넓고 깊다. 이런 사실을 더욱 깊게 알게 된 1박2일이었다.

099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11월23일~24일 오사카지역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관계자들이 모여 연수회를 했습니다. 그때 주최 쪽으로부터 저한테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이지만, 오래전부터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 그리고 4월 부임한 뒤 현지의 민족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면서 느낀 것 등을 종합해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하고 보완할 점이 많지만, 일본 안의 재일동포 민족교육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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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안녕하십니까. 오사카 총영사 오태규입니다. 먼저 단풍이 멋지게 물든 시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민족학급 선생님들을 비롯한 민족교육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수를 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 깊은 연수회에 참가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8월 여기서 멀지 않은 시가현 비와코 근처에서 열린 제55회 재일본 한국인 교육자대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만, 저는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 모국인 한국의 발전, 더 나아가 일본 및 세계를 위해서도 민족교육의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와 함께하고 있는 간사이지역의 민족교육 관계자는 대략 4천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백두학원 건국학교, 금강학원 금강학교, 교토의 교토국제학원 등 3개 민족학교에 8백여명의 학생과 150명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또 오사카부의 공립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우리나라 뿌리를 가지고 있는 3천여명의 초중학교 학생이 55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말, 우리문화, 우리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 지방자치단체 별로 하고 있는 여름캠프나 하계학교 등을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민족교육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첫째, 민족학교, 민족학급을 포함한 민족교육은 바로 재일동포 사회, 재일한국인 공동체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민족학교나 민족학급은 단지 학생들이 우리 것을 배우는 곳일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를 포함해 재일동포 사회를 아우르는 중심입니다. 이곳에서 어린 학생이 우리 것을 배우면, 그것이 학부모 및 지역 사회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점차 확대해 나가듯이, 학생 바로 다음에 학부모가 있고, 그 뒤에 재일동포 사회가 있습니다.

둘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재일사회를 이어주는 탯줄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한국의 말, 문화, 역사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재일사회로 확산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국과 서로 물리적으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한국, 한국 것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일본안의 민족교육은 존재론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다함께 고려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우리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것을 지키면서 일본 속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며 사느냐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민족교육은 일본 속에서 살면서 우리 것을 배우고, 우리 것을 간직하면서 일본에 살아야 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넷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관계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그래야 민족교육의 의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국제적인 기준과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제대로 활약할 수 없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한일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공존을 가르치고 배울 수밖에 없는 민족교육은 다문화, 공생, 공존을 핵심 가치로 하는 국제화 시대의 인재를 길러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족교육은 점차 축소되고 왜소화해가는 재일동포 사회를 강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일동포가 축소되어 간다고 해도 우리 것으로 튼튼하게 무장된 차세대가 계속 배출되는 한 재일동포 사회는 굳건하게 유지, 발전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민족교육이 살아 있는 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재일동포 사회는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민족교육이 지금 위기에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위기라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상황은 비관적으로 보되 행동은 낙관적으로 하자‘는 뜻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민족교육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세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저는 민족교육이 살아남는 것을 넘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민족교육을 성공과 실패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1, 2세가 중심이 되어 전개해왔던 민족교육은 일본 사회의 탄압과 차별,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생존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단단한 뿌리 의식을 가지고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민족교육도 그런 상황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포들은 조국에 돌아가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남아 성공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차별적인 환경도 동포들의 노력과, 인권과 공생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영향을 받아 점차 개선되어 왔습니다. 지금 일본 국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되고 있는 출입국관리난민인정법(입관난민법) 개정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일본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다문화 공생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반영해, 재일동포의 민족교육도 기존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것에 더해 다문화, 공생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차별 극복의 한 다리가 아니라, 다문화 공생과 함께 두 기둥으로 민족교육이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마이너리티)입니다. 최근 일본에는 필리핀, 네팔, 스리랑카 등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일동포는 역사적으로나 숫자로나 ‘소수자들의 맏형’, 즉 영어로 말하면 ‘메조리티 오브 마이너리티스’입니다. 당연히 그들 소수자의 권리까지 대변하고 이끄는 맏형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열심히 재일동포 이외의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일국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사회도 소수자들과 잘 공존공영하지 못하면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생각해, 소수자와 같이 살기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성패는 일본 사회의 다문화, 공생사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일본 사회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소수자의 대표인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등의 새로운 소수자와 공생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사회가 함께 재일동포 민족교육이 이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할 때, 비로소 일본의 다문화 공생사회는 성공으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과 비전은 일본의 공생뿐 아니라, 한국, 동아시아, 세계의 공생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더욱 넓고 더욱 멀리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는 민족교육을 만들어 나갑시다.

최근 우리 오사카총영사관에서는 민족학교와 민족학급 학생들의 그림을 1층 회의실에 ‘사제동행 아트쇼’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영사관이 우리 동포사회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아울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총영사관을 민족교육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총영사관도 여러분이 가는 민족교육의 여정에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마침 이번 연수회는 우토로마을, 아메노모리 호슈암, 우키시마마루 순난지, 단바망간기념관을 더듬는 길로 짜여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픈 역사도, 좋은 역사도 있습니다. 역사 탐방의 의미는 흘러간 일을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연수가 그런 길로 나아가는 기점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지만,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라는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을 상기하면서 저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