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j 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の除幕式

11月18日(日)午後、大阪市天王寺区にある統国寺において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の除幕式が執り行われました。大阪地域に住む済州島出身のコリアンを中心とする在日本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建立推進委員会が主催しました。*済州島四・三事件

日本地域に済州四・三犠牲者慰霊碑が建てられたのは、これが最初だといいます。日帝時代(1910-45)から済州島の出身者が多く住む大阪地域の特性によるものと思われます。

1922年から済州・大阪航路が開設されました。この時期は日本が急激に工業を発達させた時期と重なり、大阪に済州出身者がひときわ多く住むようになったといいます。

Dai-Ni_Kimigayo_Maru_Ship1926年に投入された第二君が代丸(前年に尼崎汽船がロシアから購入)

済州四・三を通じて生命の脅威を感じた人々が、密航などで既に大阪に定着していた親戚や知人に身を寄せることも多かったといいます。このような歴史的事情で大阪と済州、大阪と済州四・三は非常に深いつながりを持っています。

南北分断後の理念対立のなかで、韓国では済州四・三が「共産暴動」と規定され、口に出すことさえタブー視された時期が長い間続きました。日本における事情はさらにひどいものでした。事件から40年経った1988年にようやく東京で初の追悼集会が開かれ、その10年後、大阪でも初の慰霊祭が開かれています。

今回の慰霊碑建立は済州四・三から70年を迎え、済州出身のコリアンが多く住む大阪に、済州島の悲劇を忘れずに記憶する記念碑を建てようという趣旨で進められました。3.6mの高さの追悼碑の基部に、事件当時の済州島の178里すべてから採取した石を配し、済州島とのつながりを強調したのが特色です。済州四・三犠牲者遺族会のオグァンヨン会長は「済州全域の石を収集して持ってくるのが最も大変だった…この慰霊碑は、おそらく国外で建てられる最初で最後の慰霊碑ではないか」と、感慨深げに話しました。

この日の行事には、大阪に住む在日コリアンのほか、済州とソウル、東京からも済州四・三の関連団体の関係者が多数参加しました。私も大阪総領事の資格で参加し、司会者から来賓の紹介を受け挨拶しました。あまりに遅くなったとはいえ、世の中が少しずつ変化していることを、参加者一同が感じたように思います。

帰途、生野区の在日韓国キリスト教会館で開催中の済州四・三関連の展示会に立ち寄り、しばし見学しました。

095 오사카시 덴노지구 통국사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일요일인 11월 18일 오후, 오사카시 덴노지구에 있는 통국사에서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오사카 지역에 사는 제주 출신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재일본 제주 4・3 희생자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하였다.

일본 지역에 4・3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은, 이것이 최초라고 한다. 아마 일제 시대부터 오사카에 제주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특성이 작용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러일전쟁 때 획득한 군함을 개조해 만든 연락선 ‘기미가요마루’가 1922년부터 제주~오사카를 오갔고, 이때 일본이 급격히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던 사정과 겹치면서, 오사카에 유독 제주 출신이 많이 살게 됐다고 한다. 또 4・3 사건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밀항 등을 통해 건너와 이미 오사카에 자리 잡고 있던 친척이나 친지에게 몸을 맡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으로 제주와 오사카, 오사카와 4・3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 이후 남북의 이념 대결 속에서 4・3은 “공산 폭동”으로 규정되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시절이,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본 안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사건으로부터 40년 되는 1988년에야 도쿄에서 첫 추도집회가 열렸고, 10년 뒤 오사카에서도 처음 위령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4・3사건 70년을 맞아 제주 출신 동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에 제주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우자는 뜻에서 추진되었다. 3.6미터 높이의 추모비 기단부에 당시 제주도의 178개 모든 마을(리)에서 가져온 돌을 배치해 놓아, 제주와 연결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재일본4・3사건희생자유족회의 오광영 회장은 “제주에서 돌을 수집해 가져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이 위령비가 아마 국외에서 세워진 최초이자 마지막 위령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개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외에도 제주와 서울, 도쿄에서도 4・3 관련 단체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나도 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해, 사회자로부터 내빈소개를 받고 청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비록 속도는 늦지만 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령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쿠노구의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4・3 관련 전시회에도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094j 来年6月まで開催される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

11月17日土曜日も終日、文化行事で多忙でした。映画俳優のファン・ジョンミン氏とランチを終えるとすぐ総領事館に向かいました。

第1回「2018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の開幕式に出席するためです。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内にある民族学校と民族学級の生徒が個人または合同で制作した作品を公館1階の講堂に展示することにしたのです。協働*としたのは、教師と生徒が協働して制作するという意味を込めています。*韓国語原文: 사제동행(師弟同行)

この日の展示会には白頭学院金剛学園京都国際学園**の三つの民族学校(いずれも小・中・高校あり)と大阪府の公立学校に設置された民族学級に通う生徒の作品500点余りが出品されました。小学生から高校生までの個人作品や共同作品が、絵画や工芸品まで広く展示されました。生徒や教師、コリアンなど約百人が参加して開幕式を行いました。 **日本の学校教育法に定める一条校

この展示会を企画したきっかけは、総領事館建て替えのため一時移転中の公館の1階会議室をどう活用するかという問題でした。臨時公館における美術品の配置、整理を助言するために出張で来阪した韓国本省のソン・スンヒェ文化芸術課長が、民族学校の生徒の作品展示というアイデアを提案したことから始まったのです。

大阪総領事館の所管地域には、日本にある韓国系の民族学校4校のうち3校が集まっています。また、1948年の阪神教育闘争が示すように、民族教育に対する熱意が強い地域でもあります。このような背景のため、今も大阪地域の公立小中学校に通う韓国ルーツの生徒3千人が学校内に設置された民族学級で週に数時間ずつ韓国の歴史や文化、言葉を学んでいます。

こういう点を考えると、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は単なる美術品の展覧会以上の意味を含んでいます。民族学校と総領事館、地域社会と総領事館を身近につなぐ架橋の意味を持っているのです。とりわけ、今後、在日コリアン社会をリードしていく若い芽と総領事館がアートという目に見える媒体を介して出会うルートが設けられたことが最大の意味だと思います。

教師と生徒の協働アートショーはその一歩を踏み出しましたが、今後の拡大が期待されます。今回の展示会は2019年6月末まで続け、生徒が作品を自由に交換できるようにするつもりです。

総領事館1階の会議室を、今回の展示会をきっかけに「ドリームギャラリー」(仮称)と名付けました。今後、このスペースが在日コリアンの子どもたちの夢を育て、総領事館とコリアン社会がより身近に出会う場所になれば、と思います。始まりはとるに足りないものですが、時間が経つにつれ、壮大な成果につながるよう、コリアン社会とともに努力していきたいと考えています。

094 내년 6월 말까지 이어지는 민족학교, 민족학급 사제동행 아트쇼

11월17일 토요일은 문화 행사로 바빴다. 영화배우 황정민씨와 점심을 마치고 바로 공관으로 갔다. 총영사관 담당지역 안의 민족학교, 민족학급 학생들이 그리거나 만든 미술품을 공관 1층 강당에 전시하는 행사, ‘2018 사제동행 아트쇼'(제1회)의 개막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행사의 이름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미술전시회의 뜻을 담아, ‘사제동행 아트쇼’ 로 정했다.

이날 전시회에는 건국학교, 금강학교, 교토국제학원의 세 민족학교와 오사카부의 공립학교에 설치된 민족학급에 다니는 학생들 작품 5백여점이 출품되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의 작품, 개인 작품과 공동작품, 회화와 공작까지 두루 전시되었다. 학생과 선생님, 동포 등 1백여명이 참석해 개막식을 했다.

애초 이 행사를 기획한 동기는, 기존 총영사관의 재건축으로 임시 이전한 공관의 1층 회의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마침 임시공관의 미술품 배치, 정리를 조언하기 위해 출장온 본부의 선승혜 문화예술과장이 민족학교 학생 작품 전시 아이디어를 준 게 시작이었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에는 일본 전체의 우리나라 계열의 민족학교 4개 중 3개가 몰려 있다. 또 1948년 한신교육대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족교육의 열의가 강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금도 오사카지역의 공립 초중학교에 다니는 한국 뿌리의 학생 3천여명이 학교 안에 설치된 민족학급에서 일 주일에 몇 시간씩 우리 역사, 문화, 말을 배우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사제동행 아트쇼는 단순한 미술품 전람회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민족학교와 총영사관, 지역사회와 총영사관을 구체적으로 친근하게 연결해주는 다리의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앞으로 동포사회를 이끌고 갈 새싹들과 총영사관이 그림이라는 눈에 보이는 매개물을 통해 만나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제동행 아트쇼는 이제 발걸음을 뗐지만,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 이번 전시회는 내년 6월 말까지 이어지며, 학생들이 그동안 작품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공관 1층 회의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꿈 갤러리'(가칭)라고 이름을 붙여봤다. 앞으로 이 공간이 재일동포 어린이들의 꿈을 가꾸고, 총영사관과 동포사회가 더욱 친숙하게 만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창대한 성과로 이어지도록, 동포사회와 함께 노력할 생각이다.

093j 第4回大阪韓国映画祭で来阪したファン・ジョンミン

11月17日(土)、韓国の人気映画俳優ファン・ジョンミン氏と昼食を共にする光栄を得ました。ことし第4回を迎えた大阪韓国映画祭(11/16-11/18)の特別企画「俳優ファン・ジョンミン特別展とトークショー」に参加はむずかしいといわれたなか、出演してくださったことに感謝する意味で昼食の席を用意したのです。

大阪韓国映画祭は、韓国映画を関西地域の人々に知っていただくために大阪韓国文化院が意欲的に実施している毎年恒例の行事です。韓国映画の上映と監督または俳優によるトークショーで構成されています。まだ映画祭と呼ぶレベルに達してい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地元の反応もよく、徐々に定着しつつあります。

ことしは日本におけ未公開作品を中心に企画しました。「辺山(ピョンサン)」「大観覧車(あなたの宇宙は大丈夫ですか)」「ヒマラヤ、地上8千米の絆」「新しき世界」「ベテラン」「タクシー運転手」が上映作品に選ばれました。17日にファン・ジョンミンさん主演の「ヒマラヤ」「新しき世界」「ベテラン」を連続上映したあと、彼のトークショーを開催しました。

午後に別の行事があり、トークショーを見られない私は、ランチを共にすることで感謝の思いを伝えたのです。スクリーンでしか会ったことのないファン・ジョンミン氏はとても気さくで地味な感じがしました。本人によれば、恥ずかしがり屋で、インタビューやファンの応対などは苦手のようです。今回は、数年前、ロンドンの韓国文化院が主催した映画祭のいい印象が残っていたので、参加を受諾したそうです。

日本でもよく知られた人気俳優なので大阪に何度も来ていると思いましたが、今回が初めてというので驚きました。古代から韓国と縁が深い関西の地で、ファン・ジョンミン氏だけでなく、日本のファンも相手をより深く理解する機会になればと思います。また、このような出会いと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歴史的な葛藤で摩擦を生じがちな日韓関係を少しでも改善することに貢献できればと思います。

今回の映画祭が開催される劇場の客席数は350席ですが、申込者の数は5000人を超えたといいます。やはり、文化の力はすごいものです。

093 제 4회 오사카한국영화제 토크쇼에 출연한 황정민씨

11월 17일(토), 한국의 인기 영화배우 황정민씨와 점심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오사카한국영화제(11.16~18)의 특별기획인 <배우 황정민 특별전 및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 어렵게 참석해 주어 감사의 뜻으로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

오사카영화제는, 오사카한국문화원이 한국영화를 간사이지역에 알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 연례행사이다. 구성은 한국 영화 상영, 감독 또는 배우 초청 토크쇼로 이뤄지는데, 사실 영화제라고 하기엔 아직은 낯 간지러운 수준이다. 그래도 현지의 반응이 좋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는 일본에서 개봉이 안 된 작품을 중심으로 상영회를 기획했다. 변산, 대관람차, 히말라야, 신세계, 베테랑, 택시운전사가 상영작으로 꼽혔다. 17일엔 황정민씨가 주연을 맡은 히말라야, 신세계, 베테랑을 연속 상영하고, 이어 황정민씨의 토크쇼가 열렸다.

나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 토크쇼엔 가 보지 못하고, 점심을 같이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화면 밖에서 처음 만난 황정민씨는 매우 소탈하고 수수했다. 본인의 말로는 수줍음을 많이 타, 인터뷰나 팬 관리 등을 잘 못하는 편이란다. 이번에 오사카영화제에 참석한 것은 몇년 전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한 영화제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서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배우여서 오사카에도 자주 왔을 법한데, 이번이 첫 오사카 방문이라니 놀랍다. 고대시대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니 만큼 황정민씨뿐 아니라 일본 팬들도 상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리라고 본다. 또 이런 만남과 소통이 역사 갈등으로 삐걱거리는 한일관계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데 공헌했으리라고 본다.

이번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의 객석은 350석인데, 신청자 수는 5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역시 문화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092j 創立70周年を祝った和歌山県と奈良県の民団地方本部

11月11(土)と12日(日)、在日本大韓民国民団(民団)の和歌山県地方本部と奈良県地方本部が、それぞれ創立70周年を祝い記念行事を開催しました。69周年でもなく71周年でもない、70周年という節目に深い意味があると思います。私もお祝いするため二日続けてそれぞれの行事に参加しました。

大阪総領事館が管轄する大阪府・京都府・滋賀県・奈良県・和歌山県のなかで、和歌山県と奈良県は在日コリアンの数が少ない地域です。そのため、コリアン集住地域の大阪府や京都府に比べ、人的物的に劣悪な環境にあることは否めません。そのような環境にあって70年ものあいだ、在日コリアンを中心に活動を継続してきたことがすごい。だからこそ、盛大に祝うに値するのです。

それぞれの行事の祝辞において私は、70年のあいだ、日本社会の差別のなかにありながら、日本の人々が無視できない堂々たる存在としてコリアンの地位を固められたすべての民団関係者の労苦に拍手喝采を送るとともに、現在の急激な世代交代期において民団がもう一度中心的な役割を果たしてくたるようにお願いしました。

和歌山県の行事では、韓国語スピーチ大会も行われました。また、韓国のポップオペラの公演チーム”ラルーチェ”が韓国と日本の歌を織りまぜて歌い、大いに会場を盛り上げました。衰退ムードのなかで肩を落としていた民団幹部とコリアンも久しぶりに力づけられ喜んでいました。

奈良県の行事には、大阪の民族学校の金剛学園の舞踊団と白頭学院の民俗ノリチームが出演し、すばらしい祝賀公演を披露しました。前者が韓国の優雅な趣を表現したとすれば、後者はエネルギッシュな演技で観客を魅了しました。また、奈良には兵庫県の民団団長を含め、近畿地方2府4県の民団団長がみな参加し、民団の団結した姿を見せてくれました。

いかなる団体も10年ごとの節目の年を重視します。その節目を契機にそれまでの10年を振り返り、次の10年を設計する動機が得られるからです。このような意味において、二つの民団の創立70周年はそれぞれの組織の新たな10年の出発点でもあります。

奈良県民団の行事では、パク・イル大阪市立大学教授が「民団70年の成果と課題」と題して記念講演を行いました。今後の民団の課題として同氏は、次世代の育成、民族学校の維持強化、地方参政権の獲得、多様化する若い世代の結婚、帰化と二重国籍に関する悩みなどを提示しました。民団がこのようなさまざまな課題を克服し、これまでの70年よりもさらに成熟し発展した組織になることを心より祈ります。

092 민단 와카야마현과 나라현의 지방본부 창단 70주년 기념행사

11월 11(토), 12(일)일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 와카야마현 지방본부와 나라현 지방본부 창단 70주년 기념행사가 각각 열렸다. 69주년도 아니고 71주년도 아닌, 7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도 축하를 위해 연일 두 행사에 참석했다.

오사카총영사관이 담당하고 있는 오사카부, 교토부, 시가현, 나라현, 와카야마현 중에서도 와카야마와 나라 두 지역은 동포 수가 적은 곳이다. 따라서 동포가 밀집해 사는 오사카부나 교토부에 비해, 인적 물적으로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자면,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70년 동안 재일동포의 중심으로 활동해온 것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축하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나는 두 행사의 축사에서, 70년 동안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일본 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어엿한 존재로 자리 잡아온 민단 관계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최근 급격한 세대 교체기에서 민단이 다시 한 번 중심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와카야마민단 기념식은, 한국어스피치대회와 함께 열렸다. 또 한국의 팝페라 공연팀 ‘라루체’가 한국 노래, 일본 노래 등을 섞어 부르며 동포들의 흥을 돋구었다. 그동안 쇠퇴 분위기 속에서 어깨에 힘이 빠졌던 민단 간부들과 동포들도 모처럼만에 기를 받았다고 기뻐했다.

일요일 나라 행사에는 오사카의 민족학교인 금강학교의 무용단과 건국학교의 민속놀이팀이 출연해, 멋진 축하공연을 선보였다. 무용단이 한국의 우아한 멋을 보여줬다면, 민속놀이팀은 박력 만점의 연기로 참석자를 사로잡았다. 또 나라 기념행사에는 효고현 단장까지 포함해, 긴키지역의 2부 4현의 단장이 모두 참가해 단합된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단체이든 10으로 떨어지는 해를 중시한다. 그를 계기로 이전의 10년을 반성하고, 앞으로 10년을 설계하는 동기를 얻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민단의 창단 70주년은 또 다른 10년의 출발점이다.

박일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민단 70년의 성과와 과제’라는 제목의 나라민단 기념 강연에서, 앞으로 민단의 과제로 차세대 육성, 민족학교 유지 강화, 지방참정권, 다양화하는 젊은 세대의 포용, 귀화와 이중국적에 관한 고민 등을 제시했다. 민단이 이런 문제들을 잘 극복하면서, 이전의 70년보다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조직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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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j 京都のほか、福岡、岡山、鹿児島にもある耳鼻塚

11月7日、京都の耳鼻塚(5月に初訪問)で慰霊祭が行われました。韓国の社団法人キョレオル活動国民運動本部(訳注参照)が2007年に始めたものです。2008年は事情により開催できなかったので、ことしが11回目です。

キョレオル活動国民運動本部のパク・ソンギ理事長など関係者10人余りをはじめ、京都と大阪の民団幹部とコリアン、日本人市民など150人余りが参加しました。大阪総領事館からも私を含めて3人が参加しました。

もう立冬だというのに夏の陽気を思わせる日差しが肌を刺すほどでした。野外で1時間半かけて行われた慰霊祭は、終始厳かな雰囲気のなかで執り行われました。追悼の辞で私は「過去1600年の日韓関係のなかでも、この耳鼻塚ほど悲しく辛い歴史の象徴はありません。私たちが今日このような歴史を追悼するのは、同じ悲劇が二度と起き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り、日韓双方の歴史の病の部分を克服し、力を合わせて友好と協力のために進もうではありませんか」と述べました。

この耳鼻塚には壬辰倭乱(1592-98年、壬辰・丁酉倭乱、日本では文禄・慶長の役)の時、日本の侵略軍が戦果を誇示するかのように朝鮮から持ち帰った約12万の人々の耳や鼻が埋まっています、と隣席のパク理事長が説明してくれました。京都だけでなく、福岡、岡山、鹿児島にも、このような墓があるといいます。当時の人口を考慮すれば、想像を絶する悲劇です。

この耳鼻塚の位置もまったく奇妙なところにあります。壬辰倭乱を起こした張本人の豊臣秀吉を祀っている豊国神社から見て下方、左側の低いところに位置しているのです。また、耳鼻塚の墳墓の上には大きな石5個を積んだ塔が置かれています。パク理事長は、秀吉を祀った神社が王座だとすれば臣下が跪くところに耳鼻塚があり、塚の上に大きな石をのせて怨霊が抜け出せないようにしていると話しました。

慰霊祭が行われているあいだ、私はなぜか心が楽になるのを感じました。このように多くの人々が日本で怨霊になったまま埋葬されていることに心を痛め、最近の韓国最高裁の元徴用工に関する判決が引き起こした日本国内の異常な空気が過去の辛い歴史を呼んでいたからです。

過去の歴史の病の部分を教訓に、このような悲劇が二度と繰り返さ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も、この耳鼻塚の記憶と追悼はずっと続け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

[訳注] 英文名: Koreaness* Awakening Movement Union、法人によるキョレオルの説明: (1)キョレオルとは我が民族悠久の伝統精神文化に息づく魂であり意識であり脈である。(2)キョレオル活動運動とは民族意識を回復し守り創造する汎国民運動である。(3)キョレオル活動国民運動とは道徳性の回復・生命愛・自然保護・平和守護を徳目とし我が民族の平和統一完遂と世界平和具現をめざす運動である。[*サイト表記のマゝ、造語か]

091 교토, 후쿠오카, 오카야마, 가고시마에 있는 이비총(耳鼻塚)

11월7일은 교토의 이비총(미미하나즈카)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한국의 사단법인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2007년부터 시작했다. 2008년은 사정이 있어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가 11번째이다.

한국에서 박성기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등 관계자 10여명을 비롯해, 교토와 오사카 민단 간부 및 동포들, 일본의 시민 등 150여명이 참가했다. 오사카총영사관에서도 나를 포함해 3명이 참석했다.

절기로는 입동인데도 여름 날씨를 방불하는 따까운 햇살이 피부를 찌를 정도였다. 노천에서 1시간 반동안 치러진 위령제는 시종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했다. 나는 추도사에서 ‘1600년에 이르는 한일관계 속에서도 이비총은 매우 슬프고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우리가 오늘 이런 역사를 추도하는 것은 이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일 모두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힘을 합쳐 우호와 협력을 위해 나가자’는 취지로 말했다.

이비총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 침략군이 전공을 셈하기 위해 가져온 12만명 정도의 귀 또는 코가 묻여 있다고, 옆자리에 있던 박 이사장이 설명해 주었다. 교토뿐 아니라 후쿠오카, 오카야마, 가고시마에도 이런 묘가 있다고 한다. 당시의 인구를 감안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비극이다.

이비총의 위치도 참 묘한 곳에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도요쿠니신사의 아랫쪽 왼편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이비총의 봉분 위에는 큰 돌 5개가 탑처럼 놓여 있다. 박 이사장은 마치 도요토미를 모신 신사가 왕이 앉는 자리라고 한다면 신하가 앉는 곳에 이비총이 있고, 더구나 그 위에 큰 돌을 얹어 놓아 원혼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듯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위령제가 이뤄지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본에서 원혼이 된 채 묻혀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고, 또 최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일고 있는 일본 안의 이상기류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이런 비극이 재발되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비총의 기억과 추모는 계속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