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은 한국인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사립대학이다. 1971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설립 당시 경제학부와 법학부로만 출발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경법대학이다.

지금은 경제학부, 법학부 외에 국제학부, 경영학부(올해 신설)와 대학원 과정의 경제학부를 두고 있다. 학생 수는 3000명 정도로, 일본에서는 소규모 대학이다.

2월12일 야오시의 이코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 학교를 방문해, 다바타 리이치 학장를 만났다. 다바타 학장은 러시아 경제를 전공한 경제학자이다.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오사카시립대학에서 전남대와 오사카시립대 사이의 교류를 전면화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관한 지식과 애정도 깊다.

이 학교는 해외 유학생이 전체의 17%, 500명 정도라고 한다. 유학생 출신 나라도 중국, 한국,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해 10여 개국이 된다고 한다. 유학생 이탈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비결을 묻자, 학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의 소개로 오는 학생이 많고, 학생을 꾸짖어도 될 만큼 학생과 학교 사이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신경쓴다고 말했다.

숭실대, 경상대, 이화여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도 활발한 교류도 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로는 태권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교정에는 광개토왕비 레플리카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분분의 학생과 교수가 일본인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한국의 냄새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114 교토부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조요(城陽)시를 방문

2.9(토) 교토부의 조요시를 처음 방문했다.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에 새겨진 문화재 뵤도인(평등원)과 우토로마을, 윤동주의 세번째 시비가 있는 우지시에 남쪽으로 붙어 있는, 인구 8만명 정도의 작은 시다.

이날 이 시에서 ‘일한 친선 교토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줄여서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 설립 3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35주년이라는 부러지는 해의 의미도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가 오사카총영사관 담당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도 민간교류를 가장 모범적으로 하는 곳이므로, 기꺼이 참석했다.

조요시는 현재 경북 경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고, 대구시축구협회와, 어린이, 여자대학 축구 교류 등을 하고 있다. 1982년 교토를 찾은 한국의 어린이 축구팀과 이곳의 팀이 친선경기를 한 것을 계기로, 83년부터 한일친선협회가 만들어지고, 어린이 축구를 중심으로 교류가 확대되어 왔다. 2004년 독도 갈등이 불거지면서 일시 교류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민간차원 교류의 중요성에 공감한 양쪽의 노력으로 지금은 어린이 축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교류가 넓고 깊어지고 있다.

조요시의 ‘사쿠라와 무궁화의 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일본 황족 출신으로 한일 교류에 힘썼던 다카마도노미야를 기리기 위해 만든 다카마도노미야기념재단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 수상을 계기로 조요시의 어린이축구팀은 이 훈장과 사쿠라와 무궁화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도 어린이 축구팀이 이 유니폼을 입고 단상에 올라와 <고향의 봄> <희망의 나라로>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 기념재단의 스즈키 사무총장도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한국에서도 축구교류에 처음부터 관여해온 김성열 대구광역시축구협회장 등 2명이 참석했다.

나를 비롯한 한일 양쪽의 축사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근 정치와 역사인식 문제로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쁘지만, 이럴 때일수록 민간 교류를 더욱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특히 2005년부터 10년 동안 이 회의 회장을 맡았던 후루세 명예회장은, 교류가 중단되었던 당시 시장이었던 이마미치 시장의 ‘people to people’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교류 재개에 큰 힘이 되었다고 상기했다. 요즘 상황에 잘 들어맞는 말이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총영사관 담당 지역에는 조요시 외에 기시와다시(오사카부), 모리야마・야스시(시가현)가 대표적으로 민간 교류가 잘 되는 곳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을 보면, 단체장과 시 의회 의원 등 지역의 여론 주도층이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그 밑에 스포츠 교류와 같은 끈끈한 접착제, 온 힘을 기울여 교류를 이끌고 가는 헌신적인 활동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113 오사카니치니치[大阪日日]신문 인터뷰 기사

오사카 지역의 일간지 <오사카니치니치신문>이 최근의 한일관계와 민간교류,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해, 1월31일 응했습니다. 그 기사가 2월 7일 나왔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니, 기사가 5단 광고를 뺀 전면 크기로 실렸습니다. 크기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얼굴이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나와 좀 쑥쓰러웠습니다. 기사 내용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정리해 놓아 안심했습니다.

나는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전시 강제동원 노동자 판결 등으로 정부 사이에 갈등이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갈등의 근본 원인은 과거 역사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은 채 1965년 협정이 체결된 데 있으므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서로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는 냉랭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따듯한 ‘관랭민온’ 현상도 감지된다면서, 양국 인적교류가 지난해 처음으로 1천만명을 돌파한 점, 양국에서 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 일류 붐이 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 오사카에서 고령화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열리는 국제박람회는 일본을 뒤따라 노령화 사회로 가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면서, 역사, 문화적으로 예전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간사이가 한일우호의 메카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평화 움직임과 관련해, 비슷한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두 나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자 출신으로서 양국 매스컴이 ‘당국자 말 전하기’ 중심의 공중전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보도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전했습니다.

112j 白頭学院・建国高等学校の卒業式

1月31日(金)、大阪の「民族学校」白頭学院建国高等学校の卒業式が行われました。

ことしは白頭学院・建国高等学校の第69回の卒業式で、62人が卒業しました。この高等学校がこれまでに輩出した全卒業生は、ことしの卒業生を含め、4824人です。この傾向が続けば、3年後には卒業生が5000人を突破する見込みです。これは決して少なくない数だと思います。

62人の卒業生は、すべて韓国と日本の大学に入学する予定だそうです。日本の国公立大学の入試はまだ終わっていませんが、100%大学進学が眼前にあるということです。

白頭学院建国学校には、幼稚園から高等学校まであります。今回の卒業生には、幼稚園から通った学生が4人、小学校からの学生が10人いるそうです。これだけ見ても、この学校が1945年の解放前から日本に来て根を下ろした在日コリアン(特別永住者、「オールドカマー」)中心の学校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駐在員の子弟と1980年代以降に定着した永住者(「ニューカマー」)の子弟が大きな割合を占める東京の韓国学校とは性格を異にします。

白頭学院をはじめ、関西地域の三民族学校(建国学校、金剛学校、京都国際学校)の存在は、今後、在日コリアン社会の命運を左右する大きな意味を持っている、と私は考えています。

在日コリアン社会は、日本への帰化と国際結婚の増加、少子化の影響により韓国籍を維持する人が毎年大幅に減少しています。このような傾向を止め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でしょう。このような状況にあって、韓国出身という帰属意識を持ち、在日社会をリードして行く次世代のリーダーの重要性がさらに増すものと思われます。そして、まさにそのような役割を担うべく、それを効率的に果たせるのがこれらの民族学校だと考えています。

卒業式の日、私は祝辞で「日本の中の韓国の学校」という難しい関門を通過した建国学校の卒業生だからこそ、これまでの経験と知識を活かし、韓国・日本、さらには国際社会に貢献する人材になることを期待すると述べました。幼少の頃から、韓国と日本を同時に意識してきた者だからこそ、困難な日韓間の問題を解決する智慧の芽も育んでいるはずだと思うからです。韓国社会の「日本の中の韓国民族教育」に対する関心がさらに高まるよう期待して止みません。

112 오사카에 있는 ‘민족학교’ 백두학원 건국고등학교 졸업식

1월31일(금), 오사카에 있는 ‘민족학교’ 백두학원 건국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올해가 제69회 졸업식이다. 이번에 62명이 졸업을 했다. 이제까지 이 학교가 배출한 전체 졸업생 수는 올해 졸업생까지 포함해, 모두 4824명이다. 이런 추세라면 3년만 있으면 졸업생이 5천명을 돌파한다. 적지 않은 수다.

62명의 졸업생은 모두 한국과 일본의 대학 입학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아직 일본의 국공립대학 입시가 끝나지 않았지만, 100% 대학 진학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

백두학원 건국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다. 이번 졸업생 중에는 유치원부터 다닌 학생이 4명, 초등학교부터 다닌 학생이 10여명 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이 학교가 해방 전부터 일본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재일동포(특수 영주권자, 이른바 ‘올드커머’) 중심의 학교임을 알 수 있다. 주로 주재원 자녀들과 1980년대 이후 새로 정착한 영주권자(이른바 ‘뉴커머’) 자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쿄의 한국학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나는 백두학원을 비롯한 간사이지역의 세 민족학교(건국학교, 금강학교, 교토국제학교)가 앞으로 재일동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재일동포 사회는 귀화의 증가, 국제결혼의 증가, 저출산의 영향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수가 해마다 크게 줄고 있다. 이런 경향은 쉽게 막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출신이라는 뿌리의식을 가지고 재일사회를 이끌고 갈 차세대 지도자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들 학교이다.

나는 이날 졸업식 축사를 통해 건국학교 졸업생들이 ‘일본 속의 한국학교’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만큼,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 일본,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의식하면서 커온 이들이 어려운 한일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의 싹도 함께 키워왔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일본 안의 민족교육’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길 바란다.

 

111j 創立70周年を迎えた大阪商業大学

1月29日、大阪商業大学を訪問しました。2018年初の大学訪問です。昨年は管轄地域にある大規模な大学を訪ねました。ことしは、主に小規模ながら特徴があり実績を持つ「実力派」大学を訪問する予定です。

大規模な大学はほぼすべて訪問しましたし、韓国の立場からは、このような実力派の大学にこそ学ぶべき点がより多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からです。

東大阪市にある大阪商業大学は学園グループ谷岡学園が経営する大学です。谷岡学園はこの大学のほか神戸芸術工科大学と大阪女子短期大学、高等学校3校と幼稚園を経営しています。

大阪商業大学はことし創立70周年を迎え、経済学部・総合経営学部・公共学部の3学部、地域政策研究科を有する学生5千人規模の大学です。驚くべきことは、この大学の就職率が過去10年以上継続して、90%を超えていることです。

就職率が高い秘訣について、大学の周辺に多くの中小企業がある点と、これらの企業と大学の人的・地域的な連携があると聞きました。谷岡一郎学長によれば、これらは客観的な条件であり、同学独自の教育理念と教育方法の影響が大きいそうです。

社会調査方法論を専攻された谷岡学長は、すべての学生に対し、データに基づいて現象を説明するための学習を課しているそうです。さらに、さらにこうしたデータに基づく研究が現実と合致しないことを知ることで、学生のチャレンジ精神を育成することに尽力しているそうです。このような教育課程を経て送り出された学生たちが地域の企業に就職することで、大学と企業が共存する地域社会を作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もちろん、この大学も「人口減少傾向のなかで生き残る」という、韓国の多くの大学が直面している悩みを共有しています。韓国の大学よりも先に、こうした問題に直面し悩んできた経験は、韓国の大学にも多くの示唆を与えるという気がしました。

学園創設者の子孫である谷岡学長はまた、日本のギャンブル研究者のなかで最も有名な学者の一人でもあります。大阪商業大学は、学士から博士課程までゲーム・ギャンブルについて学ぶことができる大学としても知られています。

谷岡学長のご夫人も学校法人至学館を運営しており、至学館大学は女子レスリング選手を多く輩出していることで日本でよく知られています。

 

111 2019년 첫 대학 방문: 오사카상업대학

1월29일, 오사카상업대학을 방문했다. 올해 첫 대학 방문이다. 지난해에는 지역 안의 규모가 큰 대학을 찾았다면, 올해는 규모는 작지만 강한 대학을 주로 다녀볼 생각이다.

규모가 큰 대학들은 거의 빠짐없이 가본데다, 한국의 처지에서 볼 때 이런 강소대학에서 실질적으로 배울 만한 점이 더욱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히가시오사카시에 있는 오사카상업대학은 학원그룹인 다니오카학원이 경영하는 학교이다. 다니오카학원은 이 학교 외에도 고베예술공과대학 및 오사카여자단기대학과 3개의 고등학교, 1개의 유치원을 가지고 있다.

오사카상업대학은 올해로 창학 70주년을 맞는다. 경제학부, 종합경영학부, 공공학부 등 3학부, 지역정책연구과에 학생 5천명 규모의 대학이다. 놀라운 것은 이 학교의 취직률이 10년 이상 90%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다니오카 이치로 학장은 이렇게 취직률이 높은 비결에 대해, 주위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다는 점과 이들 기업과의 인적, 지역적 유대를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인 조건일 뿐, 다니오카 학장의 말을 들어보면 교육방법 또는 교육철학의 덕이 큰 것 같다.

사회조사방법론을 전공한 다니오카 학장은 모든 학생들에게 데이터에 기초해 현상을 설명하도록 하는 학습을 하게 한다고 한다. 또 그런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현실과 꼭 맞지 않다는 점을 알게 함으로써 학생의 도전심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출된 학생들이 지역 기업에 취직하면서 학교와 기업의 상생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학교도 ‘인구감소 속의 살아남기’라는, 한국의 많은 대학이 처한 고민을 함께 갖고 있다. 한국의 대학보다 먼저 이런 문제에 부딪히며 고민해온 이런 학교의 경험은 한국의 대학들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원 설립자의 손자인 다니오카 학장은 일본 안에서 도박 연구로 가장 유명한 학자의 한 명이다. 이 학교는 학사에서 박사까지 게임, 도박을 배울 수 있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다니오카 학장의 부인도 학교법인 지학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학관대학은 여자레슬링 선수 배출로 유명하다.

 

110j 関西・伊丹・神戸空港を運営する関西空港エアポート

1月24日(木)、2019年企業訪問の初の日程として、関西地域の玄関・関西空港を運営する関西空港エアポート株式会社を訪問しました。関西空港エアポートは関西空港、大阪(伊丹)空港、神戸空港を運営する民間企業であり、公社システムで空港を運営する韓国とは業態を異にします。

同社は、日本企業のオリックスとフランスのバンシ・エアポートがそれぞれ40%の株式を持ち合う合弁企業です。社長はオリックス、副社長はバンシ側が引き受け共同経営しています。この日も、山谷佳之社長とエマヌエル・ムノント 副社長のお二人との対談ならぬ鼎談となりました。

同社は関西空港がある空港島にあり、空港と大阪地域を接続する橋が昨年9月に台風21号で被った被害から完全には抜け出せていない状態です。まだいくつかの区間が復旧工事中ですが、3月中には工事を完了するそうです。空港との往復に大きな支障はありませんが、昨年の台風の傷跡がまだ残っています。台風の被害がいかに大きかったか、今さらながら理解できます。

この日の会談でも断然多く、昨年の台風が話題に上りました。空港のほうが被害が甚大でしたが、総領事館も空港閉鎖に伴う対応に苦慮したからです。山谷社長は当時のことを教訓とし、多言語による情報発信、外国公館との協力強化などに努めていることを強調されました。また、関西空港の外国人入国者の30%を占める韓国人旅客のためのサービス強化にも力を入れていると述べました。私は、さらに積極的な情報発信と外国人向けサービス強化の必要を指摘しました。

エマヌエル副社長から二つの質問を受けました。一つは、昨年の台風の後、韓国人の入国者が若干減ったが、これは長期的なものか、短期的なもというものでした。私は、韓国人は災害に非常に鋭敏だが、災害対応システムさえ整えば、長期的に観光客の動向は変わらないだろう、と答えました。

関西空港は、韓国と関西地域をつなぐ最初の、かつ最も重要な接点であるので、より活発に協力することを申し出ました。お二人とも、空港の発展のためにも韓国との関係・協力が重要であることを強調していました。

110 간사이공항, 이타미 공항, 고베공항을 운영하는 민간회사

1월24일(목요일), 2019년 기업 방문의 첫 일정으로, ‘간사이 지역의 관문’인 간사이공항을 운영하는 간사이공항에어포트주식회사를 찾아갔다. 간사이공항에어포트는 간사이공항, 오사카(이타미)공항, 고베공항을 운영하는 민간회사이다. 공사체제인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이 회사는 일본회사인 오릭스와 프랑스의 방시에어포트가 각기 40%씩의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이다. 사장은 오릭스, 부사장은 방시 쪽에서 맡아 공동 경영을 하고 있다. 이날 면담에도 야마야 요시유키 사장과 엥마누엘 므낭또 부사장이 함께 나왔다….

이 회사는 간사이공항이 있는 공항섬 안에 있는데, 공항과 오사카 지역을 연결하는 연륙교는 지난해 9월 태풍 21호(제비) 때 입은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 일부 구간은 복구 공사 중인데 3월 중에는 공사가 완료된다고 한다. 오가는 데 큰 불편은 없지만 지난해 태풍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만큼 태풍 피해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날 면담에서도 단연 지난해 태풍이 화제가 됐다. 공항 쪽이 가장 큰 고생을 했지만, 우리 총영사관도 공항 폐쇄로 인한 대응에 애를 먹었다. 야마야 사장은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다국어 정보 발신, 외국 공관과 협력 강화 등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간사이공항 외국인 입국자의 30%를 차지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서비스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나도 더욱 적극적인 정보발신과 외국인에 대한 서비스 강화 필요성를 제기했다.

엥마누엘 부사장도 중간에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난해 태풍 이후 한국인 입국자가 좀 줄었는데, 이것이 장기적인지 단기적인지 의견을 물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은 재해에 매우 예민한 경향이 있지만, 재해 대응체제만 잘 갖춰진다면 장기적으로 관광객은 줄지 않을 것이란 취지로 답했다.

나는 간사이공항은 한국과 이 지역을 잇는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점접이므로 더욱 활발하게 협력하자고 말했다. 두 사람도 공항의 발전을 위해서도 한국과 관계,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90125

109j 問題を持続的に解いていく過程こそ人生であり歴史では?

最近の難かしい日韓関係をみるにつけ、複雑な思いに囚われます。専門家の何名かは「史上最悪」とすら表現していますが、いかなる問題であれ最上級の表現を使う人を私はあまり信用しません。知的怠惰か、政治目的のために動員しやすいことが最上級表現を使う所以だと考えるからです。文世光(ムンセグァン)事件や金大中(キムデジュン)拉致事件があった1970年代半ばと比べて、現在の日韓関係がさらに悪化しているかと問われたとき、彼らは果たして堂々と「悪化している」と答えられるでしょうか。

だからといって、私は現在の日韓関係が悪くないというのではありません。いま、日韓関係は明らかに悪い。ただ、悪い内容と質が過去と異な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いたいのです。

日本のある学者は、これまで日韓の歴史認識の対立は政治(私見では、修辞)レベルで行われたが、昨年の韓国最高裁の「強制労働判決」をきっかけに、法律的なレベルに格上げされた、と言います。私は、この学者の説に同意します。ですから、日韓対立は以前のような政治的妥協で解決するのが難しくなったと見ています。日韓対立がなぜ法的紛争まで発展したかについては、いくつか分析が出ていますが、ここではその詳細は省きます。

最近の日韓対立は以前とは様相が異なるようです。以前は「水面が濁れば下の水も濁る」という言葉のように、政府関係の悪化に伴って一般国民の関係も悪くなるのが普通でした。ところが、最近は政府関係者とメディアが対立の前面に出ているものゝ、民間レベルではあまりそういうふうには感じられない。周囲の何人かの観察もそのようです。この現象を、私は「官冷民温」と呼びたいと思います。官とメディアは熾烈な殴り合いをしていますが、一般市民は淡々というより一層交流が盛んなのですから。実際、2018年に、政府間対立のさなか、1050万人以上が日韓を往来する1千万人交流時代に入ったのです。

なぜこのような現象が生じるのでしょうか。私の仮説は、1)若者と老人の見方の違い、2)相手国を直接経験した人としていない人の違い、3)専門家集団と一般市民の違いによるというものです。もちろん、他の要因も考えられますし、これら三つの要因が複合していることもあると思います。

1月28日付発行の週刊誌「アエラ」に、ちょうどこのような現象を扱った記事を見つけました。私の仮説をすべて満たす記事ではありませんが、日韓対立の最近の様相を理解するのに役立つ記事です。問題をよく理解しなければ解法もわかりませんから。

どこの国や地域にも問題はあります。問題はそれを起こすために表れるのではなく、問題があるから表われるのです。問題を持続的に解いていく過程が人生であり歴史だとするならば、私たちはもっと冷静に謙虚にこれらの問題に立ち向か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