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j なぜ民族教育が大事なのか

11月23-24日、大阪地域の民族教育を担う教員と関係者が集まって研修会を開催しました。その主催者から「なぜ民族教育が大事なのか」というテーマで講演の依頼を受けました。

重いテーマですが、以前から日本と関係のある仕事をしながら抱いてきた考えと、去る4月、大阪に赴任してから関西地域の民族教育の現場を訪ね、関係者に接して感じたことをもとに私なりの考えをまとめてみました。

理解不足や補完すべき点が多々あると思いますが、日本において在日コリアンの民族教育に対する関心が高まるきっかけになればと思い、以下、管見を述べることと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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樹々が紅葉に染まった季節にこのように美しい場所で民族学級の先生をはじめ、民族教育関係者が一堂に集まって研修されることを心よりお祝い申しあげます。このような意義深い研修会に参加することを、私自身たいへんうれしく思います。

去る8月、ここからさほど遠くない滋賀県琵琶湖畔で開催された第55回在日本韓国人教育者大会で同じ趣旨の講演をしました。私は在日コリアン社会の発展、みなさんの母国である韓国の発展、また日本と世界の平和のためにも、民族教育の活性化が非常に大事だと考えています。

現在、韓国政府が把握している関西地域の民族教育関係者は約4千人です。大阪の白頭学院建国学校、金剛学園金剛学校、京都の京都国際学園の三つの民族学校に約8百人の生徒と150人の教員がいます。また、大阪府の公立学校に設置されている民族学級では韓国にルーツを持つ約3千人の小中学生が55人の先生から韓国語、韓国の文化、韓国の歴史を学んでいます。いくつかの地方自治体で行われているサマーキャンプや夏季学校などを含めると、その数はさらに多くな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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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は、民族教育はなぜ大事なのでしょうか、私なりの思いを語りたいと思います。以下「民族教育」は日本における在日コリアンを対象とする学校教育を意味します。

第一に、民族学校と民族学級を含む民族教育は、文字どおり在日コリアン社会、在日韓国人コミュニティの中心にあるからです。民族学校や民族学級の生徒が韓国について学ぶだけではなく、ご両親を含め、在日コリアン社会ネットの中心であるからです。ここで生徒たちが学べば、その家庭や地域社会に自然と広がっていきます。湖に石を投げると、波紋がしだいに広がっていくように、生徒の直後に家庭があり、その背後に在日コリアン社会があります。

第二に、民族教育は韓国と在日社会をつなぐ臍帯です。生徒たちはここで韓国の言葉や文化、歴史を学びます。それが、前述したように、在日社会に拡散されていき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母国と物理的・地理的に離れていても韓国とつながり、韓国人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を共有することができます。

第三に、民族教育は韓国と日本をつなぐ架橋でもあります。日本中の民族教育は、存在論的に韓国と日本を共に考慮する教育になるしかありません。実際そうなっています。過去には、母国に帰ることを前提に、韓国について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する時代もありました。現在では、韓国文化を守りながら、日本でどのように適合して生きるかが中心にならざるを得ないと思います。現在の民族教育は、日本のなかで暮らしながら、韓国について学び、韓国文化を大事にしながら日本で生きるコリアンを育てることに重点を置くべきだと思います。実際そうなっています。このような教育を通じ、韓国と日本が切っても切れれない関係を結ぶことに貢献しています。

第四に、民族教育は韓国と日本の二国間関係だけでなく、国際社会に貢献できる人材を育てる役割を果たしていると考えます。そうすることで、民族教育の意義がさらに大きくなるだろうと思います。現代はグローバル時代です。グローバルな基準と考えを持たないと活躍できない時代が展開されています。初めから日韓という異質な要素の共存について教え学ぶ民族教育は多文化・共生・共存を基本価値とするグローバル時代の人材を育てるのに最もふさわしい場だと思います。

最後に、民族教育はしだいに縮小され、矮小化されていく在日コリアン社会を強化し、有効化できる基盤を作る土台を提供していると思います。いくら在日コリアン社会が縮小されても、韓国としっかり連帯した次世代が続いて排出されますし、在日コリアン社会は堅固に維持され、発展していきます。このような意味における民族教育が存在する限り、どんな困難に遭遇しても、在日コリアン社会が揺らぐことなくつながれていくことを確信しています。

このように重要な意義を持つ民族教育がいま危機に瀕しているといわれます。逆説的な言い方になりますが、危機は危機と捉えることによって初めて、その危機から脱することができます。イタリアの哲学者アントニオ・グラムシ(Antonio Gramsci 1891-1937)に「知性の悲観、意志の楽観」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状況を悲観的に捉え楽観的に行動する」という意味に私は解釈しています。

民族教育の危機を突破するには、何よりも情勢を冷静かつ正確に見る観察眼が必要です。私は民族教育が生き残ることを越え、さらに活性化するために、これまでの民族教育の成功と失敗を振り返り、新たな方向を模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ています。

これまで1世2世の人たちを中心に展開されてきた民族教育は、日本社会の弾圧と差別、痛みからコリアンを守るための、いわば生存次元における避けようのない選択でした。生存するために、在日コリアンは確固としたルーツ意識を持って団結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民族教育もそのような状況を色濃く反映しています。

いま、当時とは状況が大きく異なります。在日コリアンは、祖国に帰って定着するのではなく、日本社会に残って成功する道を選ぶしかない環境に置かれています。日本社会の差別的な環境も在日コリアンの努力と、人権と共生を強調する国際社会の影響を受け、しだいに改善されてきました。

現在、日本の国会で激しい論争となっている出入国管理法の改正論議にも見られるように、今日の日本社会は外国人労働者を受け入れなければ持ちこたえるのが厳しい時代になりました。韓国だけでなく日本も多文化共生を選択ではなく、必須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になっているのです。このようなトレンドをふまえ、在日コリアンの民族教育も従来の抑圧と差別に対抗することに加え、多文化・共生を強調すべき時代になったと、私は考えています。差別を克服するだけではなく、多文化共生との二本立てで民族教育の歩みを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のです。

在日コリアンは日本社会における代表的な少数派(マイノリティ)です。最近、日本には、フィリピン、ネパール、スリランカなどから来訪する人々が増えています。このような状況を考えると、在日コリアンは歴史的にも人口数においても「マイノリティの長兄」the majority of minorities(少数派のなかの多数派)です。だから、マイノリティの権利を代弁してリードする長兄の役割を果たすべきだと考えます。従来より以上に、他の外国人と連帯する必要があるのです。一国主義ではなく複数国・国際主義が求められます。

マイノリティと共存共栄しなければ日本社会も支え難いという現実があることを考え、マイノリティとして生存に一層尽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のです。この点、みなさんが実践している民族教育こそが、日本社会が多文化・共生社会として成功するかどうかを左右する鍵だと考えています。日本社会もこのことを認めるべきでしょう。マイノリティの代表的な存在である在日コリアンの民族教育を受容できない社会が、どうしてベトナム、ネパール、スリランカなどの新しいマイノリティと共生できるでしょうか。

在日コリアン社会と日本社会が民族教育の重要性を共有し、ともに複文化主義に立つとき、日本は多文化・複文化社会に向けて進む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経験とビジョンは、日本の共生だけではなく、韓国、東アジア、そして世界との共生のための好モデルを提供できるはずです。

在日コリアンのみなさん、さらに広くさらに遠くを見て、世の中を、そして世界を変える民族教育を作っていこうではありませんか。

いま大阪総領事館では、民族学校と民族学級の生徒の作品を1階の会議室に展示し「教師と生徒の協働(原文は師弟同行)アートショー」と呼んでいます。総領事館がコリアン社会とより身近になるために企画された展示会です。より多くの人々に民族教育のためのコリアンの努力を知らせる機会となるものと期待しています。総領事館を民族教育の体験学習の場としてもご活用ください。民族教育の旅程に大阪総領事館はいつも同行し、スタッフはみなさんと協働していきます。

今回の研修会では、ウトロ村、雨森芳洲館、浮島丸殉難碑、丹波マンガン記念館をたどる道も組まれています。歴史には病んだ歴史も健やかな歴史もあります。歴史を探訪する意味はそれを教訓にして、明るい未来を設計していくことにあると思います。

今回の研修がそのような道へと進む起点にな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最後に、プロイセンの宰相ビスマルク(Otto von Bismarck 1815-1898)の言葉を引用し、講演を終わります。「愚者は経験から学び、賢者は歴史から学ぶ」

099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11월23일~24일 오사카지역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관계자들이 모여 연수회를 했습니다. 그때 주최 쪽으로부터 저한테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이지만, 오래전부터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 그리고 4월 부임한 뒤 현지의 민족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면서 느낀 것 등을 종합해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하고 보완할 점이 많지만, 일본 안의 재일동포 민족교육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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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안녕하십니까. 오사카 총영사 오태규입니다. 먼저 단풍이 멋지게 물든 시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민족학급 선생님들을 비롯한 민족교육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수를 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 깊은 연수회에 참가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8월 여기서 멀지 않은 시가현 비와코 근처에서 열린 제55회 재일본 한국인 교육자대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만, 저는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 모국인 한국의 발전, 더 나아가 일본 및 세계를 위해서도 민족교육의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와 함께하고 있는 간사이지역의 민족교육 관계자는 대략 4천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백두학원 건국학교, 금강학원 금강학교, 교토의 교토국제학원 등 3개 민족학교에 8백여명의 학생과 150명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또 오사카부의 공립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우리나라 뿌리를 가지고 있는 3천여명의 초중학교 학생이 55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말, 우리문화, 우리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 지방자치단체 별로 하고 있는 여름캠프나 하계학교 등을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민족교육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첫째, 민족학교, 민족학급을 포함한 민족교육은 바로 재일동포 사회, 재일한국인 공동체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민족학교나 민족학급은 단지 학생들이 우리 것을 배우는 곳일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를 포함해 재일동포 사회를 아우르는 중심입니다. 이곳에서 어린 학생이 우리 것을 배우면, 그것이 학부모 및 지역 사회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점차 확대해 나가듯이, 학생 바로 다음에 학부모가 있고, 그 뒤에 재일동포 사회가 있습니다.

둘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재일사회를 이어주는 탯줄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한국의 말, 문화, 역사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재일사회로 확산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국과 서로 물리적으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한국, 한국 것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일본안의 민족교육은 존재론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다함께 고려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우리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것을 지키면서 일본 속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며 사느냐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민족교육은 일본 속에서 살면서 우리 것을 배우고, 우리 것을 간직하면서 일본에 살아야 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넷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관계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그래야 민족교육의 의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국제적인 기준과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제대로 활약할 수 없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한일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공존을 가르치고 배울 수밖에 없는 민족교육은 다문화, 공생, 공존을 핵심 가치로 하는 국제화 시대의 인재를 길러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족교육은 점차 축소되고 왜소화해가는 재일동포 사회를 강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일동포가 축소되어 간다고 해도 우리 것으로 튼튼하게 무장된 차세대가 계속 배출되는 한 재일동포 사회는 굳건하게 유지, 발전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민족교육이 살아 있는 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재일동포 사회는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민족교육이 지금 위기에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위기라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상황은 비관적으로 보되 행동은 낙관적으로 하자‘는 뜻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민족교육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세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저는 민족교육이 살아남는 것을 넘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민족교육을 성공과 실패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1, 2세가 중심이 되어 전개해왔던 민족교육은 일본 사회의 탄압과 차별,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생존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단단한 뿌리 의식을 가지고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민족교육도 그런 상황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포들은 조국에 돌아가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남아 성공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차별적인 환경도 동포들의 노력과, 인권과 공생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영향을 받아 점차 개선되어 왔습니다. 지금 일본 국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되고 있는 출입국관리난민인정법(입관난민법) 개정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일본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다문화 공생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반영해, 재일동포의 민족교육도 기존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것에 더해 다문화, 공생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차별 극복의 한 다리가 아니라, 다문화 공생과 함께 두 기둥으로 민족교육이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마이너리티)입니다. 최근 일본에는 필리핀, 네팔, 스리랑카 등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일동포는 역사적으로나 숫자로나 ‘소수자들의 맏형’, 즉 영어로 말하면 ‘메조리티 오브 마이너리티스’입니다. 당연히 그들 소수자의 권리까지 대변하고 이끄는 맏형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열심히 재일동포 이외의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일국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사회도 소수자들과 잘 공존공영하지 못하면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생각해, 소수자와 같이 살기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성패는 일본 사회의 다문화, 공생사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일본 사회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소수자의 대표인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등의 새로운 소수자와 공생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사회가 함께 재일동포 민족교육이 이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할 때, 비로소 일본의 다문화 공생사회는 성공으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과 비전은 일본의 공생뿐 아니라, 한국, 동아시아, 세계의 공생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더욱 넓고 더욱 멀리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는 민족교육을 만들어 나갑시다.

최근 우리 오사카총영사관에서는 민족학교와 민족학급 학생들의 그림을 1층 회의실에 ‘사제동행 아트쇼’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영사관이 우리 동포사회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아울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총영사관을 민족교육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총영사관도 여러분이 가는 민족교육의 여정에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마침 이번 연수회는 우토로마을, 아메노모리 호슈암, 우키시마마루 순난지, 단바망간기념관을 더듬는 길로 짜여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픈 역사도, 좋은 역사도 있습니다. 역사 탐방의 의미는 흘러간 일을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연수가 그런 길로 나아가는 기점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지만,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라는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을 상기하면서 저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098j 民族教育の意味をあらためて熟考した一日

11月最後の日30日、在日コリアンが集住する大阪市生野区みゆき森小学校の民族学級開設30周年記念式典が開かれました。式典に続いて民族学級の生徒の学芸発表会もありました。

厳しい条件のなかで、韓国の文化、韓国の言葉、韓国の歴史を教え学ぶ民族教育関係者を激励する意味で、私は式典に出席しました。来賓の紹介や祝辞もなく、純粋に学校関係者を中心に行われている行事ですが、韓国総領事の参加が些少なりとも力になればと思い、喜んで席を共にしました。

みゆき森小学校は全校生100人余りのうち70%程度が韓国にルーツを持っており、韓国や朝鮮籍の学生は10人程度だといいます。このような特性のため、学年ごとに1クラスずつ民族学級を設置しており、ここで生徒たかは1週間に1回ずつ、韓国のことを学びます。民族学級の授業だけを担当する常勤教員もいます。

常勤教員もなく時間講師だけで運営している他の学校の民族学級に比べ恵まれていますが、最初からそうだ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30年前に民族学級を開設した時は、子どもに韓国のことを教えてくれることを望む保護者たちがお金を集め、民族学級の講師の給料を支援することから始めたといいます。この学校で20年間民族学級を担当してきたホン・オゴン先生は民族学級開設のために努力した10年を加えると、30周年ではなく40周年というのが正しい、と感慨深げに目がしらを押さえました。

こうしたことが親の民族教育の拡充要求運動に支えられ、常勤教員を置く民族学級へと成長したのです。そして、民族学級の活性化などが評価され、2012年にはユネスコスクールとして認められました(2018年10月現在、日本の小学校552校が加盟しているが、みゆき森小学校は加盟していない)。ユネスコスクールとはユネスコの理想を実現するために、平和と国際連帯を実践する学校のことをいいます。

教員たちがサプライズショーとして演出したアリランの歌に合わせたサムルノリなどの後に、生徒たちの発表会が続きました。次の約束のため、私は発表会の冒頭部分だけ見て出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最初の発表は2、3、5、6年の生徒によるサムルノリと扇の舞、演劇などを織り交ぜたものでしたが、涙が出るほど感動的な発表でした。果たして韓国の生徒たちが同じ程度にできるかという気さえしました。

物おじすることなく思いっきり韓国文化を誇示する生徒たちの姿を後にし、残念ながら、校門を出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民族教育の意味をあらためて熟考した一日でした。私が見られなかった発表も、おそらく感動的なものだ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一を見て十を知るといいますから。

098 오사카시 이쿠노구 미유키모리소학교 민족학급 30주년 기념식

11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엔 재일동포가 많이 몰려 사는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미유키모리소학교 민족학급 개설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에 이어 바로 민족학급 학생들의 학예발표회도 있었다.

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문화, 우리 말,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민족교육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뜻에서 기념식에 참석했다. 개별적인 내빈 소개나 내빈 축사도 없이, 순수하게 학교 관계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행사이지만 한국 총영사의 참석이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라며 기꺼이 자리를 함께했다.

미유키모리소학교는 전체 학생 100여명 가운데 70% 정도가 한국의 뿌리를 가지고 있고, 한국 또는 조선적의 학생은 10명 정도라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학년마다 한 학급씩 민족학급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서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우리 것을 배운다. 민족학급 수업만을 담당하는 상근교사도 있다.

상근교사도 없이 시간강사로 운영되는 다른 학교의 민족학급에 견줘 형편이 좋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한다. 30년 전 민족학급 개설 때에는 자녀들에 우리 것을 가르쳐 주길 바라는 부모들이 돈을 모아 민족학급 강사 월급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20년간 민족학급을 담당해온 홍우공 선생은 민족학급 개설을 위해 노력한 10년을 더하면, 30주년이 아니라 40주년이라고 하는 게 맞다면서 감개의 눈시울을 보였다.

이러던 것이 학부모들의 민족교육 강화 요구운동에 힘입어 상근교사를 두는 민족학급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민족학급 활성화 등의 덕택으로, 유네스코학교로 인정되었다. 유네스코학교란 유네스코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평화와 국제연대를 실천하는 학교를 말한다.

선생님들이 깜짝쇼로 연출한 아리랑 노래에 맞춘 사물놀이 등을 끝으로, 학생들의 발표회가 바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음 약속 때문에 발표회 첫 부분만 보고 나와야 했다. 첫 발표는 2, 3, 5, 6년 학생이 사물놀이와 부채춤, 연극 등을 함께 섞어 펼쳤는데,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과연 한국에 있는 학생도 그 정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마음껏 우리 것을 과시하는 어린 학생들을 뒤로 하고 아쉽게 학교 문을 나섰지만, 민족교육의 의미를 다시 깊게 생각하게 한 하루였다. 아마 보지 못하고 나온 발표들도 감동적이었을 게 틀림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