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j 世宗研究所と韓国国際交流財団が主催したシンポジウム

11月26日の午後、大阪で世宗研究所韓国国際交流財団が共同主催する「大阪日韓関係シンポジウム」が開かれました。10月末の韓国大法院(最高裁)における強制徴用工判決と11月中旬の和解治癒財団の解散以降における日韓の緊張ムードのためか、在日コリアンだけでなく、日本人も少なからず参加しました。終始、聴衆の集中度が非常に高いようにみえました。

第1部で、ムン・ジェイン政権初期に青瓦台安保室第2次長を務めたキムギジョン教授が「韓半島情勢の変化と東北アジアの平和」と題して講演を行い、続いて関連の討論が行われました。第2部では、全パネリストが日韓協力のあり方をめぐって議論を交わしました。

南北が主導し、首脳たちがリードし、経済的利益を中心にして動くパラダイム転換という視点について朝鮮半島情勢を解説したキム教授の講演は大いに注目を浴びました。ただ、第2部における討論の焦点は、自ずと最近の日韓関係を反映し、どのように両国関係を改善していくかに絞り込まれていきました。

特に、強制徴用工に関する判決の衝撃が甚大で、容易には解決できないとする悲観論、対立調整と協力拡大論、時間が経てば解決されるとする楽観論など、さまざまな意見が出されました。

この困難な時期に、何が正解とは言い難い難題について、多くの日韓市民の前で討論すること自体、そして中座する聴衆が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けでも、有意義なシンポジウムだったと思います。第1部の司会だった世宗研究所のペクジョンチョン理事長は最後に、まさに民間外交の現場を見るようだったと評しました。

私も祝辞のなかで、韓国政府は大法院の判決を尊重し、日韓関係の悪化を防ぐという二つの原則のもとに対策を講じていることを明かしました。そして事実に基づかないまま日本国内で噴出している大法院判決に対する批判の間違いを指摘しました。

今回の判決が政権交代の影響だとする主張に対し、今回の判決は李明博大統領時代の2012年に出された大法院1部の判決の再確認だとして、1965年の日韓請求権協定を否定するものだとする主張に対しては、(大法院判決は)日韓請求権協定を認めた基盤の上で適用範囲を判断したものだと述べたイ・ナギョン首相の発言を伝えました。

097 세종연구소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오사카 한일관계 심포지엄

11월26일 오후에 오사카에서 세종연구소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오사카 한일관계 심포지엄‘이 열렸다. 10월 말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11월 중순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이후 한일 사이의 긴장 분위기 때문인지, 동포들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적잖이 참석했다. 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청중들의 집중도도 매우 높았다.

1부에서 문재인 정권 초기 청와대 안보실 제2차장을 지냈던 김기정 교수가 ‘한반도 정세변화와 동북아 평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토론을 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참석자들이 모두 나서 한일협력 방안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남북이 주도하고, 정상들이 이끌고, 경제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각에서, 한반도 정세를 설명한 김 교수의 강연은 주목도가 높았다. 그러나 토론의 중점은 자연스레 최근의 한일관계를 반영해, 어떻게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해 나갈까로 몰렸다. 특히,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서는 충격이 매우 커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갈등의 관리 및 협력확대론, 시간이 지나면서 풀려갈 것이라는 낙관론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불편한 시기에 불편한 문제를, 많은 한일 시민 앞에서 공론하는 것, 그것도 시종 자리를 떠나지 않고 경청하는 청중이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훌륭한 행사였다고 본다. 백종천 세종연구소 이사장도 1부 사회를 매듭지으면서, 진정한 공공외교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는 평가를 했다.

나도 축사를 통해, 한국정부는 대법원 판결 존중과 한일관계의 악화 방지라는 두 원칙 아래 대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나오고 있는 일본 안의 대법원 판결 비판엔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했다. 즉, 이번 판결이 정권교체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엔 이 판결은 이명박 시절인 2012년 대법원 1부 판결의 재확인이라고 말하고, 1965년 한일협정의 부정이란 주장엔 한일협정을 인정한 토대에서 적용범위를 판단한 것이라는 이낙연 총리의 언급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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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j 関西地域の民族教育関係者の研修会

11月23日(金)、日本は勤労感謝の日で祝日なので、23日から3連休でした。連休中に関西地域の民族学校(建国学校、金剛学校、京都国際学園)と民族学級の担任教師をはじめ、民族教育関係者の研修会が1泊2日で開催され、私も参加しました。

関西地域の韓国にゆかりのある歴史遺跡の探訪、朝鮮通信使に関する講義など、充実した日程でした。1日目の23日は、京都府宇治市のウトロ地区と江戸時代(1603-1868)に朝鮮と誠隣外交を提唱した雨森芳洲の故郷にある芳洲庵を見学し、夕方は宿泊先で特別講義を聞きました。

2日目は、第二次大戦が終わった後、韓国に帰国する途次に船が爆発して沈没し、549人が犠牲となった浮島丸爆沈事件の現場と朝鮮人強制労働者などが人間以下の条件で働いていた丹波マンガン記念館を見学しました。移動中のバス車内でも映画「朴烈」ほかをビデオ上映するなど、研修ムードが大いに盛り上がっていました。

丹波マンガン記念館のほかは行ったことがある私は最初から合流せず、福井県の敦賀にある宿泊施設に直行しました。宿泊施設に到着したのは、「朝鮮通信使の生き字引」ともいうべき中尾寛京都造形芸術大学客員教授が「朝鮮通信使の歴史から学ぶ日韓関係の展望」の講義をちょうど開始するところでした。

中尾教授は壬辰倭乱(1592-98 日本では文禄慶長の役)直後、大規模な外交文化使節団を双方が送り合った歴史から教訓を得て、現在の日韓間の諸問題を解決していく必要があるという話をされました。

「民族教育はなぜ重要なのか」というテーマの講演を依頼された私は、次の5つの​​点で民族教育が重要であると話しました。

  1. 在日コリアン社会の拠点
  2. 在日コリアン社会と韓国をつなぐ臍帯
  3. 韓国と日本の架け橋
  4. 多文化共生をリードする世界市民の育成
  5. 世代交代期に入った在日コリアンの次世代の育成

故国に帰る準備と日本社会の差別に対抗するという次元で始まった民族教育が、現在の時代変化に合わせ、日本社会に定着して生きる多文化共生に力を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かとも述べました。夜には、乾杯の辞に託して各自の考えを話す有益な時間を持ちました。

24日は朝食後、舞鶴の浮島丸爆沈現場から遠くない殉難碑が建てられたところで、地元の市民が構成する追悼会の人々が海を見ながら当時の状況と追悼会の活動などについて話してくれました。閉山されたマンガン鉱山を利用して造られた京都市京北町にある丹波マンガン記念館も訪問しました。

在日コリアン2世の館長を務めているイ・ヨンシク氏は「ここが日本で唯一の強制動員記念館であり、日本政府の支援を一銭も受けず、家族の力だけで強制労働の現場を記念館として運営している」と話しました。今回の訪問でここだけが初めてでしたが、施設をしばし見物するだけで、私たちの祖先たちが人間以下の条件に置かれていたことを実感させられました。

全体を通じて過密で濃い内容の1泊2日の研修でしたが、参加者には日韓の歴史のなかの在日コリアンの生きざまを学ぶ貴重な機会になったと思います。

096 민족학교와 민족학급 교사등 민족교육 관계자 연수회

11월23일(금)은 일본의 ‘근로감사의 날’로, 공휴일이다. 그래서 23일부터 3연휴였다. 이 기간을 이용해, 간사이지역의 민족학교(건국학교, 금강학교, 교토국제학원)와 민족학급 교사를 비롯한 민족교육 관계자 연수회가 1박2일 열렸다. 나도 참석했다.

이 지역에 있는 한국과 관련한 역사 유적을 탐방하고, 조선통신사 등과 관련한 강의를 듣는 조밀한 일정이었다. 첫날인 23일은 교토부 우지시의 우토로 마을과 에도 시대에 조선과 성신외교를 주창했던 아메노모리 호슈의 고향에 있는 호슈암을 견학하고, 저녁 때 숙소에서 특강을 들었다.

둘째 날은 2차대전이 끝난 뒤 귀국하다가 배가 폭침하는 바람에 549명이 숨진 우키시마마루 폭침 사건의 현장과 조선인 강제노동자 등이 인간 이하의 조건에서 일하던 단바망간기념관을 견학했다. 이동 중에는 버스 안에서 영화 <박열> 등을 비디오로 관람하며 연수 분위기를 돋궜다.

나는 단바망간기념관 외에는 이미 가본 적이 있어, 첫 일정부터 합류하지 않고 바로 후쿠이현의 쓰루가에 있는 숙소로 직행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살아 있는 조선통신사 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카오 히로시 교토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가 ‘조선통신사의 역사에서 배우는 한일관계 전망’ 특강을 시작할 찰나였다.

나카오 교수는 임진왜란 직후 양국이 대규모 외교 문화 사절단을 보내고 받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현재의 한일 갈등을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나는 ‘민족교육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민족교육이, 1. 재일동포 사회의 거점 2. 재일동포 사회와 한국을 이어주는 탯줄 3.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 4. 다문화 공생을 이끌 세계시민의 육성 5. 세대교체기에 든 재일동포 차세대 육성의 다섯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고국에 돌아갈 준비와 일본사회의 차별에 맞서는 차원에서 시작한 민족교육이, 이제는 시대변화에 맞춰 일본사회에 정착해 잘살기와 다문화공생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저녁 시간엔 건배사를 빙자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24일은 아침 식사 뒤 마이즈루의 우키시마마루 폭침 현장에서 멀지 않은 순난비가 세워진 곳으로 가, 현지 시민으로 구성된 추도회 관계자로부터 바다를 보면서 당시 상황과 추도회의 활동 등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이어 폐쇄된 망간광산을 이용해 만든 단바시의 단바망간기념관을 방문했다.

재일동포 2세로 관장을 맡고 있는 이용식씨는 “이곳이 일본에서 유일한 강제동원 기념관일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의 돈을 하나도 받지 않고 가족의 힘만으로 강제노동의 현장을 기념관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이 유일하게 내가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시설을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선조들이 인간 이하의 조건에서 살았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빡빡하고 무거운 1박2일의 연수였지만, 참가자 모두 역사에서 재일동포의 삶을 배우는 귀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095j 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の除幕式

11月18日(日)午後、大阪市天王寺区にある統国寺において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の除幕式が執り行われました。大阪地域に住む済州島出身のコリアンを中心とする在日本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建立推進委員会が主催しました。*済州島四・三事件

日本地域に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が建てられたのは、これが最初だといいます。日帝時代(1910-45)から済州島の出身者が多く住む大阪地域の特性によるものと思われます。

1922年から済州・大阪航路が開設されました。この時期は日本が急激に工業を発達させた時期と重なり、大阪に済州出身者がひときわ多く住むようになったといいます。

Dai-Ni_Kimigayo_Maru_Ship1926年に投入された第二君が代丸(前年に尼崎汽船がロシアから購入)

済州四・三を通じて生命の脅威を感じた人々が、密航などで既に大阪に定着していた親戚や知人に身を寄せることも多かったといいます。このような歴史的事情で大阪と済州、大阪と済州四・三は非常に深いつながりを持っています。

南北分断後の理念対立のなかで、韓国では済州四・三が「共産暴動」と規定され、口に出すことさえタブー視された時期が長い間続きました。日本における事情はさらにひどいものでした。事件から40年経った1988年にようやく東京で初の追悼集会が開かれ、その10年後、大阪でも初の慰霊祭が開かれています。

今回の慰霊碑建立は済州四・三から70年を迎え、済州出身のコリアンが多く住む大阪に、済州島の悲劇を忘れずに記憶する記念碑を建てようという趣旨で進められました。3.6mの高さの追悼碑の基部に、事件当時の済州島の178里すべてから採取した石を配し、済州島とのつながりを強調したのが特色です。済州四・三犠牲者遺族会のオグァンヨン会長は「済州全域の石を収集して持ってくるのが最も大変だった…この慰霊碑は、おそらく国外で建てられる最初で最後の慰霊碑ではないか」と、感慨深げに話しました。

この日の行事には、大阪に住む在日コリアンのほか、済州とソウル、東京からも済州四・三の関連団体の関係者が多数参加しました。私も大阪総領事の資格で参加し、司会者から来賓の紹介を受け挨拶しました。あまりに遅くなったとはいえ、世の中が少しずつ変化していることを、参加者一同が感じたように思います。

帰途、生野区の在日韓国キリスト教会館で開催中の済州四・三関連の展示会に立ち寄り、しばし見学しました。

095 오사카시 덴노지구 통국사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일요일인 11월 18일 오후, 오사카시 덴노지구에 있는 통국사에서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오사카 지역에 사는 제주 출신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재일본 제주 4・3 희생자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하였다.

일본 지역에 4・3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은, 이것이 최초라고 한다. 아마 일제 시대부터 오사카에 제주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특성이 작용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러일전쟁 때 획득한 군함을 개조해 만든 연락선 ‘기미가요마루’가 1922년부터 제주~오사카를 오갔고, 이때 일본이 급격히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던 사정과 겹치면서, 오사카에 유독 제주 출신이 많이 살게 됐다고 한다. 또 4・3 사건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밀항 등을 통해 건너와 이미 오사카에 자리 잡고 있던 친척이나 친지에게 몸을 맡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제주와 오사카, 오사카와 4・3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 이후 남북의 이념 대결 속에서 4・3은 “공산 폭동”으로 규정되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시절이,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본 안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사건으로부터 40년 되는 1988년에야 도쿄에서 첫 추도집회가 열렸고, 10년 뒤 오사카에서도 처음 위령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4・3사건 70년을 맞아 제주 출신 동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에 제주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우자는 뜻에서 추진되었다. 3.6미터 높이의 추모비 기단부에 당시 제주도의 178개 모든 마을(리)에서 가져온 돌을 배치해 놓아, 제주와 연결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재일본4・3사건희생자유족회의 오광영 회장은 “제주에서 돌을 수집해 가져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이 위령비가 아마 국외에서 세워진 최초이자 마지막 위령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개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외에도 제주와 서울, 도쿄에서도 4・3 관련 단체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나도 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해, 사회자로부터 내빈소개를 받고 청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비록 속도는 늦지만 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령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쿠노구의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4・3 관련 전시회에도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094j 来年6月まで開催される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

11月17日土曜日も終日、文化行事で多忙でした。映画俳優のファン・ジョンミン氏とランチを終えるとすぐ総領事館に向かいました。

第1回「2018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の開幕式に出席するためです。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内にある民族学校と民族学級の生徒が個人または合同で制作した作品を公館1階の講堂に展示することにしたのです。協働*としたのは、教師と生徒が協働して制作するという意味を込めています。*韓国語原文: 사제동행(師弟同行)

この日の展示会には白頭学院金剛学園京都国際学園**の三つの民族学校(いずれも小・中・高校あり)と大阪府の公立学校に設置された民族学級に通う生徒の作品500点余りが出品されました。小学生から高校生までの個人作品や共同作品が、絵画や工芸品まで広く展示されました。生徒や教師、コリアンなど約百人が参加して開幕式を行いました。 **日本の学校教育法に定める一条校

この展示会を企画したきっかけは、総領事館建て替えのため一時移転中の公館の1階会議室をどう活用するかという問題でした。臨時公館における美術品の配置、整理を助言するために出張で来阪した韓国本省のソン・スンヒェ文化芸術課長が、民族学校の生徒の作品展示というアイデアを提案したことから始まったのです。

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には、日本にある韓国系の民族学校4校のうち3校が集まっています。また、1948年の阪神教育闘争が示すように、民族教育に対する熱意が強い地域でもあります。このような背景のため、今も大阪地域の公立小中学校に通う韓国ルーツの生徒3千人が学校内に設置された民族学級で週に数時間ずつ韓国の歴史や文化、言葉を学んでいます。

こういう点を考えると、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は単なる美術品の展覧会以上の意味を含んでいます。民族学校と総領事館、地域社会と総領事館を身近につなぐ架橋の意味を持っているのです。とりわけ、今後、在日コリアン社会をリードしていく若い芽と総領事館がアートという目に見える媒体を介して出会うルートが設けられたことが最大の意味だと思います。

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はその一歩を踏み出しましたが、今後の拡大が期待されます。今回の展示会は2019年6月末まで続け、生徒が作品を自由に交換できるようにするつもりです。

総領事館1階の会議室を、今回の展示会をきっかけに「ドリームギャラリー」(仮称)と名付けました。今後、このスペースが在日コリアンの子どもたちの夢を育て、総領事館とコリアン社会がより身近に出会う場所になれば、と思います。始まりはとるに足りないものですが、時間が経つにつれ、壮大な成果につながるよう、コリアン社会とともに努力していきたいと考えています。

094 내년 6월 말까지 이어지는 민족학교, 민족학급 사제동행 아트쇼

11월17일 토요일은 문화 행사로 바빴다. 영화배우 황정민씨와 점심을 마치고 바로 공관으로 갔다. 총영사관 담당지역 안의 민족학교, 민족학급 학생들이 그리거나 만든 미술품을 공관 1층 강당에 전시하는 행사, ‘2018 사제동행 아트쇼'(제1회)의 개막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행사의 이름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미술전시회의 뜻을 담아, ‘사제동행 아트쇼’ 로 정했다.

이날 전시회에는 건국학교, 금강학교, 교토국제학원의 세 민족학교와 오사카부의 공립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 다니는 학생들 작품 5백여점이 출품되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의 작품, 개인 작품과 공동작품, 회화와 공작까지 두루 전시되었다. 학생과 선생님, 동포 등 1백여명이 참석해 개막식을 했다.

애초 이 행사를 기획한 동기는, 기존 총영사관의 재건축으로 임시 이전한 공관의 1층 회의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마침 임시공관의 미술품 배치, 정리를 조언하기 위해 출장온 본부의 선승혜 문화예술과장이 민족학교 학생 작품 전시 아이디어를 준 게 시작이었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에는 일본 전체의 우리나라 계열의 민족학교 4개 중 3개가 몰려 있다. 또 1948년 한신교육대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족교육의 열의가 강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금도 오사카지역의 공립 초중학교에 다니는 한국 뿌리의 학생 3천여명이 학교 안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일 주일에 몇 시간씩 우리 역사, 문화, 말을 배우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사제동행 아트쇼는 단순한 미술품 전람회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민족학교와 총영사관, 지역사회와 총영사관을 구체적으로 친근하게 연결해주는 다리의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앞으로 동포사회를 이끌고 갈 새싹들과 총영사관이 그림이라는 눈에 보이는 매개물을 통해 만나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제동행 아트쇼는 이제 발걸음을 뗐지만,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 이번 전시회는 내년 6월 말까지 이어지며, 학생들이 그동안 작품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공관 1층 회의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꿈 갤러리'(가칭)라고 이름을 붙여봤다. 앞으로 이 공간이 재일동포 어린이들의 꿈을 가꾸고, 총영사관과 동포사회가 더욱 친숙하게 만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창대한 성과로 이어지도록, 동포사회와 함께 노력할 생각이다.

093j 第4回大阪韓国映画祭で来阪したファン・ジョンミン

11月17日(土)、韓国の人気映画俳優ファン・ジョンミン氏と昼食を共にする光栄を得ました。ことし第4回を迎えた大阪韓国映画祭(11/16-11/18)の特別企画「俳優ファン・ジョンミン特別展とトークショー」に参加はむずかしいといわれたなか、出演してくださったことに感謝する意味で昼食の席を用意したのです。

大阪韓国映画祭は、韓国映画を関西地域の人々に知っていただくために大阪韓国文化院が意欲的に実施している毎年恒例の行事です。韓国映画の上映と監督または俳優によるトークショーで構成されています。まだ映画祭と呼ぶレベルに達してい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地元の反応もよく、徐々に定着しつつあります。

ことしは日本におけ未公開作品を中心に企画しました。「辺山(ピョンサン)」「大観覧車(あなたの宇宙は大丈夫ですか)」「ヒマラヤ、地上8千米の絆」「新しき世界」「ベテラン」「タクシー運転手」が上映作品に選ばれました。17日にファン・ジョンミンさん主演の「ヒマラヤ」「新しき世界」「ベテラン」を連続上映したあと、彼のトークショーを開催しました。

午後に別の行事があり、トークショーを見られない私は、ランチを共にすることで感謝の思いを伝えたのです。スクリーンでしか会ったことのないファン・ジョンミン氏はとても気さくで地味な感じがしました。本人によれば、恥ずかしがり屋で、インタビューやファンの応対などは苦手のようです。今回は、数年前、ロンドンの韓国文化院が主催した映画祭のいい印象が残っていたので、参加を受諾したそうです。

日本でもよく知られた人気俳優なので大阪に何度も来ていると思いましたが、今回が初めてというので驚きました。古代から韓国と縁が深い関西の地で、ファン・ジョンミン氏だけでなく、日本のファンも相手をより深く理解する機会になればと思います。また、このような出会いと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歴史的な葛藤で摩擦を生じがちな日韓関係を少しでも改善することに貢献できればと思います。

今回の映画祭が開催される劇場の客席数は350席ですが、申込者の数は5000人を超えたといいます。やはり、文化の力はすごいものです。

093 제 4회 오사카한국영화제 토크쇼에 출연한 황정민씨

11월 17일(토), 한국의 인기 영화배우 황정민씨와 점심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오사카한국영화제(11.16~18)의 특별기획인 <배우 황정민 특별전 및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 어렵게 참석해 주어 감사의 뜻으로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

오사카영화제는, 오사카한국문화원이 한국영화를 간사이지역에 알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 연례행사이다. 구성은 한국 영화 상영, 감독 또는 배우 초청 토크쇼로 이뤄지는데, 사실 영화제라고 하기엔 아직은 낯 간지러운 수준이다. 그래도 현지의 반응이 좋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는 일본에서 개봉이 안 된 작품을 중심으로 상영회를 기획했다. 변산, 대관람차, 히말라야, 신세계, 베테랑, 택시운전사가 상영작으로 꼽혔다. 17일엔 황정민씨가 주연을 맡은 히말라야, 신세계, 베테랑을 연속 상영하고, 이어 황정민씨의 토크쇼가 열렸다.

나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 토크쇼엔 가 보지 못하고, 점심을 같이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화면 밖에서 처음 만난 황정민씨는 매우 소탈하고 수수했다. 본인의 말로는 수줍음을 많이 타, 인터뷰나 팬 관리 등을 잘 못하는 편이란다. 이번에 오사카영화제에 참석한 것은 몇년 전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한 영화제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서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배우여서 오사카에도 자주 왔을 법한데, 이번이 첫 오사카 방문이라니 놀랍다. 고대시대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니 만큼 황정민씨뿐 아니라 일본 팬들도 상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리라고 본다. 또 이런 만남과 소통이 역사 갈등으로 삐걱거리는 한일관계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데 공헌했으리라고 본다.

이번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의 객석은 350석인데, 신청자 수는 5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역시 문화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