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11월23일~24일 오사카지역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관계자들이 모여 연수회를 했습니다. 그때 주최 쪽으로부터 저한테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이지만, 오래전부터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 그리고 4월 부임한 뒤 현지의 민족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면서 느낀 것 등을 종합해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하고 보완할 점이 많지만, 일본 안의 재일동포 민족교육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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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 왜 중요한가>

안녕하십니까. 오사카 총영사 오태규입니다. 먼저 단풍이 멋지게 물든 시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민족학급 선생님들을 비롯한 민족교육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수를 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 깊은 연수회에 참가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8월 여기서 멀지 않은 시가현 비와코 근처에서 열린 제55회 재일본 한국인 교육자대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만, 저는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 모국인 한국의 발전, 더 나아가 일본 및 세계를 위해서도 민족교육의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와 함께하고 있는 간사이지역의 민족교육 관계자는 대략 4천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백두학원 건국학교, 금강학원 금강학교, 교토의 교토국제학원 등 3개 민족학교에 8백여명의 학생과 150명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또 오사카부의 공립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우리나라 뿌리를 가지고 있는 3천여명의 초중학교 학생이 55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말, 우리문화, 우리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 지방자치단체 별로 하고 있는 여름캠프나 하계학교 등을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민족교육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첫째, 민족학교, 민족학급을 포함한 민족교육은 바로 재일동포 사회, 재일한국인 공동체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민족학교나 민족학급은 단지 학생들이 우리 것을 배우는 곳일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를 포함해 재일동포 사회를 아우르는 중심입니다. 이곳에서 어린 학생이 우리 것을 배우면, 그것이 학부모 및 지역 사회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점차 확대해 나가듯이, 학생 바로 다음에 학부모가 있고, 그 뒤에 재일동포 사회가 있습니다.

둘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재일사회를 이어주는 탯줄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한국의 말, 문화, 역사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재일사회로 확산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국과 서로 물리적으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한국, 한국 것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일본안의 민족교육은 존재론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다함께 고려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우리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것을 지키면서 일본 속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며 사느냐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민족교육은 일본 속에서 살면서 우리 것을 배우고, 우리 것을 간직하면서 일본에 살아야 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넷째, 민족교육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관계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그래야 민족교육의 의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국제적인 기준과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제대로 활약할 수 없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한일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공존을 가르치고 배울 수밖에 없는 민족교육은 다문화, 공생, 공존을 핵심 가치로 하는 국제화 시대의 인재를 길러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족교육은 점차 축소되고 왜소화해가는 재일동포 사회를 강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일동포가 축소되어 간다고 해도 우리 것으로 튼튼하게 무장된 차세대가 계속 배출되는 한 재일동포 사회는 굳건하게 유지, 발전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민족교육이 살아 있는 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재일동포 사회는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민족교육이 지금 위기에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위기라고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상황은 비관적으로 보되 행동은 낙관적으로 하자‘는 뜻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민족교육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세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저는 민족교육이 살아남는 것을 넘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민족교육을 성공과 실패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1, 2세가 중심이 되어 전개해왔던 민족교육은 일본 사회의 탄압과 차별,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생존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단단한 뿌리 의식을 가지고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민족교육도 그런 상황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포들은 조국에 돌아가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남아 성공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차별적인 환경도 동포들의 노력과, 인권과 공생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영향을 받아 점차 개선되어 왔습니다. 지금 일본 국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되고 있는 출입국관리난민인정법(입관난민법) 개정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일본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다문화 공생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반영해, 재일동포의 민족교육도 기존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것에 더해 다문화, 공생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차별 극복의 한 다리가 아니라, 다문화 공생과 함께 두 기둥으로 민족교육이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마이너리티)입니다. 최근 일본에는 필리핀, 네팔, 스리랑카 등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일동포는 역사적으로나 숫자로나 ‘소수자들의 맏형’, 즉 영어로 말하면 ‘메조리티 오브 마이너리티스’입니다. 당연히 그들 소수자의 권리까지 대변하고 이끄는 맏형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열심히 재일동포 이외의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일국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사회도 소수자들과 잘 공존공영하지 못하면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생각해, 소수자와 같이 살기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성패는 일본 사회의 다문화, 공생사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일본 사회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소수자의 대표인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등의 새로운 소수자와 공생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사회가 함께 재일동포 민족교육이 이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할 때, 비로소 일본의 다문화 공생사회는 성공으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과 비전은 일본의 공생뿐 아니라, 한국, 동아시아, 세계의 공생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더욱 넓고 더욱 멀리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는 민족교육을 만들어 나갑시다.

최근 우리 오사카총영사관에서는 민족학교와 민족학급 학생들의 그림을 1층 회의실에 ‘사제동행 아트쇼’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영사관이 우리 동포사회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아울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총영사관을 민족교육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총영사관도 여러분이 가는 민족교육의 여정에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마침 이번 연수회는 우토로마을, 아메노모리 호슈암, 우키시마마루 순난지, 단바망간기념관을 더듬는 길로 짜여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픈 역사도, 좋은 역사도 있습니다. 역사 탐방의 의미는 흘러간 일을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연수가 그런 길로 나아가는 기점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지만,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라는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을 상기하면서 저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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