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j 困難な時期に開催した京都市国際交流協会主催フォーラム

京都市にある公益財団法人京都市国際交流協会が主催する毎年恒例の<チョゴリと着物>というフォーラムがあります 。日本に暮らしながら、自らの考えや意見を言う機会がなかった在日コリアン一世と二世の話を聞く場として、1993年に始まったといいます。第20回を迎えた2013年から在日コリアンや日韓関係に関連する人を招待し、対談形式にしてシーズン2を実施しています。 第26回のことしは、急変する朝鮮半島情勢を考慮して、<激動する韓半島をめぐって: 東アジアの過去・現在・未来>をテーマに2月23日と3月2日、連続フォーラムを開催します。

光栄なことに、私は23日のフォーラムの対談ゲストとして招待を受け参加しました。対談のテーマは「韓国のムン政権がもたらしたもの」、対談の進行は小倉紀蔵京都大学教授でした。小倉教授はソウル大学哲学科博士課程で韓国哲学を学び、『韓国は一つの哲学である』『朝鮮思想全史』などを著わした「知韓派」です。参加者は60人程度で、約半分が在日コリアン、残りの半分が日本人だったように思います。

日韓関係が強制徴用工の大法院判決をはじめ、さまざまなことで悪化している時期でもあり、たいへん負担を感じるフォーラムでした。とはいえ、このように困難なときにこそ直接市民と会って韓国側の話を伝えることに意味があると考え、対談に応じました。

開催日が近づくにつれ、私の発言一言が波紋を呼ぶかもしれない微妙な状況だからか、緊張し、どうして応じてしまったのか後悔する気持ちも生じました。フォーラム会場の京都国際交流会館は南禅寺付近の風光明媚なところにあり、春の陽気がただよう天気でしたが、それさえも緊張をほどくには不十分でした。

対談は初めジャーナリスト出身で外交官になった背景など、個人的な滑らかなテーマで始まりました。でも、すぐにムン・ジェイン大統領は反日なのか、三一節百周年で日韓関係はより困難になることはないのか等、徐々に難易度が高いテーマに移りました。もちろん、慰安婦問題は、強制動員判決、北朝鮮の核問題をはじめとする韓半島問題と日本の役割、双方のマスコミの問題、在日コリアンの役割など、ホットな問題も話題になりました。対談も対談ながら、質疑応答の時間には、厳しいことで有名な京都人らしく困惑する質問がさらに多く噴出しました。

私はいかなる質問も避けることなく、限界のなかで最善を尽くして回答する姿勢に徹しました。現在の韓国政府を反日・親北と見る日本の見方は間違っている、強制動員の判決をめぐる対立は植民地支配の性格規定を回避したまま結ばれた1965年の日韓協定の矛盾が明らかになったため解決が容易でない、朝鮮半島の平和定着に日本の役割が重要であり、今後さらに大きくなる、などの意見を明らかにしました。

また、現在、日韓は困難な関係にあるが、共通する要素と価値観を共有しているので、長期的には関係がよくなるし、また、そうなるように互いに努力したい、とも述べました。在日コリアンには、日韓関係の悪化により困難にさらされていることを申し訳なく思うが、これまでの不屈の精神により、日本社会の困難を克服しきたように、今回も力を合わせ、現今の困難を克服していきたい、と訴え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

緊張の3時間に及ぶフォーラムを終えて、回避することなく応じてよかった、という気持に包まれました。

119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교토시에 있는 공익재단법인 교토시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하는 연례 포럼 <저고리와 기모노>가 있다. 일본에 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었던 재일동포 1세, 2세의 얘기를 듣자는 차원에서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20회를 맞은 2013년부터 재일 또는 한일관계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초청해 대담하는 형식으로 바꿔 시즌2를 실시하고 있다. 26회째인 올해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감안한 듯, <격동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 >를 주제로 잡아 2월23일과 3월2일 연속 포럼을 연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23일 포럼의 대담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대담 제목은 <한국의 문 정부가 몰고온 것>, 대담 진행자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였다. 오구라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선사상전사> 등의 책을 쓴 지한파이다. 청중은 60명 정도인데, 절반 정도가 재일동포, 나머지 절반이 일본인인 듯했다.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판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로 악화되어 있는 때여서 매우 부담되는 포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직접 시민들과 만나 한국 쪽의 얘기를 전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요청에 응했다.

실제 날이 닥치니, 말 한마디가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한 상황인지라 긴장도 되고 괜히 응했나 하는 후회스런 마음도 생겼다. 포럼 장소인 교토국제교류회관은 난젠지 부근의 풍광이 좋은 곳에 있고, 봄 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씨였지만, 이런 것도 긴장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담은 처음엔 언론인 출신으로 외교관이 되게 된 배경 등 개인적이고 부드러운 주제로 시작되는 듯했지만, 바로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인가, 3.1절 100주년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등등 점차 난이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했다. 물론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판결,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 양국의 매스컴 문제, 재일동포 역할 등 뜨거운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대담도 대담이지만, 질의응답 시간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교토 사람답게 곤혹스런 질문이
더욱 많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지금의 한국정부를 반일친북이라고 보는 일본의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 강제동원 판결 갈등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성격 규정을 회피한 채 맺어진 1965년 한일협정의 모순이 드러난 것으로 해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또 한일이 지금은 어려운 관계에 있지만 공통된 요소와 가치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관계가 좋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재일동포들에겐 한일관계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게 해 미안하지만, 이제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일본사회의 어려움을 이겨왔듯이 같이 힘을 합쳐 이번 어려움도 이겨 나가자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3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포럼을 끝내고 나니, 그래도 피하기보다는 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8j 訪ねていく市・区役所方式の対民間サービス

2月22日、 大阪総領事館は 海外の韓国民・コリアンを対象に新たなサービスを披露しました。すでに行われていることに事後対応するのではなく、事前に国民・コリアンの必要を理解し、事前に対応する方式です。総領事館内ではなく、彼らのいる現場に訪ねていって行う現場中心の方式です。韓国ではソウル市のパク・ウォンスン市長が最初に立ち上げ、いまや全国に広がった「訪ねていく市・区役所」方式の対民間サービスを海外公館でも試みようという趣旨です。

この日の午後、大阪民団の会議室で大阪総領事館の改築担当領事と家族関係担当領事が、コリアン100人を相手に説明会を開催しました。大阪にある民族系学校の白頭学院と金剛学園の 関係者も出席し、学校紹介の時間を設けました。

総領事館の改築に関する説明を行ったのは大阪のコリアン社会と総領事館ビルの緊密なつながりがあったからです。現在、改築のために解体されている旧館は1974年に韓国民・コリアンの募金により大阪の中心街、御堂筋の真ん中に建てられたものです。このような経緯のため、新館の建設予定と進捗状況に関するコリアンの関心はとても大きいのです。建設工事の進捗状況は総領事館のサイトに3週間ごとに知らせています。これとは別に、コリアンに対し直接説明するのが礼儀だと考え、説明会の冒頭に総領事館の改築状況についてお話しすることにしたのです。

なお、在日コリアンの総領事館相談サービスで最も多い相談は、財産相続、兵役、国籍などの財産と実生活に密接した家族関係やサービスです。最近、在日コリアン社会は一・二世から三・四世へと本格的に 交代する時期にあり、これらの分野に対する関心が大きいのは当然です。そこで、家族関係や国籍担当の領事が直接説明することにしたのです。

民族学校は困難な状況にあって、数十年じっと耐え、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守りつつ、日本社会に適合しながら暮らしながら、日韓双方に貢献する人材を育成しています。ただ、現実として生徒数が減り続ける困難な状況にあります。このように大き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民族学校を活性化する近道は、コリアン自身が民族学校の必要性と重要性を理解し、成果を知って支援することです。このように考え、民族学校の説明会をこの機会に行うことにしました。

今回、説明会の参加者個々に評価を尋ねることはしませんでした。ただ、彼らの集中度と熱気あふれる表情から一定の満足感をうかがうことができました。このような説明会が一回のデモにとどまることなく、「仕(つか)える総領事館」を象徴する恒例行事になるよう求められているように思いました。

118 해외공관에서 하는 ‘찾아가는 동사무소’

오사카총영사관이 2월22일, 재외 국민, 동포를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방식을 선보였다. 이미 벌어진 일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국민이나 동포들의 필요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업방식이다. 그것도 사무실 안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있는 현장에 찾아가서 하는 현장 중시의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국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시작하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많이 퍼진 ‘찾아가는 동사무소'(찾동) 방식의 대민 업무를 해외공관에서도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 아래, 오사카총영사관의 공관 재건축 담당과 가족관계 담당 영사가 이날 오후 오사카민단 회의실에서 100여명의 동포를 상대로 설명회를 했다. 아울러 오사카에 있는 건국, 금강 두 민족학교 관계자도 나와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관 재건축에 관한 설명이 들어간 것은 오사카 동포 사회와 공관 건물의 끈적끈적한 인연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재건축을 위해 해체 중인 옛 공관은 1974년 동포들이 모금을 해서 오사카의 가장 중심지인 미도스지 한복판에 지어준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공관 재건축 일정과 동향에 관해 동포들의 관심이 매우 크다. 공사 진행 상황에 관해서는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3주 정도 간격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동포를 대상으로 직접 설명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여 설명회의 맨 앞에 공관 재건축 설명을 배치했다.

또 재일동포들이 총영사관 민원업무 중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사안이, 재산의 상속, 병역, 국적 등의 재산 및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한 가족관계 및 국적업무이다. 최근 재일동포 사회가 1, 2세에서 3, 4세로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하고 있는 시기여서 이런 분야에 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관계 및 국적을 담당하는 영사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민족학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십년 동안 꿋꿋하게 버티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일본사회와 잘 어울려 살 뿐 아니라 한일 양국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곤란한 상황에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민족학교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은 바로 동포들부터 민족학교의 필요성과 중요성, 성과를 알고 지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민족학교 설명회도 같이하기로 했다.

참석한 동포들에게 이날 설명회에 관한 평가를 일일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집중도와 열기 있는 표정에서 ‘만족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설명회가 일회성의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총영사관’을 상징하는 상시 행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으리라고 본다.

 

117j 京都国際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

京都国際学園京都国際中学高等学校の第54回卒業式が開かれました。京都国際学園は京都にあるただ一つの韓国系民族学校で、中学校と高等学校の課程があります。

この学校は、京都でも以前から在日コリアンが多く住む東九条に近いところ、観光地では紅葉の名所として知られる東福寺周辺の丘陵にあります。日本人が多く訪ねる伏見稲荷(ふしみいなり)神社も学校の近くにあります。

京都国際の特徴は、大阪の民族系学校である白頭学院建国金剛学園より日本国籍の生徒の割合が多いことです。京都国際高等学校の卒業生はことし41名で、名前だけでみると、日本名29人、韓国名12人です。名前から国籍や血すじを判断できないことが在日の特殊さですが、日本国籍の生徒が多いことは事実です。

京都国際は京都府で優勝をねらえるほど野球チームが強く、野球をしたい日本人生徒の入学が増えているそうです。K-POPなどの韓国文化に魅力を感じる日本人生徒の入学希望も多いといいます。この傾向がことしの新入生募集にも反映し、中高いずれも例年より入学者数が大幅に増えています。

日本人生徒の増加と、韓国語や韓国の歴史・文化などを教える民族学校の特性をいかに調和していくかが今後の課題でしょう。卒業式に出席して、教師や生徒、そして保護者や学園理事がとても明るいことを感じました。このような校風ならば、どんな課題もうまく乗り越えるだろうという気がします。

祝辞のなかで私は、韓国と日本を共に感じ学んだ経験と知識を活用し、日本と韓国にとどまることなく、広く世界に貢献する人材になるよう呼びかけました。

117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

교토국제학원 교토국제고등학교 제54회 졸업식이 2월16일 열렸다. 교토국제학원은 교토에 있는 유일한 한국계 민족학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두고 있다.

이 학교는 교토에서도 예전부터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히가시구조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관광지 기준으로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도후쿠지(동복사) 주변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후시미이나리신사도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학교의 특징은 오사카의 건국, 금강학교보다 일본 국적의 학생 비율이 많다는 점이다. 이 학교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올해 41명이다. 졸업생 이름만으로 보면, 29명이 일본 이름, 12명이 한국 이름이다. 이름만 보고 국적이나 혈통을 알 수 없는 것이 재일동포 사회의 특수함이기도 하지만 일본 국적의 학생이 많이 다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학교는 교토부에서 우승을 노릴 정도로 야구를 잘한다. 때문에 야구를 하려는 순수 일본 학생들의 입학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케이팝 등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일본 학생들의 입학 희망도 많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올해 신입생 모집에도 반영되어, 중고 모두 예년에 비해 입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일본인 학생이 늘고 있는 경향과, 한국말과 역사, 문화 등 한국 것을 가르치는 민족학교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해 나갈 것인가가 앞으로 이 학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 16일 졸업식에 참석해 느낀 것은, 선생, 학생, 학부모, 학교 이사들의 모습이 무척 밝다는 점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도전도 잘 헤쳐나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졸업식 축사에서 학교에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느끼고 배운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해, 한일 양국뿐 아니라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길 당부했다.

 

116j 詩人尹東柱が福岡刑務所で獄死した2月16日

詩人の尹東柱(ユンドンジュ 1917-45)は収監されていた日本の福岡刑務所で1945年2月16日に獄死しました。詩人の命日前後に毎年、京都で追悼行事が行われています。詩人が通った同志社大学キャンパスでは彼の命日前の土曜日に追悼行事を催し、彼の下宿先(現在は京都造形芸術大学キャンパス前)では命日に追悼会を催しています。

ことしは命日が土曜のため、同志社大学は16日に追悼会を催し、京都造形芸術大学は土曜が休みのため、前日の15日に催しました。

このような事情から、二日続けて京都で尹東柱追悼会が開かれ、私はいずれも参加しました。また、14日には三一運動百周年を記念し、大阪総領事館と韓国散文作家協会が共同で「尹東柱と茨木のり子の出会い」を讃える行事を大阪で開催しました。詩人の茨木のり子氏(1926-2006)は大阪生まれです。彼女が尹東柱について書いた文章が、今も日本の高校の現代文の教科書に載っています。

主催者として、私もこの行事に参加しました。三日連続で尹東柱にまつわる行事に参加したのです。これらの行事を通じて、ユン詩人についてよく知っているつもりでいながら知らなかった多くのことを集中講義で学びました。また、日韓双方を代表する尹東柱の研究者、専門家の講演と話を通じてユン詩人にまつわる、日本における多くの事実を新たに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

日本の高校現代文の検定教科書(筑摩書房)に尹東柱の序詩を含む茨木のり子氏(1926-2006)の文章が1990年から掲載された経緯(当時、筑摩書房の編集者だった野上龍彦氏の同志社大における講演)を知り、同志社大の創設者、新島襄の記念像さえ一体もない同志社大に2005年、尹東柱の詩碑が建てられた裏話、同志社大のチャペル前に建てられた詩碑が、韓半島のある西を向き、詩碑の北側にツツジ、南側にムクゲを植えたということも関係者から聞くことができました。

14日には、詩人尹東柱を日本の教科書に紹介した詩人としてのみ知っていた茨木氏が日本で最も反戦平和に徹した秀でた詩人だったことを知りました。また、70-80年代の厳しい時代に二人の兄上が韓国の刑務所に収監されていた徐京植(1951-)東京経済大学教授が茨木氏の詩と邂逅し、それを通じて詩人に会った話は、涙なしには聞けない歴史のひとこまでした。

三つの行事を通じて痛感したことは、早世した薄幸な詩人の人生と詩が今も生き続け、日韓の市民連帯の強い絆と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後世の人々が何をなすべきか、警鐘を鳴らし続けているという事実です。

私は三つの行事それぞれで挨拶をしました。三一運動百周年の年に開催される尹東柱の追悼行事は格別意義深いと述べました。そして、日韓関係が良くないときだからこそ、三一運動と尹東柱に共通する平和・非暴力・人道主義を活かし、日韓友好のために尽力するよう呼びかけました。

116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2월16일에 열리는 추모행사

1945년 2월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수감 중이던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 날이다. 교토에서는 윤 시인이 숨진 날을 전후해,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윤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대학 교정에서는 그가 숨진 날 이전의 토요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윤 시인의 하숙집 앞(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 캠퍼스 앞)의 추도회는 숨진 당일에 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올해는 마침 2월16일이 토요일이어서, 도시샤대 추모회가 16일 열렸다. 묘하게도 교토조형예술대가 주최하는 추모회는 16일이 토요일이어서 학교가 쉬는 바람에 하루 전인 15일에 열리게 됐다.

이런 사정으로 연 이틀 교토에서 윤동주 추모회가 열렸고, 나는 모두 참석했다. 또 14일에는 오사카총영사관과 한국산문작가협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와 이바라기 노리코의 만남’을 기리는 행사를 오사카에서 공동 개최했다. 이바라기 시인은 오사카에 출생한 여성 시인으로, 그가 윤동주 시인에 관해 쓴 글이 지금도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

나는 당연히 주최자로서 이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이것까지 포함해 연속으로 3일 동안 윤동주 행사에 갔다. 사흘 동안 행사에 참가하면서 윤 시인에 관해 듣고 배운 것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많을 만큼, 윤동주 집중 강의를 받은 셈이 되었다. 그것도 한일 양국에서 최고로 꼽힐 만한 윤동주 연구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얘기를 통해 윤 시인과 일본에 얽힌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고등학교용 검정 국어교과서(치쿠마쇼보)에 어떻게 윤동주의 서시 등의 시가 담긴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이 1990년부터 실리게 됐는지(당시 치쿠마쇼보 편집자였던 노가미 다츠히코의 16일 도시샤대 강연. 자세한 얘기는 길어서 생략),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시마 죠를 기념하는 상징물조차 없는 도시샤대에 2005년 윤동주 시비가 세워지게 된 뒷 얘기, 도시샤대의 채플 강당 앞에 세워진 시비가 한반도 쪽인 서쪽을 향해 있고, 시비의 북쪽엔 진달래, 남쪽엔 무궁화가 심어졌다는 사실을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14일의 행사에서는 그저 윤동주 시인을 일본 교과서에 소개한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바라기 시인이 일본 안에서 가장 반전, 평화에 철저했던 엄청난 시인이라는 걸 배웠다. 또 70년,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두 형을 한국의 감옥에 두고 있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가 이바라기 시인의 시와 만나고, 그를 계기를 시인과 직접 만났던 이야기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역사의 한토막이었다.

세 행사를 통해 절감한 것은, 요절한 한 불행한 시인의 삶과 시가 지금도 살아서 여전히 한일 시민 연대의 강한 끈으로 작용하고 있고,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 행사 때 각기 인사말을 부탁받고, 3.1운동 100주년에 맞는 해에 열리는 윤동주 추모행사가 더욱 의미가 깊다고 본다면서, 한일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은 때일수록 3.1운동과 윤동주 시에 공통하는 평화, 비폭력, 인도주의를 살려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115j 学校法人理事長が韓国人の大阪経済法科大学

大阪経済法科大学は韓国人が学校法人理事長を務める、日本でただ一つの私立大学だと思われます。 1971年に設立されたこの大学は当初、経済学部と法学部のみでしたので、大学名も経法大学です。

現在は経済学部・法学部のほか、国際学部・経営学部(今年新設)と大学院経済学研究科を置いています。学生数は3000人ほどの、日本では小規模な大学です。

2月12日、八尾市の生駒山麓に位置する大学を訪問し、田畑理一学長にお会いしました。田畑学長は、ロシア経済を専攻した経済学者です。前職の大阪市立大学で韓国の全南大学と大阪市立大学の交流を全面的なものにするのに尽力されたそうです。その縁で韓国に関する知識と愛情が深い方です。

この大学は、海外留学生が全体の17%、500人程度だそうです。留学生の出身国も中国・韓国・ベトナム・中央アジア諸国を含めて10ヵ国になるそうです。留学生の離脱がほとんどない秘訣を尋ねると、学校と縁がある人の紹介でやって来る学生が多く、学生を叱っても大丈夫な学生と大学との強力な人間関係を作るのに神経を使うとのことでした。

崇実大学、慶尚大学、梨花女子大学、韓国学中央研究院などとも活発な交流をしています。大学のスポーツ分野では、テコンドーが有名だそうです。キャンパスに広開土王碑のレプリカが建てられているのが注意を引きました。多くの学生と教授は日本人ですが、随所に韓国の香りが息づいているのを感じました。

115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은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사립대학이다. 1971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설립 당시 경제학부와 법학부로만 출발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경법대학이다.

지금은 경제학부, 법학부 외에 국제학부, 경영학부(올해 신설)와 대학원 과정의 경제학부를 두고 있다. 학생 수는 3000명 정도로, 일본에서는 소규모 대학이다.

2월12일 야오시의 이코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 학교를 방문해, 다바타 리이치 학장를 만났다. 다바타 학장은 러시아 경제를 전공한 경제학자이다.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오사카시립대학에서 전남대와 오사카시립대 사이의 교류를 전면화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관한 지식과 애정도 깊다.

이 학교는 해외 유학생이 전체의 17%, 500명 정도라고 한다. 유학생 출신 나라도 중국, 한국,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해 10여 개국이 된다고 한다. 유학생 이탈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비결을 묻자, 학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의 소개로 오는 학생이 많고, 학생을 꾸짖어도 될 만큼 학생과 학교 사이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신경쓴다고 말했다.

숭실대, 경상대, 이화여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도 활발한 교류도 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로는 태권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교정에는 광개토왕비 레플리카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분분의 학생과 교수가 일본인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한국의 냄새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