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우키시마마루 폭침 희생자 74주년 추도식에 참석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교토부 마이즈루시에서 열리는 우키시마마루 폭침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지난해는 태풍의 영향으로 배의 폭침 당일에 행사를 못하고 다음날인 8월25일에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당일인 24일 74주년 추도회가 열렸다.

마이즈루 시민들로 구성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를 추도하는 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정식 명칭은 ‘우키시마마루 순난 74주년 추도집회’이다. 순난이란 단어가 생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이다. 순국이란 말은 많이 쓰지만 순난은 듣기 힘든 단어이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보니 “국가나 사회가 위난에 처하여 의로이 목숨을 바침”이라고 되어 있다. 우키시마마루 폭침 희생자를 사전의 의미로 순난자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다 원인 불명의 폭발사고에 의해 숨진 억울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론 희생자가 더욱 적절해 보인다.

어쨌든 올해도 오사카에서 승용차로 편도 150킬로미터, 2시간 반 걸리는 행사장에 다녀왔다. 다행히 올해는 날씨가 화창했다. 순난비에서 바라다보이는 사고해역도 호수처럼 잔잔했다.

최근 한일관계가 긴장국면에 있어서 행사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보다 100여명이나 더 많은 3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예년처럼 주최자의 추도사, 총련과 민단 대표의 추도사에 이어, 헌차, 추도의 춤, 추도가, 꽃 바다에 던지기 순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재일동포들의 추도사는 보통 일본어로 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의 행사는 민단과 총련 대표 모두 우리말로 하는 게 돋보였다. 행사 내용도 일본시민 단체가 주최는 하지만, 헌차와 추도의 춤은 민단계 단체가 맡아서 하고 추도가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나와 부른다. 여기에 매년 한국에서 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행사에 참석한다. 올해도 양 노총에서 40여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한일관계가 어려운 속에서 일본 시민과 민단과 총련계 동포, 한국의 노동단체 등이 하나가 되어 치르는 행사를 보니, 남다른 감회가 들었다. “차가운 얼음장 밑에선 잘 보이진 않지만 역사를 통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따뜻한 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돌아오는 길에 마이즈루항이 내려다보이는 고로가다케의 스카이타워공원에 올라가 항만의 전경과 사고지점 등을 관망하고 왔다.

148 올해 민단 광복절 행사는 다른 해와 달랐다

올해 오사카총영사관 관할지역의 민단 광복절 행사는 다른 해와 달랐다.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8월15일 간사이를 포함해 서일본지역을 관통한 태풍 10호(크로사)의 영향이다. 이 때문에 광복절 당일 열릴 예정인 기념식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또 하나는 지난해 10월말 대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에 관한 위자료 배상 판결과 7월 일본의 반도체 원료 수출규제 강화로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관계이다. 한일 정부 사이의 격한 공발 속에서 민단 간부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에 어느 해보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태풍 때문에 오사카 민단은 16일 오후, 교토 민단은 17일 오후, 시가와 나라 민단은 18일 오전으로 행사를 연기해 치렀다. 관할 지역에서 태풍의 영향이 가장 컸던 와카야마 민단은 아예 행사를 취소했다. 민단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태풍 등의 날씨 때문에 광복절 행사를 당일 치르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오사카 총영사관은 토요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영사들이 분담해 4개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경축사를 대독했다. 나는 오사카와, 교토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가 연기되어 참석자가 적을 줄 알았는데, 예년과 다름없는 수준의 동포들이 참석했다. 최근의 한일관계 악화로 예민한 상태에 있는 동포들은, 대통령의 경축사를 아주 집중해서 경청했다. 그리고 갈등보다는 협력과 대화, 경제를 강조한 경축사 내용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광복절 행사는 태풍으로 연기되면서 기대 밖의 소득도 있었다. 대통령 경축사 내용을 일본어로 번역해 나눠줌으로써, 한국말을 잘 모르는 동포들에세 더욱 확실하게 정부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당일 아침에 경축사 연설문을 받아 행사장에 부랴부랴 가서 읽기에 바빴다. 그래서 참석 동포들로부터 ‘알아듣기 어렵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든 생각인데, ‘아예 다음부터는 일본 지역 광복절 행사는 하루 정도 뒤에 하면 어떨까.’

147 한국계 해운업체 산스타라인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8월8일 한국계 해운업체로는 최초의 일본 현지법인으로 출발한 산스타라인(회장 김현겸, 사장 노세 카즈히로)이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20년 전 직원 5명으로 오사카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오사카 본사 외에도 도쿄, 나고야, 이시카와, 시모노세키에 지점 등을 두고, 종업원 86명, 매출 약 50억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외항화물정기선업뿐 아니라 통관업, 철도운송사업, 여행업, 버스사업 등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는 팬스타크루즈선을 일주일에 3회 운행한다. 지난해 9월 태풍 제비로 공항이 폐쇄되었을 때는 발이 묶인 여행객 상당수를 귀국시키는 데 공헌했다.

나도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행사장인 오사카 뉴오타니호텔에 갔다. 최근 한일관계가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행사가 잘 열릴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갔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곧바로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산스타라인과 관련이 있는 해운업, 제조업 등의 업계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인사 등 수백명이 회의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역시 정치 상황이 어려워도 땀과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강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김 회장도 인사말에서 그동안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일본 쪽 관계자들과 협력 속에서 회사가 여기까지 발전해왔다면서, 지금의 어려움도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내려오자, 많은 일본 관계자들이 줄지어 인사를 건넸다. 사업으로 맺어진 인연은 대단하다는 것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한일관계가 어려운 속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사말을 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일이다. 현재의 갈등 상황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안이하고,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분위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축사에서 최근의 상황을 이렇게 에둘러 말하고 내려왔다.

“최근 한일 사이에는 파고가 높게 일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갈등이 경제 분야까지 퍼지면서 어려움이 생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산스타라인 20년이 상징하듯이 양국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일고 있는 험한 파도에 기죽지 말고 더욱 도전적인 자세로 더욱 끈질긴 모습으로 험한 파도를 이겨냅시다. 당장은 많은 장애물만 있는 것 같지만 한일 사이엔 1500년 이상의 끈끈한 교류의 역사가 있고, 그동안에 ‘짧은 갈등-긴 우호’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146j 夏の甲子園にあと一歩届かなかった京都国際高校

惜(お)しかった、本当にくやしかった。帰り道、いつまでも去り難いほどだった。

大阪総領事館の管轄地域にある民族学校三校の一つ京都国際高等学校が甲子園進出の一歩手前で夢を果たせなかったのです。

28日午前、京都市の若狭スタジアム球場で行われた第101回日本高校野球選手権大会(甲子園大会)の京都大会決勝戦で京都国際高等学校が立命館宇治高等学校と接戦の末、2対3で惜しくも敗れました。7回まで2-0でリードし、8回に2-2の同点を許したあと、9回裏に点を入れられ<さよなら負け>を喫したのです。1回と2回に1点ずつ入れ、ずっとリードしていながら逆転負けしたので、選手だけでなく応援の生徒や教師、在日コリアンたちは本当にくやしがっていました。

甲子園の出場権がかかった京都大会の決勝戦は、もともと27日午後1時に開かれる予定でしたが、台風6号の影響で一日延期され、28日午前10時から行われました。27日、私は応援のため家を出ましたが、途中で延期を知り、引き返しました。翌朝、出直して教育担当領事と一緒に応援に出かけました。球場に到着すると、学校関係者だけでなく、地域のコリアンたちが応援席を埋め尽くし熱っぽく応援していました。

結果的には総合的な力が及ばなかったのでしょうが、京都国際が甲子園に出場していたら、在日コリアンの歴史に新たなページを記したはずだと思うと、この上なく悔しいのです。甲子園大会に日本の高校に通う在日コリアンの選手が出場したことは以前にもありますが、民族学校のチームが出たことはありません。最近、日韓関係が良くないためコリアンも心配が多く、そんなストレスを解消する絶好の機会を眼前で逃したという思いも少なからずあります。

1947年、在日コリアンが民族教育のために設立した京都国際学園は、2003年に日本政府から高校教育課程の一条校*として認可されました。現在、中高課程を運営し、日本の教育課程に沿った教育のほかに韓国語・韓国文化・韓国史を教えています。韓国籍と日本国籍の生徒が一緒に通っており、校歌は設立時の韓国語の校歌を歌っています。甲子園では試合が終わった後に勝った高校の校歌をNHKが生中継で流しますが、その「歴史的な」機会も次回まで延期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学校教育法第1条に定める幼稚園、小学校、中学校、義務教育学校、高等学校、中等教育学校、特別支援学校、大学(短期大学および大学院を含む)、高等専門学校]

でも、失望してはいません。京都大会に出場した77校のなかで準優勝しただけで大したことなのです。京都国際はことしの春季京都大会でもすでに優勝しています。他校より歴史も浅く野球部員も特に選ばれた者ではない、限られた劣悪な環境のなかでつかんだ成果なので、なおさら貴重です。韓国の諺に雲多ければ雨降るというとおり、これまでの実績があれば次は甲子園の地を踏むに違いない、と私は見ています。今回の惜しくも悔しい敗北がより大きな成長の肥(こや)しになると信じて疑いません。

146 아깝다 너무 아쉽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깝다. 너무 아쉽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오사카총영사관 관할 안에 있는 3개의 민족학교 중의 하나인 교토국제학교가 고시엔 진출 바로 일보 직전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28일 오전 교토시 와카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01회 일본고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대회) 교토대회 결승전에서 교토국제학교가 리츠메이칸우지고교와 만나 접전 끝에 2-3으로 아깝게 졌다. 그것도 7회까지 2-0으로 이기다 8회에 2-2 동점을 허용한 뒤, 9회말에 한 점을 내주는 ‘굿바이 패배’를 당했다. 1회와 2회 1점씩을 낸 뒤 줄곧 리드하다가 역전패를 한 것이어서 선수뿐 아니라 응원 온 학생, 교사, 동포들이 너무 아쉬워했다.

원래 고시엔 출전권이 걸린 교토대회 결승전은 27일 오후 1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제6호 태풍(나리)의 영향으로 하루 연기되어, 28일 오전 10시에 열렸다. 27일 응원을 위해 집을 나서던 중에 연기 통보가 오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었다. 그리고 28일 만사를 제켜놓고 교육 담당 영사와 함께 다시 응원을 하러 아침에 집을 나섰다. 운동장에 도착하니 학교 관계자뿐 아니라 지역에 사는 동포들이 응원석을 꽉 채운 채 열렬하게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종합적인 힘이 미치지 못했다. 교토국제학교가 고시엔에 나갔다면, 재일동포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을 터인데, 그것이 못내 아쉽다. 이제까지 고시엔대회엔 일본고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선수들이 출전한 적은 있으나 민족학교 팀이 나간 적은 없다. 또 최근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동포들도 걱정이 많은데, 이런 스트레스를 날려줄 좋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감도 든다.

1947년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세운 교토국제학원은 2003년 일본정부로부터 고교과정 1조교로 인가를 받았다. 현재 중고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 외에 한국어, 한국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 국적, 일본 국적 학생들이 함께 다니고 있는데, 교가는 학교 설립 때 만든 한국말 교가를 그대로 부른다. 고시엔 경기에서 이긴 학교의 교가를, 고시엔 경기 전체를 생중계하는 <NHK>가 경기가 끝난 뒤 내보내는데 그런 ‘역사적인’ 기회도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그래도 실망은 하지 않는다. 교토대회에 출전한 77개 학교 중 준우승을 한 것도 대단하다. 교토국제학교는 올해 춘계 교토대회에서 이미 우승한 경력도 있다. 다른 학교보다 역사도 짧고 인원도 택없이 적은 열악한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값지다. 구름이 잦으면 비가 오는 법, 이런 꾸준한 성적이라면 다음엔 고시엔 땅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번의 아깝고 분한 패배가 더욱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145j 滋賀県長浜市の雨森自治会を再訪

7月23日、滋賀県の長浜市高月町にある雨森自治会を訪ねました。大阪から車で途中休憩なしに2時間かかる遠いところです。

文禄慶長の役*(1592-98)の後、徳川幕府と朝鮮王朝の和解親善に尽力した雨森芳洲(1668-1755)は、この町で生まれました。ここに生まれたものの、主な活動は江戸と対馬だったので、住んだ期間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韓国では壬辰倭乱・丁酉再乱(壬辰/丁酉はそれぞれ西暦1592/97年、倭は日本人の蔑称)、中国では抗倭援朝と呼びます]

それでも、この町の人々は雨森芳洲庵を建て、町が輩出した偉人の意をよく継承しています。この建物には、芳洲翁が同行した朝鮮通信使の記録のほか、翁が著した朝鮮語テキスト、朝鮮通信使関連のミニチュア人形などが展示されています。

日韓は「互いに欺かず争わず真実を以て交わり候を誠信とは申し候」という芳洲翁の唱えた<誠信外交>の精神を受け継ぎ、いまも青少年交流などに力を注いでいることが重要だと思います。

芳洲翁は当時の最も優れた朝鮮専門の外交官であり、知識人だったといわれます。韓国語に通じ、その文化にも精通して、朝鮮の官僚や知識人との交流も深かったといいます。文禄慶長の役後、その傷痕を癒し双方の友好親善を深めるため朝鮮が派遣した朝鮮通信使*に2度同行しています。

[*17世紀初めから19世紀初めまで江戸る時代を通じて将軍の代替わりに計12回派遣された数百人規模の外交文化使節団、そのルートは下の地図(上関町作成)のとおり]

Screenshot_20190725-101105_1この日、雨森自治会を訪れたのは、昨年の今ごろ訪問したときに町の人々と約束したからです。20年前から韓国の学生が訪れ、高月町の高校生と交流しているので、激励してくれたらありがたいという言葉があり、私も快諾して再訪を約したのです。

溝が深まっている日韓対立のさなか、この日、韓国の学生30数人が訪れ、滋賀県立虎姫高等学校の生徒10数人がハングルで書かれた横断幕を持って彼らを温かく迎えました。

政治問題は政治問題として解決しつつ、他の分野の交流をさらに活性にしようと、私はかねてより主張しています。安倍首相による「一線を越えた経済報復」が民間交流にも悪影響を及ぼしている今の状況はあまりにも複雑です。長期的には政治状況に揺るがない民間交流を活性化すべきであり、青少年交流はとりわけ意義深いものです。

日韓の学生たちに対し、芳洲翁の精神を踏まえながら、今回の交流会が困難な現状にある日韓関係をいかに克服するかを考える時間になるよう期待すると話しました。

大阪までの遠路を考え、学生たちが対話するようすは見ずに帰途につきました。

145 한일관계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7월 23일, 시가현의 나가하마시 다카쓰키초의 아메노모리자치회(雨森芳洲自治會) 마을을 다녀왔다. 오사카에서 승용차로 쉬지 않고 두 시간을 가야 하는 먼곳이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江戸) 정부와 조선의 화해 친선을 위해 노력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가 태어난 곳이다. 아메노모리는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활동은 에도와 쓰시마(對馬) 등에서 했기 때문에 정작 이곳에 산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 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아메노모리 호슈암을 지어서 마을이 배출한 인재의 뜻을 잘 이어가고 있다. 이 건물에는 그가 참여하기도 한 조선통신사 기록뿐 아니라, 그가 지은 한국어 교본, 조선통신사 관련 미니어츄어 인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일 사이에 “서로 싸우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성심성의로 사귀어야 한다”는 아메노모리 호슈의 성신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도 한일 청소년 교류 등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조선 전문 외교관이자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한국말뿐 아니라 문화에도 정통했고 조선 관리, 지식인들과 교류도 깊었다고 한다. 그는 임진왜란 상처 치유 및 우호친선 차원에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 실시된 조선통신사 때 두 번 동행하기도 했다.

이날 이곳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이맘 때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약속 때문이다. 20여년 전부터 한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와 이곳 학생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데 격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었고, 나도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었다.

이날은 최근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한일갈등 속에서도 한국의 학생 30여명이 찾아왔고, 현지의 도라히메고교생 10여명이 한글 펼침막을 들고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평소 정치 갈등은 갈등대로 풀어나가면서 다른 부분의 교류는 더욱 활성화해 나가자고 말해온 나로서는 아베 총리의 ‘선을 넘은 경제보복’이 민간교류까지 악영향을 몰고온 지금의 상황이 착잡히기 이를 데가 없다.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분명히 정치에 흔드리지 않는 민간 교류는 활성화되어야 하고, 특히 청소년의 교류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양국 학생들 앞에서 아메노모리 호슈의 정신을 되새겨 보면서, 지금 어려운 한일관계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먼 귀가길을 생각해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144j 李哲・徐勝の両氏がムン大統領夫妻と共にメインテーブルに

6月27日夕方、大阪城近くのニューオータニホテルでムン・ジェイン大統領と在日コリアンとの懇談会が開催されました。直前の韓中首脳会談が長引いたため、予定の6時30分より7分遅れて始まりました。

今回の在日コリアン懇談会は「在日コリアンの首都」と呼ばれるほど韓国国民が多数集住する大阪で8年ぶりに開催されることもあり、高い関心を呼びました。日韓の政府関係がよくない状況下、在日コリアンたちがどんな発言をし、大統領がどんなメッセージを送るかも大いに注目されました。

結果的に懇親会はとても和やかなムードのなかで行われました。行事中、参加者が大統領夫妻を背景に記念写真を撮ったり、数名が無遠慮に大統領の席に近づいて挨拶を交わそうとするなど、警護員たちが汗をかかされる場面もありました。これらすべてが権威主義的な政権下では想像できない「キャンドル政権」ならはの特徴ではないか、と私は肯定的に捉えています。

今回の懇談会のキーワードは、ハーモニーと未来だと思います。民団幹部を中心に行われた過去の懇談会とは異なり、いま各界で活躍するコリアンたちが等しく参加するハーモニーの場となったからです。軍事独裁政権時代に捏造されたスパイ事件で死刑又は無期懲役を宣告された在日韓国良心囚同友会の李哲(イチョル)代表と韓国又石(ウソク)大学の徐勝(ソスン)客員教授が大統領夫妻と共にメインテーブルに配席されたことがすべてを象徴しています。

白頭学院建国学校の伝統芸術部の生徒のきわめて印象的なパフォーマンスは参加者、殊にソウルからの代表団を感動させました。会場の背景に民族学校や民族学級の生徒たちが描いた「大韓民国」という文字をデザイン化したコリアンたちの肖像画は、次世代コリアンの明るい未来を示していました。

懇談会を支配したもう一つのキーワードはプライド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厳しい環境にあってもルーツを守り、祖国に物心両面の貢献をしてきた在日コリアンを支えたのは、まさに韓国出身というプライドだったと思われます。だからこそ「コリアンのみなさんが祖国の発展に誇りを持てるように努めます」というムン大統領の最後の激励の言葉に一層反響があったのです。

準備段階を通じて懇談会に参加して感じたことを<ソウル新聞(2019.7.1)>に寄稿しました。

144 문재인 대통령과 재일동포들의 간담회 열쇠말: 화합, 미래, 자존심

6월27일 저녁 오사카성 근처에 있는 뉴오타니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재일동포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원래 6시30분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전의 한중 정상회담이 길어지면서 7분 늦게 시작됐다.

이번 동포간담회는, 오사카가 ‘재일동포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동포들이 많이 몰려사는 곳이고 무려 8년 만에 열린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또 정부 차원의 한일관계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의 행사여서 동포들이 어떤 말을 하고 대통령이 무슨 메시지를 보낼지도 매우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행사는 매우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행사 중에 참석자들이 대통령 내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일부 참석자들이 스스럼없이 대통령 자리로 다가가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 바람에 경호원들이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촛불 정권’의 특징이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번 간담회의 열쇠말이 ‘화합’과 ‘미래’라고 생각했다. 민단 간부 중심으로 열렸던 과거의 간담회와 달리, 이번은 각계에서 활동하는 동포들이 고루 참여해 화합의 마당이 됐다. 군사독재 시절 조작 간첩 사건으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대표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가 대통령 내외와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은 사실이 모든 걸 상징한다.

또 백두학원 건국학교의 전통예술부 학생들이 아주 인상적인 공연으로 참석자들(특히, 서울에서 온 대표단)을 감동시켰다. 간담회장 배경막의 ‘대한민국’이라는 글씨를 장식한 민족학교 및 학급 학생들이 그린 동포 초상화와 함께, 차세대 동포의 밝은 미래를 과시했다.

여기에 간담회를 지배한 또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자존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지키며 조국에 물심양면의 기여를 해온 재일동포들의 버팀목은 바로 한국 출신이라는 자존심일 것이다. 나라의 발전에 동포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격려사 마지막 말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있었다.

간담회를 준비하면서 참가하면서 느낀 소회를 <에 기고했다. 다음은 기고문이다.
http://naver.me/xwCTab1o

143j 暴雨に始まり曇り空で終わったG20大阪サミット

ムン・ジェイン大統領夫妻を激しい雨のなかで出迎え、曇り空の上天気のなかで見送りました。6月27日から29日、韓国大統領が出席した主要20ヵ国地域(G20)大阪首脳会議は、私にとって暴雨に始まり、曇り空で終わりました。

写真と映像、記事だけで見ていた首脳陣の華麗な外国訪問が、いかに多くの人々の準備と努力、緻密な段取りで運営されているか、まだ2年生の総領事としてありありと実感しました。例えば、首脳たちの到着と出発、出迎えと行事、歓送迎の準備にせわしく動き回る多くの人々が努力する姿は、単に舞台上の俳優のために動き回る舞台裏の人々のようには見えません。大型行事を遺漏なく推進するために汗水流す日韓双方の関係者の尽力と労苦に対し、改めて頭を垂れ感謝したいと思います。

約2ヵ月前から内部で準備してきた行事が終わったいま、疲労感と虚脱感が押し寄せてきます。総領事として在任中になかなか経験できない大型行事を無事に終え、達成感も感じます。

今回の韓国大統領の大阪訪問で総領事館が最も準備に苦心した行事は、27日夕刻に開催された在日コリアンとの懇談会でした。日韓関係がよくないなか、8年ぶりに開催される行事であり、とりわけ準備に力を注ぎました。

できる限り在日コリアン社会の全体を代表する各界各層の人々を招き、ハーモニーの場を提示しようと試みました。韓国人としてのプライドと日韓関係の友好の必要性が浮き彫りになるような集いになることを意図しました。

幸い、全体として満足のいく行事になったと確信しています。ムン大統領は激励の辞でコリアンの痛みを癒やし、これまでの貢献を賞賛しました。コリアンたちは日韓関係悪化のなかでの困難な生活を訴えながらも、大統領の言葉に大きな拍手で応え支持の意を示しました。白頭学院建国学校の伝統芸術部の迫力あふれる公演は、在日コリアンの未来が一枚岩であることを示唆するものだったと思います。

不十分だった点がな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ムン大統領が「いかなる困難にも揺るがない日韓友好関係の構築」を強調したにもかかわらず、安倍晋三首相に無視され、今回の会議では略式会談さえ開催されませんでした。一方で5月から北朝鮮のキム・ジョンウン委員長に「前提条件なしの対話」を強調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です。

仔細に見ると、長い準備にもかかわらず脱落したこともあり、十分にできなかったと自責の念に駆られることもあります。人の営みに100%完璧なことはない、と痛感します。それを自覚しながら完璧を追い求める姿勢が最終的にミスを最小限に抑える方法ではないか、そんなことを悟った、短くも長い2泊3日で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