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j 質の高い朝鮮陶磁を所蔵する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

9月24日は日本のお盆ですが、韓国では振替休日も含め26日までチュソク[秋夕]の5連休です。でも、在外公館は現地のカレンダーに基づいて仕事するので、韓国の連休の恩恵に浴すことができません。ただし、現地の休日のほか、韓国の休日の3.1節(3月1日)、光復節(8月15日)、開天節(10月3日)、ハングルの日(10月9日)は韓国のカレンダーに合わせて休館します。

今年は、日本で休日の秋分の日(9月23日)が日曜日と重なり、お盆の24日(月)が振替休日になりました。この偶然の一致により、日本でも韓国のチュソク当日を含め、3連休を満喫しました。

24日、日本より2日多い韓国の休日をうらやみながら、自宅近くにある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に行きました。9月1日から11月25日まで高麗建国1100年記念「高麗青磁: 翡翠(ヒスイ)のきらめき」特別展を催しており、この機会を逃すまいと足を運んだのです。

世界的にも質の高い朝鮮陶磁器を所蔵する美術館ならではの展示品が待っていました。展示室の前には、今回の特別展を紹介した出川哲朗美術館長とベ・ギドン韓国国立中央博物館長の祝辞をそれぞれ、日・韓・英語で掲示していました。予想していたより来訪者も多いように思いました。

今回の特別展は、美術館のコレクションだけでなく、東京の国立博物館、奈良の大和文化館と寧楽美術館ほか、個人コレクションを含め、日本国内にある高麗青磁の「総動員」ともいうべき展示でした。ちなみに、展覧会のポスターに載っている高麗青磁は大和文化館所蔵の重要文化財です。

出品された250点余りの高麗青磁を鑑賞し、感嘆の念を禁じ得ませんでした。特別展のほか、常設展示されている朝鮮時代の磁器、中国と日本の磁器も見ることができます。高麗青磁とほかの磁器を比較しながら見られる絶好の機会です。

この美術館には、韓国の日本代表部時代(1949年1月-1965年12月)に外交官を務めたイ・ビョンチャン氏(李秉昌 1915-2005)が1999年に寄贈した高麗と朝鮮の磁器など300点余りからなる李秉昌コレクションがあります。美術館の3階にある同コレクションの入り口には彼の胸像が置かれています。この美術館は、どんな強い地震にも耐えられる免震設備、自然光を生かした照明設計、陶磁器を360度の角度から見られるようにしたデジタル鑑賞施設なども自慢です。

昨年、関西空港経由で日本を訪れた韓国人は計241万人で、ほとんどが観光客です。観光客数が増え、観光のトレンドが景勝地と食のツアーから文化へと向かっている現在、東洋陶磁美術館も、さらに重要な場所として浮上するものと思われます。

072 고려 건국 1100년 기념 ‘고려청자-비취의 반짝임’ 특별전

9월24일은 추석이고 한국에서는 대체휴일까지 포함해 26일까지 5연휴이다. 하지만 해외 공관은 현지의 달력에 따라 일을 하므로 이런 혜택을 볼 수 없다. 다만 현지 휴일 외에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은 한국 달력에 맞춰 쉰다.

그러나 올해는 일본의 휴일인 ‘추분의 날'(9월23일)이 일요일과 겹쳐 추석인 24일이 대체휴일이 됐다. 이런 우연의 일치 때문에 올해는 일본에서도 추석 당일을 포함해 3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틀이나 더 남은 한국의 휴일을 부러워하면서, 24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갔다. 9월1일부터 11월25일까지 고려 건국 1100년 기념 ‘고려청자-비취의 반짝임’ 특별전을 하는데, 자칫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질 높은 한국의 도자기를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 다운 전시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실 앞에는 이번 특별전을 소개하고 축하하는 데가와 데쓰로 미술관장의 인사말과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축사가 각각 한글, 일본어, 영어로 붙어 있었다. 의외로 관람객도 많았다.

이번 특별전은 미술관 소장품뿐 아니라 도쿄의 국립박물관, 나라의 야마토문화관 및 네이라쿠미술관, 개인 소장품까지 포함한 일본 국내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청자의 총출동이라 할만한 전시였다. 예를 들어 전시회 포스터로 나온 청자는 야마토문화관 소장의 중요문화재이다.

여기에 출품된 250여점의 고려청자를 감상하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별전 외에 통상전으로 전시되고 있는 조선 시대 자기, 중국과 일본 자기도 볼 수 있다. 고려청자와, 다른 자기들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미술관에는 한국의 일본대표부 시절 외교관을 지냈던 이병창씨가 1999년 기증한 고려, 조선 자기 등 3백여점으로 된 ‘이병창컬렉션’이 있다. 미술관 3층 이병창컬렉션 입구엔 그의 얼굴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 미술관은 어떤 강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전시할 수 있는 면진 시설, 자연 채광을 살린 조명 설계, 도자기를 360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한 디지털 관람 시설도 자랑거리이다.

지난해 간사이공항을 통해 일본에 온 한국인은 모두 241만명으로,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관광객의 수가 늘면서 관광의 흐름도 명승지 둘러보기와 먹는 것에서 문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동양도자미술관도 그런 흐름에서 중요한 장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071j 奈良の奈良女子大学と東京の御茶の水女子大学

9月20日(木)、奈良県にある奈良女子大学を訪問しました。赴任以来、大阪総領事館管轄内にある大学を探しながら、総長・学長らと挨拶をしているなか、この大学の評判を聞いて訪ねることにしたのです。

奈良女子大学は、東京の御茶の水女子大学と同じく、日本で唯一ならぬ唯二の国立女子大学です。 1908年に奈良女子高等師範学校として出発し、2019年5月1日に創立100周年を迎えるそうです。当時、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とともに、日本だけでなく、東アジア地域で、女性が通うことができた最高の教育機関だったといいます。

なぜ、奈良女子大学のような有名大学が生まれたのかが気になりました。今岡春樹学長の説明を聞くと、その過程は劇的でした。当時、当局が関東と関西に一校ずつ高校教師を輩出する女性の高等師範を置くことにしました。ところが、関西地域では京都と奈良が競争し、奈良が1票差で勝って奈良女子高等師範学校が設立されたというのです。

この学校は、マッカーサー軍政時代の1949年に、各県に1つずつ教員養成課程を含む国立大学を建てる方針に基づいて奈良女子大学に変わることになります。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は、お茶の水女子大学に変わりました。このような理由で、奈良県では、他の都道府県にある男女共学の国立総合大学がないそうです。

この学校は、このような特性のため、最初から日本帝国の全域(中国、満州、台湾、朝鮮を含む)から優秀な人材が集まって来ました。今もこのような伝統が息づいており、北海道から沖縄まで、あまねく48都道府県の学生が通っているそうです。

もちろん日帝植民地時代には韓国人​​留学生も多数師範学校に通いました。今岡学長は、今年8月に韓国の同徳女子大学総長になったキム・ミョンエ教授が、奈良女子大学が博士課程を開設した後に学位を取った初めての外国人だったと誇らしげに紹介しました。

しかし、この大学も人口減少と構造調整のため悩んでいます。2022年には奈良教育大学と法人統合をし、1法人2大学体制で運営する計画です。このような形式の大学統合は、韓国にはありませんが、成り行きをよく見守る必要がありそうです。

この大学訪問で意義深かったのは、高等教育の活発な交流の裏付けがない、一時的な政治対立に打ち勝って、揺るぎない日韓友好関係を構築するために、すぐ意見が一致したことです。奈良は、文化的、歴史的に古代から韓国との絆が深く続いているからこそ、このような絆をより簡単に感じるようです。

071 나라현에 있는 국립여자대학 나라여자대학

9월 20일(목)은 나라현에 있는 나라여자대학을 방문했다. 오사카총영사관 관할 안에 있는 대학들을 부임 이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총장, 학장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이 학교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게 됐다.

나라여자대학은 도쿄의 오차노미즈대학과 함께 일본의 ‘유이’한 국립여자대학이다. 1908년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로 출발해, 2019년 5월 1일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당시에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와 함께 일본뿐 아나라 동아시아에서 여자들이 다닐 수 있는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라에 이렇게 유명한 학교가 생기게 됐는지가 궁금하다. 이마오카 하루키 학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 과정이 극적이다. 당시 당국이 간토와 간사이 지역에 하나씩 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는 여자고등사범을 두기로 했는데, 간사이에서는 교토와 나라가 경쟁해 나라가 1표 차로 이겨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가 설립됐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맥아더 군정 시절인 1949년, 각 현에 1개씩 교원 양성과정을 포함하는 국립대를 세우는 방침에 따라 나라여자대학으로 바뀌게 된다.(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는 오차노미즈대학으로 바뀜) 이런 이유로 나라현에는 다른 도도부현에는 다 있는 남녀공학의 국립 종합대가 없다.

이 학교는 이런 특성 때문에 처음부터 일본 전국(중국, 만주, 대만, 조선 포함)에서 우수한 인재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 전통이 이어져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48개 도도부현의 학생들이 두루 다닌다고 한다. 물론 일제 식민지시대에 한국인 유학생도 다수 이 학교를 다녔다. 이마오카 학장은 올해 8월 동덕여대 총장이 된 김명애 교수가 나라여자대학이 박사과정을 개설한 뒤 외국인 최초로 학위를 딴 사람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 학교도 인구 감소와 함께 구조조정의 고민에 빠져 있다. 우선 2022년에 나라교육대학과 법인통합을 해, 1법인 2개 학교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런 형식의 대학 통합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형식인데 귀추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것보다 더욱 이 학교 방문에서 의미가 깊었던 것은 고등학문의 활발한 교류가 뒷받침 되어야, 일시적인 정치 갈등을 이기고 흔들리지 않는 한일 우호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데 바로 의견이 일치된 것이다. 나라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고대부터 한국과 유대가 깊은 곳이어서 이런 유대감을 더욱 쉽게 느끼는 것 같다.

 

 

070j 日本最古の継続している大学、龍谷大学

9月18日(火)、継続している大学としては日本最古の大学である京都の龍谷大学を訪問しました。参考までに、継続性は別にして、日本最古の大学は弘法大師・空海(774-835)が作った綜藝種智院(828年)に淵源を持つ京都の種智院大学だそうです。

龍谷大学は、深草・大宮(いずれも京都)、瀬田(滋賀県)の3つのキャンパスに文学、法学、経済、農学など9つの学部を擁する大規模な仏教系大学です。1639年に浄土真宗本願寺派の本山である西本願寺の僧侶養成機関としてスタートしました。韓国の東國大學校(1906年設立、私学)のような大学でしょうか。

龍谷大学は、韓国関連の貴重な資料を所蔵していることでも有名です。安重根義士(1879-1910)の遺品の書や写真など88点を所有しています。これらは、2009年、安義士義挙100周年を迎え、安重根義士記念館の特別展に貸与されました。朝鮮時代(1392-1910)に作成された東洋最古の世界地図「混夷疆理歷代國都之圖」の模写本(原本は不在)も、同学の図書館に所蔵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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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本願寺の門主だった大谷光瑞氏(1876-1948)が1900年代初めに探検隊(大谷探検隊)を率いてシルクロードを探訪し、多くの仏教遺物を収集しました。これらの遺物は第2次大戦終戦とともに韓国の国立中央博物館、中国の旅順博物館、龍谷大学、東京大学など3ヵ国の機関に分散しています。

仏教美術専攻で、2005年のアフガン仏教遺跡学術大隊長も務めた入澤隆学長は、日中韓三ヵ国に分散している大谷探検隊の遺物を一ヵ所に集めて展示できたら、という意欲を強くお持ちです。そして仏教と関連の深い韓国や日本などの国々が研究ネットワークを形成し、共同の仏教研究をしたいとお考えです。

このようなネットワークを通じて地域の連帯を約束し、国連が提示した持続可能な開発目標(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を民間が率先して実行できないだろうか、とも考えています。学長のスーツの襟には持続可能な開発目標を象徴するバッジが付いていました。

070 일본 대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류코쿠대학

9월18일(화)은 일본 대학 가운데 연속성으로 볼 때 가장 오래된 대학인, 교토의 류코쿠대학을 방문했다. 참고로 연속성과 관계없이 가장 오래된 대학은 홍법대사 구카이가 만든 슈게이슈치인(828년)에 뿌리를 둔 교토의 슈치인대학이다.

류코쿠대학은 현재 후카쿠사, 오미야캠퍼스(이상 교토), 세타캠퍼스(시가현) 3개 캠퍼스에 문학, 법학, 경제, 농학 등 9개 학부를 거느린 큰 규모의 불교계 대학이다. 처음엔 1639년 정토진종 혼간지파의 본산인 니시혼간지의 승려 양성기관으로 시작했다. 쉽게 말해, 한국의 동국대를 연상하면 된다.

이 대학은 한국과 관련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인 글씨와 사진 등 88점을 소유하고 있다. 이 유품들은 2009년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열린 안중근의사기념관의 특별전시회에 대여된 바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한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인 혼리강역대국도지도 모사본(원본은 부재)도 이 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또 니시혼간지의 문주였던 오타니 고즈이가 1900년대 초반 탐험대(오타니 탐험대)를 이끌며 실크로드에서 많은 불교 유물을 수집했다. 이들 유물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여순박물관, 류코쿠대학 및 도쿄대 등 3국에 나뉘어져 있다.

불교미술 전공으로 2005년 아프간 불교유적학술대 대장도 맡았던 이리사와 다카시 학장은, 한중일 세 나라에 흩어져 있는 오타니 탐험대 유물을 한데 모아 전시했으면 좋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리고 불교와 관련이 있는 한국과 일본 등의 나라들이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의 불교 연구를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이를 통해 지역의 연대를 다짐으로써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민간이 앞장서 실행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양복 깃엔 지속가능 발전 목표를 상징하는 뱃지가 달려 있었다.

069j 正使として参加した朝鮮通信使の再現行列

日本は昨日(15日)から三連休です。月曜日が「敬老の日」の休日だからです。総領事館も現地の休日に合わせて休業します。

ただ、在外コリアンの関連行事は平日より休日に多く集中しているため、コリアン事業を主な業務の一つとする総領事館の職員は休日返上で仕事することがあります。他の国の外交官に聞いても、総領事館の事情は各国とも似たようなもののようです。

三連休の中日の16日、民団京都本部主催の2018コリアフェスティバルが開催され、参加しました。その中心行事は朝鮮通信使を再現した行列であり、私は朝鮮通信使の正使に扮して参加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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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Wikipedia 狩野安信作 大英博物館

再現行列は京都市国際交流会館を出発し、平安神宮を経て周回するルートで行われ、1時間程度の行程でした。幸いなことに、雨の予報は外れ、雨中の行列とはなりませんでしたが、気温が30度以上になり、参加者は少したいへんでした。

京都民団が主催する朝鮮通信使の再現行事は今年で4回目ですが、民団は今後も毎年開催する予定だそうです。行列を再現しながら先頭で農楽隊の演奏を行い、当時の服装を身に付けた通信使と随行員、そして市民も後に続きます。周囲の人たちも珍しそうに立ち止まって写真を撮っていました。

外国人排斥とナショナリズムを主張する右翼団体の車両が、一時、行列に付きまとって妨害しました。このような行為は、むしろ通信使の行事が注目されるまでに発展した反証だと、私は考えました。

再現行列が無事に終わり、会場に用意されたステージで国書の交換式を行いました。国書のなかで私は「金大中 – 小渕共同パートナーシップ宣言20周年を迎える意義深い年に正使として参加でき誠に光栄です」とし、「今日のイベントが『第2の朝鮮通信使』『第2の金大中 – 小渕宣言』につながってほしいと思います」と述べました。

日韓双方の過去の歴史を振り返りながら、よりよい未来を構築する努力が必要だと、改めて考えさせられた行事でした。

069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재현 행렬에 참석

일본은 어제(15일)부터 3연휴입니다. 월요일이 ‘경로의 날’이라 휴일이기 때문입니다. 총영사관도 현지 휴일에 맞춰 쉬기 때문에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민 행사는 일하는 평일보다 쉬는 휴일에 많이 몰려 있어, 교민 업무가 주된 일 중의 하나인 총영사관 직원들은 휴일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 물어보니, 총영사관 사정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3연휴의 중간일인 16일, 민단교토본부 주최로 2018 코리아페스티발이 열려 참석했습니다. 페스티발의 중심 행사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인데, 저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분장하고 참석했습니다.

재현 행렬은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 출발해 헤이안신궁을 거쳐 돌아오는 경로로, 1시간 정도 이뤄졌습니다. 다행히 비 예보가 어긋나 우중 행렬은 피했으나,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 참가자들이 좀 힘들었습니다.

교토민단이 주최하는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는 올해로 4번째인데, 민단 쪽은 앞으로도 매년 개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행렬을 재현하는 동안 선두에서 풍물패의 공연하고 당시의 복장을 한 통신사 및 수행원, 시민들이 뒤따랐는데, 주위의 사람들도 신기한듯 멈춰선 채 사진을 찍으며 지켜봤습니다. 외국인 배제와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한 우익단체의 차량이 한때 행렬을 따라다니며 방해 행위를 했지만, 저는 이런 행위가 오히려 그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통신사 행사가 발전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현 행렬이 끝나고, 회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국서 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서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에 정사로 참가하게 돼 영광”이라면서 “오늘의 행사가 ‘제2의 조선통신사’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일 모두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더욱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던져준 의미 깊은 행사였습니다.

068j 渦中の人より確かな外部専門家の観察眼

9月13日(木)午前、大阪市に本社を置くダイワハウス工業株式会社を訪問しました。4月に赴任してから、担当地域の主要企業を訪ね、経済協力などについて模索している作業の一環です。

ダイワハウスは住宅建設資材を工場で事前に製作し、建設現場で組み立てるプレハブ(prefabricated)住宅業界の先駆者です。1959年に発売したプレハブ住宅「ミゼットハウス」の大ヒットで急成長し、2017年現在、戸建て住宅供給で日本2位の座を占めています。今や住宅建設と賃貸販売だけにとどまらず、都市開発、環境、エネルギー、医療介護、ロボット販売まで事業分野を拡大しています。

訪問日が、韓国で住宅価格の暴騰が大きな社会問題となっている時と重なったこともあり、芳井敬一社長にお会いするや、私はいきなり韓国の住宅価格の問題について社長のお考えを尋ねました。

唐突な質問にもかかわらず、芳井社長はいかにも韓国の状況を熟知しているといわんばかりに、「日本、韓国、いずれも問題の本質は同じです。投機バブルです」という要旨の回答を、いささかの淀みもなく返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さらに、30年前の日本の経験から見ると、政府が迅速かつ積極的に対応すべきだと話されました。今、日本でも東京や京都など大都市の数ヵ所で住宅価格が高騰していますが、これらの場所も数年後に土地価格が維持されるかどうか難しいだろうという話もされました。

同じ日の午後、偶然にも韓国政府は不動産投機の抑制策を発表しました。この対策が芳井社長の言われた迅速で積極的な対策になるかどうか、時間が経てばわかるでしょう。渦中の人より外部の専門家の観察眼のほうがより正確ではないかと、私は考えました。

芳井社長は、プレハブ住宅の韓国進出には否定的な判断を下したそうです。コンクリートのように厚い壁と重厚長大型の住宅を好む、韓国人の住まいに対する意識や住宅文化は、薄くて軽いのに同じような価格帯のプレハブ住宅は受け入れないだろうと判断されたとのことです。

家屋はコストや効率に劣らず、それぞれの国や地域の文化・歴史と深く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改めて思いました。

068 다이와[大和]하우스공업 주식회사를 방문

9월13일, 목요일 오전 오사카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이와(大和 Daiwa)하우스공업주식회사를 방문했습니다. 4월 부임 이후 담당 지역의 주요 기업을 방문해 인사를 하고 경제협력 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다이와하우스는 주택 건설 자재를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패브릭 주택(일본식 표현으로, 프리패브 주택)의 선구자입니다. 1959년 발매한 프리패브 주택 ‘미제트하우스’가 대 히트를 하면서 급성장했고, 2017년에는 단독주택 공급에서 일본 2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주택 건설과 임대 판매에만 머물지 않고, 도시개발, 환경에너지, 의료개호, 로봇 판매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마침 이 회사를 방문하는 날이 한국에서 집값 폭등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과 겹치기도 해, 요시이 게이지 사장을 만난자마자 한국 집값 문제에 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요시이 사장은 나의 당돌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일본이나 한국 어느 나라도 문제의 본질은 같다. 투기 거품이다’는 요지의 답변을 거침없이 내놨습니다. 그리고 30년 전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가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일본도 도쿄나 교토 등 대도시 몇 곳 정도가 집값이 오르지만 이곳들도 몇 년 뒤 값이 유지되기 힘들 것이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우연히도 이날 오후 우리나라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날의 대책이 요시이 사장이 말한 빠르고 적극적인 대책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명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보다 바깥에 있는 전문가의 눈이 더욱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요시이 사장은 프리패브 주택의 한국 진출에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콘크리트와 같은 두꺼운 벽, 중후장대형 주택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의 주택관, 주택문화에 얇고 가볍지만 값은 비슷한 프리패브 주택이 먹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집은 역시 비용이나 효율에 못지 않게 문화 및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