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한일 우호친선 다문화공생 페스티발 및 사카이시의 사카이마츠리

10월 중순, 간사이 지역의 날씨는 최고이다. 맑은 하늘에 최고기온이 22, 3도 전후. 야외행사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 10월 초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게 했던 태풍 소식이 아득히 먼 일처럼 느껴지는 나날이다.

이런 날씨 때문인지 요즘 주말마다 행사가 많다. 20일(토)은, 오사카총영사관과 민단 오사카지방본부가 공동주최하는 ‘한일 우호친선 다문화공생 페스티발’이 있었다. 21일(일)에는 올해로 45회째를 맞는 사카이시의 사카이마츠리가 있었다. 모두 재일동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사이다. 나도 두 행사에 모두 참석했다.

오사카의 다문화공생페스티발은 ‘재일동포의 수도’로 불리는 오사카답게 1천명 이상 들어가는 회장이 재일동포 등으로 꽉 찼다. 오사카 지역 출신 일본 의원들도 10명이나 참석했다. 오후 5시부터 3시간 동안, 일본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 한국에서 온 국악 퓨전 뮤지컬팀 ‘판타스틱’이 열기 속에서 공연을 했다. 특히 오사카에 있는 민족학교인 건국중고등학교의 전통예술부가 펼치는 사물놀이 등 전통놀이 공연은 청중을 압도했다. 참석한 일본 지인들도 모두 그들의 박력 넘치는 공연에 찬사를 보냈다.

사카이마츠리의 하이라이트는, 사카이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해 펼치는 가장행렬 행사이다. 그런데 이곳의 행렬 가운데에서도 가장 길고 박력 있고 눈길을 끈 행렬이 조선통신사, 전통무용팀, 태권도 팀 등으로 구성된 한국 행렬이었다. 나도 행렬이 지나는 길가인 베트남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연단에서 한국팀 행렬을 보고, 벌떡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타케야마 오사미 사카이시장도 재일한국인의 협력으로 마츠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 중에서 머조리티를 차지하는 재일동포의 존재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으로서는 이들이 한일을 연결해 주는 튼튼한 다리이고, 일본에겐 이에 더해 재일한국인과 잘 지내는 것이 일본이 성공적인 다문화공생사회로 가는 시금석이자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081j 日本にも息づいている尹東柱の詩

京都には尹東柱(ユンドンジュ)の詩碑が三つあります。彼が通学した同志社大学のキャンパス、彼の下宿があった現在の京都造形芸術大学前、大学の友人と彼が最後にハイキングに行った宇治市志津川の三ヵ所です。

同志社大学には没後50年経った1995年、京都造形芸術大の前には2006年、志津川には2017年に建てられています。なぜか、初めの碑を建立してから11年ごとに二つ目三つ目の碑が建てられています。

初めの二つの詩碑に刻まれた詩は、不滅の代表作「序詩*」です。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三つ目の碑には、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で始まって終わる「새로운 길*」が刻まれています。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詩人尹東柱: 作品鑑賞(延世大学)より引用

10月20日午後3時、宇治市志津川で「詩人尹東柱:記憶と和解の碑」の建立1周年行事が開かれ、私も参加しました。詩碑建立委員会のメンバーと日韓の市民約70人が集いました。献花とあいさつ、「새로운 길」朗読、アリラン斉唱など30分程度の式でした。アリランは詩人最後のハイキングとなった志津川の川辺で、友人の求めに応じて彼が歌ったといいます。

私はあいさつで次のように述べました。他の二つの碑には「序詩」が刻まれ、ここの碑には「新しい道」が刻まれている…私は、その意味を、日韓両国が葛藤と対立の”小川と峠”を越え、和解と協力の”森と村”へ行こうという意味に解釈したいと思います。

尹東柱は27歳の若さで大日本帝国の治安維持法の犠牲となりました。しかし、彼が撒いた平和と自然を愛する詩、その精神は韓国だけでなく日本にも息づいていることを、このような行事を通して確認できます。これこそ文学の力ではないでしょうか。

詩人尹東柱の記憶と和解の碑は、宇治駅から歩いて40分ほど、韓国の観光客も多く訪れる宇治平等院から20分ほどの距離です。京都に旅行する人は、同志社大・京都造形芸術大・志津川という尹東柱の詩碑巡礼コースを辿ることも有意義かと思います。同志社大学の詩碑には1年に1万人を超える韓国人が訪れ、名所になっているそうです。

081 시즈카와 변의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건립 1주년

교토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3개 있다. 그가 다디던 도시샤(동지사)대학의 교정, 하숙집 터였던 교토조형예술대학 앞, 그리고 그가 대학 친구들과 마지막 소풍을 갔던 우지시 시즈카와 변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도시샤대의 시비는 그의 사후 50년 뒤인 1995년, 교토조형예술대 앞은 2006년, 시즈카와 변은 2017년에 세워졌다. 묘하게 첫 시비로부터 11년씩 간격을 두고 제2, 제3의 비가 건립되었다.

첫번째 두번째 시비에 새겨진 시는, 그의 불멸의 대표작인 ‘서시’이다. 그런데 3번째 비엔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로 시작하고 닫는 ‘새로운 길’이 새겨져 있다.

마침 10월 20일 오후 3시, 시즈카와 변의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건립 1주년 행사가 열려, 참석했다. 시비 건립위원회 분들과 한국, 일본 시민들을 포함해 70여명이 모였다. 헌화와, 인사말, ‘새로운 길’ 낭독, 아리랑 제창 등 30분 정도 식을 했다. 아리랑은 윤 시인이 마지막 소풍 장소인 이곳 강변에서 친구들의 요청으로 부른 노래였다고 한다.

나는 인사말에서 “다른 두 곳의 시비에는 서시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엔 새로운 길이 새겨져 있다”면서 “아마 그 뜻은 한일 두 나라가 갈등과 대립의 ‘내와 고개’를 넘어 화해와 협력의 ‘숲과 마을’로 가자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시인은 27살의 젊은 나이에 일제의 치안유지법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가 뿌린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시, 즉 그의 정신은 일본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이런 행사를 보면서 확인한다. 이런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시즈카와에 있는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는 우지역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한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 평등원(뵤도인)에선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교토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도시샤대-교토조형예술대-시즈카와의 윤동주 시비 순례코스를 잡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도시샤대의 시비엔 1년에 얼추 1만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080j 供給者(官)本位から消費者(民)本位のサイトへ

紙と電波が主たる伝達手段だった伝統メディアの時代がたそがれを迎え、インターネット、モバイル、ソーシャルネットワーク・サービス(SNS)がメディアの新たな担い手として浮上しています。情報通信技術の発達がもたらしたメディア世界と社会の大きな変化です。一言で言えば、伝統メディアの時代からニューメディアの時代への移行です。

この変化の波は、メディア世界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在外国民の保護と支援など、対国民サービスを主要な業務のひとつとする在外公館にあっても同じ変化が進行しています。インターネット時代が到来したからといって、すぐ紙の新聞がなくなることはなく、face-to-face の話や電話による業務がなくな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インターネットと SNS を通じた国民との接触とやり取りの割合が日増しに大きくなっています。

大阪総領事館もこのような流れを経験し意識して、最近ウェブサイトを大幅に改善しました。SNS についても Facebook のほか、Twitter を新たに開設しました。改善の基本方向は、「供給者(官)本位」から「消費者(民)本位」のサイトへの移行です。http://overseas.mofa.go.kr/jp-osaka-ja/index.do

その一つとして、災害時の備えなどの情報をはじめ、総領事館が発信する情報をまとめて「総領事館ニュース」としてトップページ中段に配置し、これまでサイト冒頭にあった「総領事館紹介」ページはメニュー表示にしました。運営上も国民に役立つ情報発信を強化するなど、より国民に親しまれるサイトになるように努めます。今後ともできる範囲内で改善に努めてまいりますので、ご利用ください。

080 ‘공급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홈페이지

종이와 전파가 주요 전달수단으로 활약하던 전통 미디어의 시대가 저물고, 인터넷, 모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미디어의 새로운 주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몰고온 미디어 세계의 변화입니다. 쉽게 말해, 전통 미디어의 시대에서 뉴미디어 시대로의 전환입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이 미디어 세계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외국민 보호와 지원 등 대민 서비스를 주요한 업무의 하나로 하고 있는 해외 공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고 종이신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로 하는 업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인터넷과 에스앤에스를 통한 대민소통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희 오사카총영사관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최근 홈페이지를 크게 손질했습니다. 에스앤에스도 기존의 페이스북 외에 트위터를 새로 개설했습니다.

개선 방향은 ‘공급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http://overseas.mofa.go.kr/jp-osaka-ko/index.do

대표적으로 홈페이지 구성에서 첫머리에 있던 ‘공관 소개’란을 맨 뒤로 옮기고, 재해 대비 등의 정보를 비롯해, 총영사관에서 전하는 소식들을 한데로 모아 ‘새소식’이란 문패로 맨 앞에 배치했습니다. 운영에서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 발신을 강화하는 등, 이전보다 더욱 친절한 홈페이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개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079j 日韓の政治学者京都で会議: 価値観の共有よりテーマの共有

2018年は「日韓共同宣言-21世紀に向けた新たな日韓パートナーシップ」(金大中・小渕共同宣言)が発表されて20周年になる年です。共同宣言は1998年10月8日に発表されています。

この宣言において、日本は韓国に対し初めて過去の植民地支配に関する反省と謝罪を行いました。そして、韓国は戦後の日本が国際社会の発展に貢献したことを評価しました。その土台の上に立って、両国が将来のために協力を強化していくことを宣言した歴史的な文書です。

ここ数年、日韓関係が歴史認識をめぐる対立で悪化していたことは否めません。そんな状況のなか、朝鮮半島をめぐる情勢の急変に伴い、両国が協力する必要性が増大している現在、宣言の歴史的な意義と価値が改めて注目されていると思われます。

共同宣言20周年を機に、日韓の友好協力関係を再構築しようという両国の政府ほか、政界・学界・市民社会などにおける動きが、ことし下半期に入って活発になっています。去る9日、安倍晋三首相も東京で開かれた記念シンポジウムに参加し、チーズトッポッキとK-POPを取り上げて「第3の韓流ブーム」に言及しました。

12日、大阪総領事館も京都の立命館大学において、韓国政治学会(会長: ソウル大学政治外交学部の金義英教授)と日本政治学会(理事長: 早稲田大学政治経済学部の齋藤純一教授)と合同で記念学術会議を開催しました。

急変する東アジア情勢と新しい日韓関係」をテーマに約5時間、急変する東アジア情勢を分析し(セッション1)、共同宣言以後における日韓関係を評価して(セッション2)、価値観や課題の共有を通じて新しい日韓関係を模索する(セッション3:ラウンドテーブル)意欲的な試みでした。

北東アジア情勢を見る観点などに関して、日韓の違いも浮彫りになり、大変有意義な議論と考察が交差する場になったと思われます。最大の意義は、日本のなかで韓国と最も縁の深い関西地域において質の高い日韓の知的交流が行われたことです。従来、関西地域は、韓国に対する関心の深さに比べ、日韓の知的交流の流れから疎外されてき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からです。

そんな知的な渇望があったからでしょうか、聴衆の集中力は感嘆に値するものでした。また、両国を代表する政治学者たちの集まりである二つの政治学会が組織的に結束して会議を開催した意味も大きいと思われます。このような営みが継続され、将来定例化する可能性もみえてきました。

日韓関係の専門家だけでなく、米国・中国・欧州などの地域政治、政治思想、政治理論など、さまざまな分野の専門家が参加したことも有意義だったと思います。グローバル時代において日韓関係の諸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は、日韓の二国間関係だけに固執していてはならないからです。

なお、会議の運営について、多くの学者が概念的に同意するのがむずかしい「価値観の共有」より、意見を集めやすい実際的な「テーマの共有」を中心に協力を模索するよう提案した経緯があります。現実的な提案であったと思います。

このような作業が地道に積み重ねられることで、日韓友好に貢献する可能性が大きい関西地域が、日韓友好の先端的な発信基地として覚醒し、両国の関係をリードする一翼を担うことを願ってやみません。

079 한일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발표 20주년

올해는 「한일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파트너십」(일명,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하게는 20년 전 10월8일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은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대상으로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하고, 한국이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의 발전에 공헌한 것을 평가한 토대 위에서 미래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아기로 한, 역사적 문서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일관계가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빠져 있는데다, 최근 한반도 정세의 급변으로 양국협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때여서 이 선언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조명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양국에서 공동선언 20년의 계기를 살려, 한일 우호협력관계를 재구축하자는 정부, 정계, 학계.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올 하반기 들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도 9일 도쿄에서 열린 기념 심포지움에 참석해, 치즈 떡볶이와 케이팝을 거론하며 ‘제3의 한류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오사카총영사관도 12일,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에서 한국정치학회(회장,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본정치학회(회장, 사이토 준이치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와 공동으로, 기념학술회의를 열었습니다.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와 새로운 한일관계’를 주제로 약 5시간 동안,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분석한 뒤(1세션), 공동선언 이후 한일관계를 평가하고(2세션), 가치와 과제를 통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하는(3세션 라운드테이블) 자리를 가졌습니다.

동북아 정세를 보는 시각 등에 관해 한일 학자 사이에 시각 차이도 드러났지만,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이고 생각의 교류마당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큰 의미는 일본에서 한국과 가장 인연이 깊은 간사이지역에서 수준 높은 한일의 지적 교류가 이뤼진 것입니다. 간사이지역은 한국에 관한 관심의 크기에 비해, 이제까지 한일 사이의 지적 교류에서 소외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갈증이 있었기 때문인지, 청중들의 집중력은 감탄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또 양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들의 모임인 정치학회가 조직적으로 결합해 학술회의를 열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비슷한 모임이 지속, 정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의 참가자 구성에 있어서, 한일관계 전문가만이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등의 지역정치, 정치사상, 정치이론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첨석한 것도 아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시대의 한일관계 해법은 한일관계에만 집착해선 풀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학자들이 개념에 동의하기 어려운 ‘가치 공유’보다는 쉽게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실용적인 ‘과제 공유’를 중심으로 협력을 모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현실적인 제안이 아닌가 봅니다.

이런 것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한일우호의 잠재력이 큰 간사이지역이 한일우호의 최첨단 발신지로 깨어났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078j 「新聞も出すデジタルメディア」になったNYT

新聞、放送の危機は、日本でも韓国と同じ状況のようです。大阪に赴任してから面談した報道機関の幹部たちも、口をそろえて「若者が紙新聞を読んでいない」「広告収入が減り、経営が困難だ」と嘆きます。実は、伝統的メディアの危機は日韓だけでなく、世界的な現象なのです。

新聞記者出身のため、どうしてもメディア関連のニュースや話題に関心が高いのですが、12日付け朝日新聞に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NYT)の発行人、アーサー・グレッグ・サルツバーガー氏*(Arthur Gregg Sulzberger 1980-)の全面インタビュー記事が掲載され、さっそく読みました。

全体が興味深く、とりわけ、以下のテーマが注目されます。それはメディアを脅かす「危険な力」とされた次の三点です。

  1. 広告収入で支えてきたビジネスモデルの変化(紙媒体からデジタルへ)
  2. メディアに対する信頼の低下(科学・大学・司法機関など、さまざまな制度に対する信頼も揺らいでいる)
  3. Facebook、Google などの巨大プラットフォームの登場(報道機関と読者の間に介在するようになった)

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は、デジタル展開をする新聞社なのか、新聞も出すデジタルメディアなのか、という質問に対しては、「すでに、新聞も出すデジタルメディアになったと思う」と、明快に答えています。

組織改変中の編集局の方向については、「何を変えてはいけないのか、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価値観は何なのか」が重要だとし、次のように述べました。私はこの点が重要だと思います、「独立した立場から公平、正確に行う独創的で現場主義、専門性の高いジャーナリズムだと考えました。すべての核心はここにあるのです」

また、Facebook などのプラットフォームは、ジャーナリズムを第一に考えていないので、そこに将来をかけるのは危険だと言いつつ、新しい読者と視聴者を開拓するために協力する必要があると述べています。いわば、韓国における洋務運動時代の「中體西用」方式です。

メディアの信頼低下だけでなく、メディアの二極化と、それを助長する権力の問題も指摘しています。韓国のメディア関係者も傾聴に値する話だと思われます。

* AG とよばれる。1980年生まれ。米ロードアイランド・オレゴン州の地方新聞社で記者として勤務後、2009年に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社に入社。2018年、一族から6人目の発行人に就任した。[朝日新聞の記事より引用]

078 세계적인 전통 미디어의 위기

신문, 방송의 위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곳에 부임한 뒤 만난 언론사 간부들도 이구동성으로 “젊은이들이 종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 “광고 수입이 줄어들어 경영이 힘들다”고 말한다. 사실, 전통 미디어의 위기는 한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내가 신문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디어와 관련한 뉴스나 화제에 관심이 많다. 12일 아침 <아사히신문>에 아더 그레그 살츠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의 전면 인터뷰가 나왔다.

전체가 흥미롭지만 몇 대목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는 언론을 위협하는 ‘위험한 힘’으로, 광고 수입으로 지탱해왔던 비지니스 모델의 변화, 언론사에 대한 신뢰의 저하, 페이스북과 구글 등 거대한 플랫폼의 등장 세 가지를 들었다. 또 뉴욕타임스가 종이신문사인가 디지털미디어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후자(디지털미디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재편하고 있는 편집국의 방향에 관한 질문에는 “무엇을 바꿔서는 안 되는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 대목이 핵심이라고 본다. “그것은, 독립한 입장에서 공평하고 정확하게 행하는 독창적 현장주의, 전문성 높은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 등 플랫폼에 대해서는 플랫폼은 저널리즘을 제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장래를 거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새로운 독자와 시청자를 개척하는 데 협력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중체서용’의 방식이다.

미디어의 신뢰 저하뿐 아니라 미디어의 양극화, 그를 조장하는 권력의 문제도 지적했다.

한국의 미디어 관계자들도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0181013b

077j 二つの講演: 歴史から現代へ、現代から歴史へ

10月9日夜と10日午前に講演をしました。外交官の主な仕事の一つに、在任国の人々や本国からの訪問者を対象に講演やスピーチを行うことがあります。ただ、今回のように連日行うのは珍しいことです。

講演やスピーチを比較的頻繁に行うので、淡々とこなし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でしょうが、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スピーチや講演を準備する段階では、いつも大いに悩まされます。対象に応じて、同じテーマでも表現や強調する内容・ポイントが異なるからです。聞き手が退屈せずに当方の伝えたいメッセージを確実に伝えるため、全体の流れをいかに組み立てるか、構成するのにかなり神経を使うのです。

9日の講演対象は、大阪府議会の日韓親善議員連盟の所属議員、10日は修学旅行で大阪を訪問中の韓国の高校生でした。議員が依頼してきたテーマは「韓国と大阪の友好増進」、高校生のそれは「グローバル・リーダーシップ」でした。

大阪府議会は保守系の大阪維新の会、自民党、公明党所属が絶対多数を占めています。また、在日コリアンが多く住む大阪の人々は友人やビジネス、学校、食品、文化など韓国関連の話題を一つか二つ必ず持っています。それで、議員に対しては、百済・新羅時代(紀元前1世紀-7世紀)から現代までの交流の歴史と事例を挙げ、長い歳月をかけて蓄積された大阪の歴史的資産を生かし、日韓友好の牽引役になっていただきたい、というメッセージを送りました。

韓国の学生たちや、大阪を訪れる韓国人の若い観光客には、韓国のK-POPや食べ物を楽しむ日本の若者たちの姿を伝えるようにしています。今回の高校生に対しては、相手を理解するため、単に見学するのではなく、一歩奥に入って相手の文化や歴史、生活を知ることが重要だ、と強調しました。

二つの講演を終えたあと、振り返って考えてみると、全体として同じ内容を順序を変えて話した格好になっていました。大阪府の議員たちには歴史的な関係から始めて現代の話を展開し、韓国の高校生には現代から過去に遡って話をしたからです。

議員には、過去の歴史から始めて現在に至るほうが話の展開がスムーズになる、という考えを持っていました。高校生には、特に何の考えもなく話し始め、自然と現代から過去に流れていきました。

どのように話を展開するにせよ、重要なことは、聴衆が話し手の言葉にどれだけ呼応してくれるかです(もちろん、主に話し手の力量と熱意によります)。私の限られた経験では、準備段階で伝えたいメッセージ、キーワードや話の順序、事例などについて悩べば悩んだ分だけ共鳴効果が大きくなるように思います。

とはいえ、毎回話し終わると、不足感が残ることが少なくありません。ギリシャ神話のシーシュポスの岩のように、どんなに苦労して岩を押し上げても、最後は谷底に落ちてしまう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